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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2009년 행사 공식 엠블렘.
▲ 'KULTURA' 빌뉴스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2009년 행사 공식 엠블렘.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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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하기 전 경제난에 봉착

어느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이전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찾아오는 연말연시는 여러 가지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시간이다. 그러나 북유럽의 발트3국 가운데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2009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어느 나라보다 더하다.

수도 빌뉴스가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 린즈(Linz)와 함께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어 비단 유럽만이 아닌,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빌뉴스라는 일개 도시만이 아니라, 리투아니아라는 나라가 유럽 역사서에 거론된 지 정확히 10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건국 1천년 기념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정치적 목적을 종교라는 가면으로 치장한 독일의 기사단들이 리투아니아 주변 지역을 넘보던 시절, 이곳에 선교하기 위해 왔던 독일인들이 러시아-리투아니아 국경지대의 이교도들에 의해 처형된 사실이 독일의 크벤들린부르그 지역 사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1009년이다.

바로 그 책에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한다. 1천년 전 세상에 나온 그 책은 현재 종적을 감추었지만, 16세기에 복사본이 만들어져 독일 드레스덴에 보관되어 있다.

2009년은 '리투아니아' 국명의 1000번째 생일

이런 뜻깊은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 리투아니아는 지난 2004년부터 꾸준히 2009년 유럽문화수도 유치를 위해 노력해 왔고, 2005년 11월 오스트리아의 린즈와 함께 행사를 주최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별달리 커다란 국제행사를 유치해온 바가 거의 없는 리투아니아로서는 독립 이후 최초로 갖는 대규모 국제행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유럽문화수도란 1985년 당시 그리스 문화부 장관이던 멜리나 메르꾸리의 제창에 의해 최초로 시작된 행사로, 매년 유럽의 한 국가가 선정되어 1년 동안 그 도시를 전 유럽에 알릴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는 해이다.

단어에서 보이는 바대로, 단지 도시의 아름다움이나 역사성보다는 특정한 해에 그 도시가 갖는 가치와 그 해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문화행사를 기준으로 도시를 선정한다. 그러므로 2009년은 리투아니아가 이 행사를 유치하는 데 가장 적절한 해임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구소련 지역 최초로 유치되는 유럽문화수도

유럽문화수도는 1985년 아테네에서 시작한 이후 1999년까지 매해 한 도시씩 맡아 해오고 있었는데, 2000년에 이례적으로 9개 도시가 동시에 그 행사를 유치한 이후 매년 한 개, 혹은 두 개 도시에서 유치해오고 있다.

발트의 이웃나라에서는 에스토니아 탈린이 2011년에, 그리고 라트비아는 2014년에 유치하기로 결정이 되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도시는 결정이 되지 못했다(그러나 수도 리가가 유치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므로 구소련 지역에서도 최초로 리투아니아의 빌뉴스가 유럽문화수도를 유치한 셈이 된다.

빌뉴스는 2009년 문화수도로 지정된 이후부터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대중교통수단과 버스정류장의 광고판을 이용해서 유럽과 전 세계의 유명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서 전 시민의 '집단문화교육'를 주도했다. 또, 물 밀듯 밀려들 외국 관광객들에게 대처하는 차원에서 버스나 트롤리버스 내에서 영어, 폴란드어 등 외국어 교육도 '반강제적'으로 시켰다.

리투아니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성당 광장에 마련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 대성당광장 리투아니아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성당 광장에 마련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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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 결정 후 몇 년간 이어진 '집단문화교육'

2006년부터 지금까지 빌뉴스의 낙타라고 불리는 트롤리버스와 일반버스의 벽면은 리투아니아 출신을 비롯한 전 세계의 문화예술계 인물에 관한 정보로 도배되어 있을 정도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쇼스타코비치 등 유럽 최고의 작곡가들과 리투아니아 출신의 츄를료니스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는 버스들은 최근 수년간 내내 빌뉴스 시내를 누비고 돌아다녔고, 몇몇 위인들의 사진은 빛이 바래 제대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건물 대규모 전광판, 버스 정류장 광고판, 옥외 광고판 등 사람들의 눈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가릴 것 없이 무차별 쏟아붓는 문화교육이 싫은 사람은 그냥 집에만 있거나 완전히 눈을 감고 다녀야할 판이었다.

2009년에 대한 준비는 억지로 시민들에게 문화교육을 시키는 데에만 멈추지 않았다. 13세기부터 17세기 리투아니아 정치권력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로서는 흔적만 남아있는 왕궁을, 7월 6일 리투아니아 최초이자 유일한 국왕인 민다우가스 대관식 기념일에 맞추어 완공하기 위해 재건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완공된 그 건물에는 과거 중세 리투아니아 왕족들의 삷을 재현해 놓은 볼거리와 함께 국제박람회까지 열 수 있는 대규모 전시장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물론 그런 것들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많이 준비하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 무대예술 등 전반적인 문화와 관련된 행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로 빌뉴스에 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경연대회, 음식축제, 패션쇼 등의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이어진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세계 각국에 퍼져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빌뉴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리투아니아 문화대사제도이다. 직업, 나이, 학력 등에 관련 없이 빌뉴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이라면 소정의 절차를 걸쳐 빌뉴스의 문화대사로 활동하여 각국에 빌뉴스에 대한 정보를 알리며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리투아니아 항공에서는 리투아니아 문화대사들에게 항공권 10%를 할인해 주는 과감한 특권까지 선사해 준다. 현재 리투아니아의 많은 유명인사들과 더불어 대략 500여 명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한국인도 두 사람이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돈줄이 끊겼다...

지금까지 이번 행사를 치러온 나라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도시들 중심이었다면, 빌뉴스처럼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만한 개발도상국의 도시에서 열린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라서,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이번 행사는 일개 도시를 홍보한다는 가치를 넘어선다. 이번 행사가 갖는 의미는 빌뉴스만이 아닌 국가 자체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올해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국인들의 관심과 비교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몇 년간의 준비 끝에 성공적으로 끝날 것만 같던 이 행사는 난데 없는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가 리투아니아 역시 그냥 비켜가지는 않은 것이다. 이번 행사에 가장 큰 후원자인 리투아니아 정부가 행사 지원액을 50% 삭감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 전 문화수도조직위원회는 경제위기를 통감하여 초기 예산을 무려 12%나 줄이기로 자체 결정을 내렸으나, 정부가 발표한 50% 삭감은 이번 행사를 '제대로' 치르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수준. 2009년 행사를 위해 예상되는 금액은 총 10억5천만 리타스(우리돈으로 대략 558억원)이지만 그 중에서 리투아니아 문화부가 담당한 금액은 4190만 리타스로 그 외 금액은 빌뉴스 시청 1600만 리타스)과 업체들의 후원금으로 마련될 예정이었다.

12월 초 그러한 예산 축소 결정이 발표되자 정작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떤 행사를 취소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고 말았다. 현재 전자음악축제와 아이슬란드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대규모 야외공연 프로젝트 등  굵직한 행사들의 취소 위기에 놓여있다.

빌뉴스로 천도한 게디미나스의 동상 뒤로 올해 7월 완공 예정 중인 왕궁공사 현장이 보인다.
▲ 예정대로 공사를 마칠 수 있을까 빌뉴스로 천도한 게디미나스의 동상 뒤로 올해 7월 완공 예정 중인 왕궁공사 현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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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국무총리 관저 공사도 잠시 양보

정부와 관련 단체는 행사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모으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것은 내년 7월 완공 중비중인 왕궁 건설이다. 그 뿐 아니라 리투아니아 외무부 건물 공사나 대통령 및 국무총리 관저 수리 공사에 들어갈 자금에서도 역시 반 강제적인 갹출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같이 문화수도를 준비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린즈의 경우에는 보다 여유가 있다. 린즈시의 2009년 행사 예산은 이미 3년 전에 결정되었고, 요즘 같은 전 세계적인 경제난에도 아랑곳 없이 변함 없이 집행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예산 자체도 빌뉴스의 두 배가 넘는다. 그리고 린즈 시가 이번 행사를 통해서 꾀하는 목적 역시 빌뉴스와 큰 차이를 보인다.

공업도시인 린즈는 비엔나나 그라즈 같은 오스트리아의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볼 때 그다지 알려진 도시가 아니다. 그동안 공업도시로서만 알려진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문화도시로서의 부활을 꾀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행사는, 리투아니아처럼 범국가적 사활이 걸린 행사가 아니라, 도시 한 곳의 홍보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빌뉴스는 정작 린즈시와 비교도 안되는 예산으로 국가적 행사를 치러야 하고, 경제난으로 인해서 그마저 축소될 위기에 처해있다.

허리를 졸라맨 투자, 과연 성공 가능성은?

빌뉴스가 풀어나가야할 숙제는 그 외에도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지하철이나 시가전차 등이 전부한 비교적 열악한 교통상황,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비가 되지 않은 도로나 거리 등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속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수도 행사를 계기로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지 상당히 미지수이다.

예전보다 더 많은 재정 적자가 예상되는 2009년,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매진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부디 그것이 무모한 도전이 아닌, 리투아니아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한 가치있는 투자로 기억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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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럽문화수도, #리투아니아, #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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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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