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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 건너편에 있는 인사아트센터 입구에 걸린 홍보용 이융세전 포스터
 인사동 쌈지길 건너편에 있는 인사아트센터 입구에 걸린 홍보용 이융세전 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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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작가 이융세(52)의 기획초대전이 인사아트센터에서 24일까지 열린다.

국내에서 6년 만에 한지를 구기고 반죽한 독특한 기법의 추상화 25여점을 선보이는 것. 태곳적 삶의 흔적과 발자취를 담은 것 같은 그의 작품은 우선 재질이 한지라 관객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특징이 있다.

그는 동양철학의 중심이 되는 음양조화에 관점을 두고 있다. 수학에도 음수와 양수가 있고 날씨도 맑음과 흐림이 있듯 그림의 색조와 형태에서 밝음과 어둠, 진함과 엷음 등을 음양의 원리를 고려하여 조화와 균형에 이루는데 신경을 쓴 것 같다.

이런 그림으로 동서양문화의 차이와 갈등도 해소하고 융화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프랑스에서 자랐지만 한국적인 것에 끌려

작가 이융세와 그의 어머니 박인경 여사. 그녀는 화가이면서 대전 이응로미술관 명예관장이기도 하다. 뒷면 왼쪽 '벽돌(Briqu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30×130cm 2001
 작가 이융세와 그의 어머니 박인경 여사. 그녀는 화가이면서 대전 이응로미술관 명예관장이기도 하다. 뒷면 왼쪽 '벽돌(Briqu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30×130cm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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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장 고암 이응로의 아들로 3살 때 한국을 떠나 40살에 처음 귀국할 정도로 대부분의 생애를 프랑스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동백림 사건으로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자 학교 가기를 싫어해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더 한국적인 것에 심취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작업노트에도 "프랑스에서 자랐지만 한국적인 것에 이끌려 한지작업을 시작했으며, 내 한지작업에는 채색과 조각, 부조, 탁본 등 학교와 아버지에게서 배운 모든 것이 섞여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뷰 중 알게 되었지만 그는 <오마이뉴스>의 상당한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프랑스자판을 쓰다 보니 국제 쿠리에(courrier international)를 통해서 들어가지만 한국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기사 내용도 흥미롭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예술가란 10대의 감성을 평생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피카소도 말했지만 그의 첫인상이 바로 그랬다. 눈길은 부드럽고 목소리는 고요하고 마음은 해맑아 보인다. 그는 영락없이 예술가였다.

나무판을 조각 그 위에 젖은 한지를 두들기거나 구기거나

'푸른색(Bleu)'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62×165cm 1998. '푸른색은 푸른색만이 아니다'라는 말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특이한 청색계열이다
 '푸른색(Bleu)'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62×165cm 1998. '푸른색은 푸른색만이 아니다'라는 말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특이한 청색계열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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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청색계통의 블루만큼 마력을 가진 색도 또 있을까. 김환기의 블루도 우리를 매혹시키지만 이융세의 블루도 우리시대에 부응하는 현대적 색채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추상에서는 흔히 색채가 독립적 요소를 쓰이지만 작가의 말로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색을 쓴단다.

그는 한지와 나무를 같이 쓰고 있는데 이는 유기적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은 나무판을 조각하여 그 위에 젖은 한지를 올린 후 두들기거나 구겨서 모양을 만든 다음 한지가 마르면 떠내는 방식이다. 그런 질감이 주는 은유적 표현력은 의외로 막강하다. 그윽한 청색의 멋을 풍기면서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도 한다.

서양적 추상에 동양적 정신을 담다

'반사광(Reflet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40×137cm 2008
 '반사광(Reflet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40×137cm 2008
ⓒ 이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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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공은 원래 조각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토템'을 주제로 나무로 만든 조각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런 요소가 회화에 적용이 되어 작업의 진화과정을 가져오고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렇게 그는 조각과 판화 그리고 회화의 장를 넘어 그것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다.

여기에서 보면 톤이 다른 여러 노란색을 동시다발적으로 쓰고 있다. 동양화에서 흔히 말하는 농담(濃淡)의 효과도 내고 은은하게 떠오르는 자연의 관조적 모습도 담는다. 이렇게 서양적 추상에 동양적 정신과 기법도 곁들여 동서양미술을 한 작품에 묶어놓은 것 같아 재미있다.

위의 그림제목이 '반사광'인데 이는 세상의 모든 햇살을 다 빨아들여 이를 다시 반사시키는 효과를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반사광의 색채와 질감이 주는 흡입력은 도무지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작품은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림의 바다에 빠져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이 맑아지면서 그림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색채의 특이함은 동양화법인 번짐과 스밈에서

'꿈(Rev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8. '모래언덕(Dun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6. '심해(Abyss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8
 '꿈(Rev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8. '모래언덕(Dun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6. '심해(Abysses)'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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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꿈', '모래언덕', '심해(깊은 바다)'의 색채는 하여간 제각각 특이하게 다르다. 그건 아마도 서양화에서 칠하는 개념이 아니라 동양화에서 쓰는 번지거나 스미는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인가 보다. 작가가 언덕이나 바다를 보고 거기에서 얻은 꿈이나 영감을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채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정도는 알 듯하다.

그런데 그의 추상은 겉은 고요하고 잔잔해 보이지만 속은 은밀하게 충돌과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떤 때는 폭풍우가 칠 것 같다. 이런 건 그의 부친이 당한 정치적 탄압이나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한 이국에서 외로움 등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데 연연하기보단 오히려 그런 점을 창작에 활력을 주는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 같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의 작품에 아낌없는 투신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작품 하나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으니, 여러 작품을 같이하기에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어떤 때는 서너 달 걸린단다.

자연과 미세한 세계가 만든 우주를 그리다

'진흙(Glaise)'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30×130cm 2006
 '진흙(Glaise)'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130×130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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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의 색채와 무늬는 정말 날 것처럼 거칠어 보인다. 그래도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니 놀랍다. 그 이유는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제목을 보고 굳이 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물질의 4원소를 언급하지 않아도, 자연을 조망한 후 얻은 영감을 작가의 삶과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다.

"아버지께서 인간을 그리셨다면 저는 자연과 미세한 세계가 만들어내는 큰 우주를 그린다고 할 수 있다"라고 작가도 수기(手記)에서 밝히고 있지만, 그의 그림은 요철이 반복되는 독특한 마티에르가 주는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잘 살리고 있다.

고암 이응로도 예술이란 결국 뿌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이융세의 계보학도 가까이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싶다. 어떻게 보면 50~60년대 화강암 같은 질감에 구상화를 그린 박수근도,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투박하고 거친 단색조 추상화도 그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참된 예술은 결국 동서양을 넘어 서로 만난다

'불(Braise)'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6. '안개(Brumes)' 200×135cm 2006
 '불(Braise)' 한지에 먹, 구아슈, 아크릴 200×135cm 2006. '안개(Brumes)' 200×135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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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기 이런 붉은 색의 '불'과 암회색의 '안개'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찌 보면 한국과 프랑스의 중간지점에서 만나 생긴 색채 같다. 서양인이 보면 동양적이고 동양인이 보면 서양적인 그런 색, 하여간 그의 색채는 퓨전음식처럼 동서양의 것이 뒤섞여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예술은 결국 동서양을 넘어 서로 만나게 되어있다."

이제 끝으로 이지호 대전시립미술관장의 전시서문 '은밀한 충돌과 조용한 통섭의 미학' 중 끝으로 인용하면서 맺고자 한다.

"[…] 혼란을 넘어선 이융세의 작업은 다양한 (동서)문화의 융합과 혼종을 은밀히 드러내며, 치밀하게 계산된 마티에르작업과 공감을 일으키는 색채표현으로 조용한 통섭(統攝)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융세는 동양의 세계를 서양의 추상에 담는 작가?
작가의 작업실. 종이며 나뭇조각이며 패널이며 작가의 작업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작가의 작업실. 종이며 나뭇조각이며 패널이며 작가의 작업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 이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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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6년 서울 출생했고 1960년 이후 지금까지는 파리에서 살고 있다. 에콜 다르 그라픽(판화미술학교 1974-1975), 에콜 다르 아플리케(응용미술학교 1975-1976),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미술실습학교 1976-1978), 에콜 데 보자르(파리국립미술학교 전공 조각 1980-1984) 등에서 공부했고 그의 아버지가 세운 동양미술학교에 수학했다.

주요 개인전은 인사아트센터(서울 2008)  아르떼 솔 갤러리(소로틴, 스위스 2007) 누마가 갤러리(소로틴, 스위스 2006)  표 갤러리(서울 2002) 아르레트 지마레 갤러리(파리 2001) 아르덴 미술관(샤르빌-메지에르, 프랑스 2000)  아르레트 지마레 갤러리(파리 1998) 현대갤러리(서울 1997) 아르레트 지마레 갤러리(파리 1996) 예술과 퍼포먼스, 포바 엔터프라이즈(레 유리스, 프랑스 1994) 아르레트 지마레 갤러리(파리 1993) 고려 갤러리(파리 1987)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기관은 한솔재단(서울 1997), 한림미술관(대전 1997) 글락소 연구소(파리1997) 콜라주, '여정에 관한 주제'(프랑스 1996)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가나아트센터 종로구 관훈동 188 www.ganaart.com 02)736-1020



태그:#이융세, #이응로, #박인경,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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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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