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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섬유산업의 키워드는 친환경과 산업용섬유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섬유산업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이 키워드를 찾는 노력이 섬유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방향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강력한 정책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지원이 있었다 하더라도 방향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섬유산업 합리화조치에서부터 밀라노 프로젝트를 거쳐 섬유·패션산업 구조혁신전략, 섬유 스트림간 협력사업 등 정부의 지원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섬유산업을 이끌어 왔던 기업 경영자들의 인식과 투자 마인드 또한 당장 앞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렇게 흘러가 버린 시간. 섬유 선진국들은 대한민국이 넘을 수 없을 만큼 큰 격차로 앞서 달리고 있다. 탄소섬유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은 1990년대였다. 그러나 이 탄소섬유의 생산과 연구개발은 중단됐다. 국내 유일 생산 업체였던 태광산업이 생산과 연구를 포기하면서 100% 수입에 의존했다.

일본은 도레이사를 중심으로 수십 년간 탄소섬유에 공을 들인 결과 미국 항공기 부품 소재는 물론 우주선, 첨단무기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의 수익 또한 엄청나다. 탄소섬유가 국방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실기를 한 셈이다. 뒤늦게 전주시가 탄소 밸리를 만들고 효성이 탄소섬유 육성에 뛰어들었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는 것.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으면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늦었지만 이 방향이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넘어가야 할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산업용 섬유 비중은 22%대에 머물러 있다. 일본, 독일, 미국 70%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산업용 섬유를 육성해야 한다는 말은 정책당국이나 섬유업계가 늘 외치고 있지만 실제 생산구조가 일본처럼 바뀌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는 것.

문제는 수요다. 수요가 없으면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 없다. 기술과 생산설비를 구축했음에도 중도에 포기한 산업용 섬유가 탄소섬유 뿐만은 아니다. 산업용 섬유는 건설, 국방산업, 자동차산업 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국내에서 생산된 산업용 섬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수요가 촉진되기 힘들다. 국내시장을 벗어나 수출시장을 개척하라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고 생산기업들은 항변한다. 정책당국이 산업용섬유의 국내 시장 안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에 난연 섬유만 적극 사용했더라도 국내 산업용 섬유시장은 훨씬 빨리 성장했을 것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공공장소의 난연 섬유 의무화도 너무 늦었으며 진행 속도 역시 거북이 걸음이라는 것. 지하철과 공공장소 등의 대형 화재를 경고하고 석면의 위험성을 귀가 따갑도록 외쳐 댔지만 난연섬유의 수요는 부진했다.

지하철의 대형화재가 발생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석면으로 지하철 공기가 발암물질로 가득 차고 있는데도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는 것. 대형 사고 뒤 지하철 의자를 알루미늄 판으로 바꿔버리는 식의 사고로는 산업용 섬유가 정착되기 어렵다며 난연섬유 수요 확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해 국방관련 건물, 관공서, 대학, 연구소, 섬유관련 시설등 국가 중요 시설 및 다중시설물에 국산 난연 섬유 사용 의무화를 강력하게 추진해 산업용 섬유의 수요를 촉진 시키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 또한 탄소섬유 아라미드 섬유 같은 첨단 산업용 섬유 기술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한 자금 지원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 첨단 산업용 섬유를 연구 개발 생산하는 기업에 방위산업체에 버금가는 혜택과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 기업들간 협력과 기술공유는 물론 특화산업을 한 기업이 전담해 맡는 특성화 정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용 섬유의 육성과 함께 친환경 섬유제품의 연구와 개발에도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EU지역에서 개최되는 대형 섬유전시회와 패션쇼의 트렌드는 친환경 쪽으로 옮겨갔다는 것. 친환경 제품 개발은 지구 온난화와 함께 2013년 본격화 될 교또 의정서와 맞물려 있어 화학섬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넘어야 할 장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EU는 지난 6월부터 리치(REACH : 유럽연합 신화학물질관리제도)를 발효시키며 친환경 제품 이외에 섬유제품이 수입되지 못하도록 강력한 무역 장벽을 쌓았다. 일본도 유해 성분이 들어간 제품의 수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이런 장벽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친환경 제품 쪽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섬유업계도 페트병을 재활용한 의류용 원사에서부터 오가닉 면사, 인지오(식물계 플라스틱), 펄프 재생섬유(텐셀, 모달, 라이오셀), 대나무 섬유 등 친환경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더욱이 친환경 섬유소재의 원천 기술이 대부분 선진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한일합섬의 펄프 재생섬유 '라이오셀' 원천기술은 날개를 펴지도 못한 채 사장될 위기를 맞았을 정도다. 이 기술은 최근 효성이 인수해 살려나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핵심 키워드가 산업용 섬유와 친환경 섬유 육성의 두 갈래 길로 모아지고 있으나 이들 두 분야에 대한 선진국들의 기술 수준이 워낙 앞서 있어 과거와 같은 걸음 거리로는 따라잡기 힘들다는 분석이지배적이다. 대한민국 섬유패션산업이 이런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정부 지원책과 기업들의 연구기술 개발 의지, 그리고 수요촉진 정책 등 3박자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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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텍스타일라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섬유, #산업용섬유, #친환경 섬유,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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