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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백아산 대판골. 겉보기에 별반 다를 게 없는 산이다. 하지만 나무 아래에는 수십 가지의 산나물이 자라고 있다.
 화순 백아산 대판골. 겉보기에 별반 다를 게 없는 산이다. 하지만 나무 아래에는 수십 가지의 산나물이 자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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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짜기가 '대판골'입니다. 오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청정계곡이잖아요. 이 곳에서 그 이름에 걸맞게 큰 판 하나 벌여 볼랍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사는 김규환(43·영농조합법인 산채원 대표)씨의 얘기다. 실제 그는 백아산 자락 대판골에서 '큰 판'을 벌이고 있다. 산나물 단지 100㏊(30만평)를 조성하고 있는 것.

산나물 종류도 곰취, 산마늘, 곤달비, 두릅, 달래, 엄나무, 오가피, 초피, 참나물, 머위, 산부추, 곤드레 등 200여 종에 이른다. 주변에서 얻을 수 없는 씨앗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것이다.

백아산 대판골에서 자라고 있는 산나물들. 왼쪽부터 당귀, 곤드레, 반디나물이다.
 백아산 대판골에서 자라고 있는 산나물들. 왼쪽부터 당귀, 곤드레, 반디나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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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산 대판골에 군락을 이룬 산나물들. 곰취와 산마늘 군락이다.
 백아산 대판골에 군락을 이룬 산나물들. 곰취와 산마늘 군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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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산나물 축제도 계획하고 있다. 오는 5월1일부터 닷새 동안 이곳에서 열릴 제1회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가 그것이다. 축제라고 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게 아니다.

산나물이 지천인 숲길을 걸으면서 산과 산나물이 가져다주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자연과 교감을 하자는 취지다. 갖가지 오염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먹을거리에 대해 되짚어보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축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연이나 마이크 소음도 없앤다. 그 빈자리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대신한다. 정말 꿈에 그리던 축제다.

백아산 대판골에서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는 김규환 씨가 채취한 두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백아산 대판골에서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는 김규환 씨가 채취한 두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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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백아산에서 뛰놀며 산나물을 캐먹던 김씨는 이 꿈을 위해 4년 전 귀향을 했다. 서울에서 대학(고려대 국문학과)을 졸업한 그는 생활도서관 구성·운영, 민박집 운영 등의 일을 했었다. 결혼 이후엔 경기도 가평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산나물을 직접 재배하며 귀향을 준비했다.

학업 핑계를 대고 서울로 올라간 지 20년만인 2006년 9월. 김씨는 산나물 종자 한 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작은 땅이라도 빌려 산나물을 심고 해마다 면적을 조금씩 넓혀나가며 산나물단지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안고서….

부모님이 일찍 작고한 탓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긴 했지만 고향산천은 옛 그대로 반겨주었다. 마음도 넉넉하고 푸근했다. 그는 미리 빌려놓은 폐가를 고쳤다. 비록 허름한 집이었지만 벽지도 새로 바르고 보일러도 놓았다. 겨울을 나고 이듬해 2월엔 부인과 아이들까지 데려왔다.

산촌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부지런히 일했다. 날마다 낫과 괭이를 들고 풀을 베고 칡덩굴을 제거했다. 기계톱을 들고 다니며 나무도 솎아냈다. 그 자리엔 산나물 씨를 뿌렸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산나물 재배단지를 안내하던 김규환 씨가 피나물을 꺾어 보이며, 나물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산나물 재배단지를 안내하던 김규환 씨가 피나물을 꺾어 보이며, 나물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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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대인관계가 이리저리 엮어졌다. 산나물의 미래에 공감한 지인들이 투자를 하면서 판이 점점 커갔다. 화순군에서도 북면의 특화작물로 산나물을 선정하고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해 왔다. 기껏 몇 천 평에서 많으면 1만평 정도 생각했던 산나물 재배면적이 부쩍부쩍 늘어갔다. 몇 년 사이 면적이 100㏊까지 늘었다.

면적이 버겁긴 했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온 몸을 던져 일했다. 시쳇말로 일과 산나물에 미쳐갔다. 화순군에서도 숲가꾸기 사업을 해주며 적극 도왔다. 초기에 심었던 취나물의 씨앗을 받아 돈도 만졌다. 물론 곧바로 재투자 비용으로 들어가 손 안에 남는 건 없었지만 산 속에서 자라나는 산나물을 볼 때마다 힘이 불끈불끈 솟았다.

"고생 정말 많이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일의 연속이었죠. 차분히 소주 한잔 마신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4년이 10년, 20년이나 된 것처럼 오랜 시간 일한 것 같습니다."

김규환 씨가 대판골에서 꺾어 삶은 고사리. 제1회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 때 쓸 것이다.
 김규환 씨가 대판골에서 꺾어 삶은 고사리. 제1회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 때 쓸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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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지난 4년 동안 백아산 자락에 가꿔온 산나물단지를 세상에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제1회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를 여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말이 축제이지, 숲길을 걸으며 산이 키워낸 산나물과 들꽃을 오감으로 만나고 즐기는 마당이다.

숲길에서 눈맞출 수 있는 산나물은 취나물과 곰취는 물론 반디나물, 고춧잎나물, 피나물, 당귀, 곤드레, 산마늘, 고사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그것도 논밭에서 기른 게 아니라 화학비료 한 줌,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산이 키운 것들이다. 종류도 자그마치 200여 종에 달한다. 나물 이름과 특성, 효능 등을 적은 이름표까지 붙여 놓았다.

곰취와 산나물, 참나물, 두릅 등으로 만든 산나물 쌈밥과 비빔밥, 장뇌삼으로 더 알려진 산양삼밥 등 맛볼 수 있는 음식도 100여 가지가 넘는다. 산나물 도시락, 산나물 김밥, 산나물 화분 그리고 소량 포장한 산나물 세트 판매도 한다. 산나물을 심고 산나물떡과 복조리, 가죽부각 만들기 등 체험거리는 덤이다.

김씨는 축제 때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지난 겨울 김장김치 2000포기를 땅에 묻어 놓았다. 봄동도 10포대 이상 챙겨 놓았다. 고사리도 꺾어서 삶아 말려 놓았다. 쌀 10가마도 비축해 두었다. 선물용 복조리도 만들어 놓았다. 산나물은 지천에 널려 있으니, 이제 손님맞이만 남은 셈이다.

열심히 일한 후 맞은 점심시간. 준비해 온 도시락을 계곡 가에 앉아 먹는 맛이 그만이다.
 열심히 일한 후 맞은 점심시간. 준비해 온 도시락을 계곡 가에 앉아 먹는 맛이 그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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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축제는 그에게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의 꿈은 더 '큰 판'에 있다. 개인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자연이 키운 산나물과 약초로 마을과 지역을 바꾸는 것이다. 나아가 '식탁혁명'을 이루고 도시민들의 건강까지 챙기는 것. 이를 위해 산나물의 소포장 직거래를 정착시켜 나갈 생각이다. 산나물을 이용한 각종 음식과 향수 개발도 과제다.

김씨는 "우리 농업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산나물과 약초를 농업의 한 분야로 키우고, 이를 통해 부를 창출해 젊은이들이 다시 찾아오는 산골,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해방 전후 빨치산들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백아산 자락이 산나물공원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나물 단지로 바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땀방울이 식지 않는 한….

산나물 무침. 제1회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에선 100여 가지가 넘는 산나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산나물 무침. 제1회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에선 100여 가지가 넘는 산나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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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 씨가 백아산 대판골에서 자라고 있는 산나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규환 씨가 백아산 대판골에서 자라고 있는 산나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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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백아산 대판골.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김규환 씨가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는 곳이다.
 화순 백아산 대판골.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김규환 씨가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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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화순백아산 산나물축제장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옥과 나들목-곡성오산-화순북면 원리삼거리(좌회전)-(대광사 방면)대판골
○ 문의 - 김규환 ☎ 061-372-0372 / 011-9043-4549



태그:#김규환, #산채원, #백아산, #대판골, #산나물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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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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