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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점인 상용정에서 시산제 지내는 등산객들
 산행시점인 상용정에서 시산제 지내는 등산객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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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각오 단단히 하고 시작하십시오. 1천 미터가 넘는 비슷비슷한 봉우리 네 개를 넘어야 되거든요, 거리도 만만치 많습니다. 너무 힘들면 샛길로 빠져 내려오셔도 됩니다,”

산행시점이 가까워지자 산악회장이 안내를 하며 겁부터 준다. 아침 8시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중부 고속도로를 달려 도마령이라는 고갯마루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해발 800미터, 등산시점이 이 정도 높이면 산악회장의 겁주는 말과는 달리 산행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갯마루에서 시작된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길이다. 계단 길 위로 올라서자 멋진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상용정이다. 정자 아래 마당에서는 마침 어느 산악회 사람들이 돼지머리와 막걸리, 그리고 떡과 안주를 차려놓고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사이 산악회원들은 거침없이 산길을 오른다. 같은 속도로 따라 오르려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길가의 나무를 붙잡고 잠깐 숨을 돌렸다. 산길은 매우 가팔랐지만 상태는 좋았다. 체력을 조절하며 천천히 걸어 올랐다.

그렇게 30분 쯤 오르자 산길이 달라진다. 빙판길이 나타난 것이다. 안개 짙은 하늘에서 희미하게 내려쬐는 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제법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밤사이 피웠던 서리꽃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서리꽃들이 응달쪽에 쌓여 있는 눈 위에 내려앉아 작은 유리파편처럼 반짝인다.

빙판길과 진흙탕길이 번갈아 이어진 등산로

그래도 아직은 아이젠을 착용치 않고 오를 만했다. 그런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빙판은 더욱 심해졌다. 바람결이 차갑지는 않았지만 바람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안부에 올라섰다가 비스듬하게 경사진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양지쪽이어서 눈과 땅이 녹아 질퍽거린다. 그런데 다시 오르막길로 나서자 이번에는 빙판이 심하여 자꾸 미끄러진다.

민주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옆에 있는 대피소
 민주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옆에 있는 대피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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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겠어, 이쯤에서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일행 두 사람과 동행이 된 여성 등산객에게 안전을 위하여 아이젠 착용을 권했다. 그런데 일행 한 사람은 순순히 내 권유를 받아들여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그냥 가겠다고 한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길은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상당히 미끄러운 빙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첫 번째 봉우리인 각호산까지는 모두 무사히 올랐다. 옛날 뿔난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 때문에 산 이름이 붙여진 해발 1176미터 각호산(角虎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밧줄을 붙잡고도 매우 힘든 암벽이었다.

각호산은 본래 산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좋은 산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심술궂게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다음 목적지인 민주지산도 바라볼 수 없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바위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도 험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젠 착용치 않고 걷다가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죽을 뻔했던 여성등산객

어렵사리 봉우리에서 내려와 민주지산으로 가는 길은 능선길이었다. 그러나 몇 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길은 여전히 빙판길과 흙탕길이 번갈아 이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사고는 이 능선길에서 일어났다.

민주지산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께
 민주지산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께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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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그룹을 이룬 우리 일행들의 맨 앞은 우연히 함께한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 여성의 등산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얼마나 잘 걷는지 우리일행들 중에서 그녀를 따라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빙판 능선길을 20여 미터 앞서 걷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더 빨리 걸어 앞서갔으려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조금 더 걸어가자 능선 오른편 급경사 10여 미터 아래에서 그녀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올라오고 있는 곳은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있는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일행이 내민 손을 붙잡고 올라온 그녀는 ‘죽을 뻔 했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능선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굴렀다는 것이었다. 다행이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에 걸려 살았다며 머리를 나무에 부딪혀 머리에 뿔난 것 같다고 하는데 얼굴에도 조금 긁힌 자국이 있었다.

“아까 선생님이 아이젠 신으라고 하셨을 때 신었어야 하는 건데... 지금이라도 신어야지.”
“그래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지만 지금이라도 신어야 돼요, 다행이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은데 또 미끄러지면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공연스레 내게 미안해하며 아이젠을 착용했다. 그러나 일행 중 한명은 여전히 아이젠 착용을 하지 않는다. 아이젠을 신으면 진흙탕 길에서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아이젠이 빙판길에서는 아주 유용했지만 진흙탕 길에서는 진흙이 무겁게 달라붙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능선길에서 바라본 석기봉
 능선길에서 바라본 석기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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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봉우리인 해발 1242미터의 민주지산 정상은 오히려 초라한 모습이었다. 크지 않은 너덜바위 위에 표지석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지산(岷周之山)이라는 산 이름은 산이 높아 눈 아래 펼쳐진 많은 산들을 마치 뭍 백성들을 살펴보는 것처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 근처 바람막이가 된 공터에 둘러 앉아 간식을 들었다.

능선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죽음의 고비를 넘긴 여성도 우리 일행들과 함께 간식을 먹었다. 그녀는 떡이며 부침개와 과일주 등 푸짐한 음식들을 내놓아 우리 일행들이 모처럼 걸쭉한 포식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 봉우리까지 우리들이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다음 목적지는 석기봉, 민주지산에서 저 멀리 아스라하게 건너다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석기봉이었다. 그 봉우리를 바라보며 일행 한 사람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 4개를 넘는 강행군에 녹초가 되다

“그럼, 갈 수 있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안개가 걷히지 않은 희부연 시야 속에 바라보이는 석기봉은 아스라한 모습이 너무 멀어보였다. 그래도 일행들은 다시 힘을 내어 걷기 시작했다. 길은 멀었다. 산길은 여전히 빙판길과 흙탕길의 연속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점점 무거워진다. 아이젠에 달라붙은 진흙 때문에 더욱 힘겨운 것이다.

석기봉에서 바라본 민주지산(앞쪽)과 멀리 보이는 각호산
 석기봉에서 바라본 민주지산(앞쪽)과 멀리 보이는 각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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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은 꼭 군대생활 할 때 극기 훈련했던 것 같구먼, 발목에 모레주머니 차고 장거리 행군훈련 했던 것처럼 말이야”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양쪽 신발과 아이젠에 달라붙은 진흙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흙길에서 아이젠의 효용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리막 진흙길도 상당히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즘이 얼음이 녹는 계절이어서 아직 녹지 않은 빙판길도 미끄럽지만, 낙엽 밑이나 표면이 녹아 진흙탕이 된 흙길 바닥에도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깔려 있어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 미끄러운 진흙길에서 아이젠은 상당한 미끄럼 방지 역할을 해주었다.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 지친 다리를 끌며 석기봉에 이르렀다.

해발 1200미터인 석기봉(石奇峰)도 밧줄을 붙잡고 올라야 했다. 봉우리는 뾰족한 모양으로 암석이 옹기종기 쌓여 송곳니처럼 솟아 있었다. 기이(奇異)하게 생긴 돌(石)들로 된 봉우리라고 해서 석기봉이라고 했다. 바위 봉우리는 쌍둥이처럼 두 개였다.

봉우리에는 아무런 표지도 보이지 않고 사진을 찍기에도 비좁았다. 봉우리에서 바라보니 지나온 민주지산과 각호산이 아스라하다, 반대편의 삼도봉은 능선길로 이어져 저만큼 아래 멀지 않아 보인다. 이제는 거의 다 왔구나 싶은 마음에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린다. 산행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석기봉 근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산악회 리본들
 석기봉 근처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산악회 리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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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내라고, 저기 삼도봉이 지척이잖아?”
모두들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피어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래서 안심이 되는가 보았다. 석기봉을 내려와 삼도봉으로 내려가는 진흙탕 길 아래쪽에 작은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길은 급경사였다. 모두들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이쿠!"

우당탕! 앞서 내려가던 일행이 진흙탕길에 쭈르륵 미끄러진 것이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일행이었다. 일행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두 손을 짚어, 더 이상 미끄러지거나 뒹굴지는 않았다. 그러나 엉거주춤 일어난 일행의 엉덩이와 짊어진 배낭이며 손에 낀 장갑은 진흙범벅이 되고 말았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3도화합의 상징 삼도봉에 오르다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괜찮아, 그런데 이거 기어코 넘어지고 말았구먼, 허허허”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는 우리들에게 그는 멋쩍게 웃고 있었지만 난감한 표정이었다. 옷이며 배낭, 장갑이 흙범벅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유 있게 가져간 또 다른 수건으로 대충 닦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삼도봉은 석기봉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그리 멀지 않았다. 능선길을 따라 잠깐 걷자 삼도봉이 나타났다.

삼도봉 3도민 화합 상징탑
 삼도봉 3도민 화합 상징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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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용화면, 상촌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등 3개도의 경계 지점이라는 해발 1177미터 삼도봉에는 3개도민이 서로 지역감정 없이 화합하고자 세웠다는 화합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탑 위에는 화합의 상징으로 둥근 공 모양의 검은 돌이 얹혀 있었다. 이 삼도봉의 본래 이름은 화전봉(花田峰)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유난히 꽃이 많이 피는 꽃봉우리였던가 보았다.

삼도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길로 나섰다. 목표지점은 물한계곡 주차장, 그런데 봉우리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입구 나뭇가지들이 수많은 오색 작은 깃발들로 가득하다. 이 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매어 놓은 리본들이었다.

조금 내려가자 급경사 빙판길이다. 지금까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다가 흙탕길에서 미끄러진 일행도 할 수 없다는 듯 아이젠을 착용한다. 미끄러운 산행길에서 아이젠만큼 안전에 유용한 장비가 또 있을까.

삼마골재 풍경
 삼마골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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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삼마골재에 당도하니 몇 사람이 여유 있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물한계곡 주차장까지는 아직도 4km는 더 가야했다.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지만 우리 일행들의 표정은 덩달아 여유로워지는 모습이다. 함께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들고 길을 나섰다.

내려가는 길은 양지바른 길이어서 빙판길 없이 마른길과 흙탕길만 이어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이젠을 벗지 못한다. 모두 미끄러운 빙판길과 진흙탕길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쉼터가 나타났다.

“이제 이 아이젠 벗어도 되지 않을까?”
“설마 이제 괜찮겠지? 자, 모두 벗자고.”
과일 한쪽씩을 나누어 먹으며 아이젠을 벗었다. 예상했던 대로 신발과 아이젠에 달라붙은 진흙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젠을 벗고 걸으니 발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가다가 미나미골 개울을 만났다. 얼어붙은 개울 가운데 제법 넓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진흙투성이 아이젠과 신발들을 씻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바짓가랑이까지 물로 씻어낸다. 뒤돌아보니 우리들의 바짓가랑이도 온통 흙투성이다.

“집에 가서 빨면 될 터인데 왜 이 차가운 물에 그걸 씻어내느라 고생하십니까?”
“이렇게 더러운 바지를 입고 어떻게 서울로 돌아갑니까? 이렇게 그냥 집에 가면 마누라한테 혼나요, 허허허.”

허허허 웃으며 농담을 하는 사람의 물속에서 꺼낸 발이 종아리까지 새빨갛다. 얼음물이니 얼마나 차갑겠는가. 그래도 어려운 산행을 무사히 마친 기분이 여간 상쾌한 표정이 아니었다.

얼음물에 발과 흙투성이 바짓가랑이를 씻어내는 등산객
 얼음물에 발과 흙투성이 바짓가랑이를 씻어내는 등산객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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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줄지어 솟아 있는 깊은 골짜기에서 이어져 내려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는 물한계곡은 정말 겨울 가뭄중인데도 얼음장 밑으로 맑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 골짜기에 자리 잡은 황룡사를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내려갈 수밖에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주차장에 내려와 산악회장에게 오늘 산행코스의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17km라고 한다. 얼음이 풀리는 계절이라 빙판길과 진흙길이 많은 요즘이 계절적으로 등산하기에 매우 위험하고 힘든 때다. 산행 시간은 6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민주지산, #빙판길, #진흙탕길, #이승철, #아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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