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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꿀꿀한 하루가 되겠구나 싶었는데 연이어 힘든 일들이 파산한 집구석에 날아드는 고지서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습니다.

 

땡볕 아래 땀 범벅인 농사일은 끝이 안 보였고, 어머니의 군담과 나무람을 점점 도를 더 해 갔고, 지난 월요일(9일)에 가슴을 눌러가며 다녀왔던 아들 학교로부터는 사고가 났던 아들 문제가 제대로 풀리는 것 같지 않은 통지가 오고.

 

급기야는 어머니가 큰 것을 실수를 하여 여기저기 뭉개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때야 퍼뜩 알아챘습니다. 내가 끌어들이고 있구나.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불러들이고 있구나. 나는 아무래도 어머니 똥과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뭔 일이 막힌다 싶으면 어머니가 똥으로 그 출로를 만드시고 하네요.

 

그러는데 택배가 왔습니다. 출판사에서 보낸 제 원고가 실린 이번(7월)달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책이 몇 권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선물꾸러미였습니다. 감탄하며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는데 조금 전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늘님이 나를 위로하고 마음을 돌려먹게 하려고 참 애를 많이 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선물까지 보냈구나 싶었거든요.

 

선물은 해당 월간지 3권에 그 출판사의 단행본 한 권, 예쁜 수건 1장, 양말 3켤레, 봉함 꽃편지 2통, 야생화 엽서 5장이었습니다.

 

선물들을 챙겨 보면서 나 자신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나를 마음대로 못하면서 남을 내 마음대로 하려다가 내가 힘들어 하고 있음이 보였습니다. 나무라거나 벌을 줘서 내를 깨우친 게 아니라 작은 선물을 받으면서 나를 깨우쳤습니다.

 

무심코 펼친 <좋은 생각>에 이런 글이 있네요. 저한테 하는 말 같았습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되는 일은 되게 하고 안 되는 일은 억지로 하지 않으니 그 인생이 쉬울 수밖에 없고, 소인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니 그 인생이 어찌 힘들지 않으리오. 큰 사람은 자기 할 일을 자기 능력만큼 하면서 하늘의 명을 기다릴 따름인데 소인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저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되는 일, 안 되는 일을 알아채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할 줄 알게 하소서. 세상 아주 작은 모든 것에서 나를 바꾸어 내는 열쇠를 발견하고 미욱함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좋은 생각' 7월호에 실린 내 글

- 명약이 된 어머니의 분(粉) -

 

해발 600미터인 이곳 덕유산 기슭의 봄은 아주 늦다. 티브이에 벚꽃놀이 상춘객 소식도 뜸 해 질 무렵에서야 햇 쑥들이 뾰족뾰족 올라오기 시작했다.

 

볕 좋고 하늘 높은 어느 날 양지바른 밭 둑 아래로 가서 오순도순 나랑 쑥을 뜯던 어머니가 발목을 삐게 되었다. 쑥을 쫒아 옮겨 앉으시다가 못 쓰는 다리를 그냥 깔고 앉으셨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 고관절 수술을 한 뒤로 왼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고 치매까지 겹쳐 휠체어로 생활하는 어머니의 발목 부상으로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명약을 만나게 되었다.

 

팅팅 부어오른 어머니 발목을 집에 와서 더운물로 주무르고는 겨자찜질을 하는데 어머니가 파스 한 장을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장롱에서 이상한 꾸러미를 꺼냈다.

 

“해외에서 군수가 사 다 준 건데 이거는 바르기만 하면 뭐든지 다 낫는 약이다.”

 

홀쳐 맨 겨울 털 모자 속에서 어머니가 꺼낸 것은 분홍색 보자기였다. 그 보자기를 풀자 이번에는 노란 고무줄로 여러 겹 동여 맨 비닐봉지가 나왔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분이 있었다. 내가 4년 전에 사다 드렸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머니는 천연덕스럽게도 내가 꺼내 놓은 파스에다가 분을 골고루 뿌렸다. 새하얀 분가루가 상념처럼 날렸다. 분이 발린 파스를 어머니 발목에 대고 붕대로 감았다.

무섭게 부어오르고 시커멓게 멍이 들었던 어머니 발목은 보름 이상 갈 거라는 내 예상을 뒤집고 다음날 거짓말처럼 나았다. 여든 일곱 노인네 몸에 기적이랄 수 밖엔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4년 전 서울 형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작은 방에서 귀저기를 차고 종일 누웠다 앉았다만 반복하고 있는 어머니가 내게 “오줌 나오는 데가 너무 따갑다”고 해서 어머니의 수줍은 손길을 제치고 살펴보다가 헐어 있는 어머니 아랫도리에 큰 충격을 받고 시골집에서 내가 어머니를 모셔야겠다고 다짐을 하게했던 그날 사다가 발라드렸던 바로 그 3천 원짜리 분 한통이 세상에 둘도 없는 명약이 된 것이다.

 

어머니 삶 속 최고의 권력자인 군수가 그것도 해외(!)에서 사다 준 명약으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좋은 생각'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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