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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화창한 봄날이면 과년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이렇게 좋은날 자식 결혼도 못시키고’ 하며 애석해 한다. 매일 매일 새롭게 커져가는 연초록 잎사귀를 볼 때마다, 빨리 이 봄이 가기 전에 결혼을 해서, 대자연의 축복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더욱 간절해진다.

얼마 전 인근의 산을 오르다가 한 등산객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날씨도 좋고, 산도 좋고 하다가 아주머니는 뜬금없이 어디 처자 한 사람 소개시켜 줄 수 없냐고 하였다.

“왜요?”
“아, 우리 아들이 결혼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좋은 봄날을 그냥 흘려보내려니 너무 아쉬워서…. 이 봄에 확 결혼시켜야 되는데, 그래야 잊어버릴낀데, 결혼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는데 그 인연 맺기가 이리도 어려우니 안타까워서….”

내 아이는 아직 결혼하려면 새까맣게 어리지만 그 아주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기에 알아보겠다고 하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결혼의 과정 중 ‘예단 예물’ 주고받기는 가장 예민한 문제

아무튼, 결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는 요즘 결혼 적령기의 남녀를 보면 좀 더 옛날에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년 전에만 해도 돈 없이도 결혼할 수 있었고 집 없이도 결혼할 수 있었다. 

내 친구들은 다들 결혼비용이 많이 들면 2천만원이요, 적게 들면 천만원으로도 가능하였다. 집은 지방의 경우 24평 전세금 3천만원만 있으면 되었다. 그보다 못할 경우 13평 방 두 칸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도 오붓하기만 하였다.

아무튼 10년 전에는 집값이 요즘처럼 결혼을 옥죄지는 않았다. 신혼부부는 당연 전셋집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상식이었고, IMF구제 금융을 받던 시절이라 집값은 그 이전 보다 오히려 쌌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예단’과 ‘예물’이었다. 이 ‘예단 예물’은 양쪽 집안의 ‘존심’이 걸려있는 문제라 까딱 잘못했다가는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서로 험하게 싸우게 된다. 내 경우, 돈도 없고 둘 다 예단, 예물을 싫어하는 쪽이라서 일단 무조건 간소하게 하자고 합의를 봤다.

♦ 예단의 경우: ‘간소하게’라는 합의사항을 양쪽 어른들께 운을 띄운 다음, 내 쪽에서 예단비로 300만원을 드렸더니 시어머님은 100만원을 우리 집 예단비로 주었다.

나는 300만원을 드렸는데 시어머님은 왜 100만원 줄까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그 전에 형님의 경우 500을 드렸는데 100을 내준 전례가 있다기에 그냥 이해했다. 나는 그 100만원을 쪼개서 현찰로 내 가족들에게 주었다. 돈 액수가 섭섭하면 나중에 청구하라고 하고 마음 속으론 나중에 그 몇십 만원의 열 배는 꼭 갚아야지 생각했다(실천 중이다).

♦ 예물의 경우: 예물? 보석?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것은 생각만 해도 속 시끄럽고 없으면 ‘홀가분하다’는 것이 당시의 내 생각이었다. 아니, 보석은 속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혐오하는 쪽이었다. 아무튼, 이 예물에 대한 생각도 배우자와 일치했기에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고’의 원칙에다 정 할 수 없으면 ‘시계나 하나씩’이었다.

당시 예물 맞추러 간다니까 올케언니는 해준다고 할 때 그냥 조용히 받으라고 충고하였다. 아니, 고모를 믿을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따라가겠다기에 억지로 말리고 나 혼자 갔다. 시댁 쪽에서는 남편, 형님, 어머님 세 사람이 나왔다.

우선 합의한 대로 시계를 하나씩 하고 말려는 찰나, 시어머님은 형님과 똑같이 해줘야 된다면서 보석을 권하였다. 나는 정말 그런 것 원치 않는다며, 나중에 딴소리 하지 않는다며 진심을 전달해도 시어머님은 그래도 그게 아니라면서 고집을 피우셨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쌍가락지를 하기로 하고. 쌍가락지 말고 다른 것을 하나 해야 된다고 해서 마침 게 중 싸 보이는 진주가 눈에 띄길래 그것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30만원(?) 정도하던 진주 목걸이+반지를 하였다.

금은방 순례 후, 다소 늦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시어머님은 말하길,

“그래도, 그게 아닌데…. 마아, 돈으로 줄까?”
“안 주셔도 되지만 정 그렇다면 돈으로 주세요.”
“돈으로 한 100만원 줄까? 그런데 지금은 백만원은 없고 80만원뿐이네.”
“아, 괜찮아요. 20% 깎아서 80만원 주세요. 아니 50만원만 주세요.”
“괜찮겠나?”
“아, 안 주셔도 정말 괜찮고요.”

예단, 예물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예물 많이 못 받아서 억울하냐하면, 천만에. 그때 타협차원에서 하지도 않을 진주 목걸이 세트를 받은 것도 후회되는데 만일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았다면? 생각만 해도 애물단지다. 쌍가락지는 순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여간, 내 생각은, 오늘날 청춘남녀의 결혼에 예단이나 예물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양가가 합의해서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예단 예물의 전통적 의미는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단, 예물 주고 받다가 결혼도 하기 전에 파열음이 난다면? 또는 그러한 파열음이 결혼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라도 한다면? 그냥 그런 것 무시하고 함 살아보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왜 자꾸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냐고요? 주변을 두루 탐문해 볼 때 예물 많이 주고 받은 쪽 보다 예물이랄 것도 없이 대충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더 편하게 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예단, 예물의 액수가 각각 천단위로 넘어가는 집도 많으니 그게 다 낭비고 사치가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허장성세를 아무런 회의 없이 예비 신랑신부가 수용한다면 그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신랑 신부의 애정이 견고하지 않거나, 부모로부터 완전 독립된 마음바탕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몸도 정신도 성인인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하는 데는 18K반지나 팔지 하나로도 충분하다. 대신 부모형제에게 예를 보여야 된다면 각자 '자기 부모형제'에게 하는 것은 어떨까.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께, 언니 오빠 동생에게, 그동안 함께했던 삶이 소중하고 고마웠다는 뜻으로 성의껏 선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뒤탈이 없지 않을까. 받는 쪽에서는 내 피붙이가 주는 것이니 적으니, 성의 없니 따지지도 않을 것이고.

덧붙이는 글 | 친환경 결혼식 응모



태그:#예단,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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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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