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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20주년.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위기라고 한다. 80년대를 휩쓸었던 NL이나 PD는 매력을 잃은 지 오래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도 별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여전히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 아직도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초심이 있는 사람들. 여전히 진보적 비전을 가지고 진보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좌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김대호의 <진보와 보수를 넘어>.

저자 김대호는 자신의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전형적인 386세대이다. 386 중에서도 가장 기가 센 학번에 속하는 서울 공대 82학번으로 '80년대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약간 과격하게 몸을 놀린 적'이 있다. 1년간의 무기정학, 2차례의 징역 생활, 2년간의 공장 생활, 이후 5년간 구로 지역에서 노동 상담, 교육, 정책 연구를 했다. 이 정도면 수십만 386 중에서도 진성 386에 속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넘은 책

김대호의 이번 책은 본인의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대우 자동차 하나 못살리는 나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대우 자동차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두 번째 책은 <한 386의 사상 혁명>이다. 세 번째 책인 <진보와 보수를 넘어>는 김대호의 '사상 혁명'이 그 결실을 맺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였던 김대호가 사회주의도 넘고 그 앤티 테제인 신자유주의도 넘어 드디어 종합을 이룬 역작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의 키워드(keyword)는 '공평'이다. 김대호 사상 혁명의 핵심이 '공평'이란 두 글자로 압축된 것이다. 그는 공평 원리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를 수미 일관되게 분석하고 있다. 또 그 분석에 기초해서 국가 개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자유방임주의자가 자유라는 원리로 한 사회를 분석하고 자유의 원리에 입각해서 사회 개혁 정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김대호를 공평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공평론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기여, 부담, 의무와 이익, 혜택, 권리의 균형이다. 즉 기여한 만큼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고 부담한 만큼 혜택을 보는 것이며 사회적 의무를 다한 만큼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다. 둘째는 합리적 불평등이다. 이는 평등에 비해 사회 전체에 더 많은 이익을 주어야 하고 동시에 사회의 최소수혜자에게도 평등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어야 정당하다. 셋째는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가가 사회적 최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에 비해 정의로운 것은 바로 합리적 불평등을 잘 구현하기 때문이며, 한국 자본주의가 선진 자본주의에 비해 악질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이는 바로 합리적 불평등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코리아 선진화의 관건은 바로 합리적 불평등, 다시 말해 공평 문제의 해결 여하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공평'

이런 공평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사회 개혁 대상은 기존 좌-우 대립 구도를 뛰어넘게 된다. 소위 우파와 좌파 혹은 보수와 진보의 본류가 개혁 대상이다. 시장 지배적 언론, 과도한 진입장벽 내지 독점권을 가진 일부 전문직, 거대 이익 집단과 결탁한 관료 집단, 사학 재단 등은 오른쪽의 개혁 대상이다.

그에 반해 대기업-공기업 노조, 농민 단체, 교사 집단, 공무원 등은 왼쪽의 개혁 대상이다. 오른쪽에 있는 이익 집단들은 주로 '자율'을 기치로 내걸고 고상한 방식, 즉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은밀히 로비를 하여 자신의 사익을 추구한다. 왼쪽에 있는 이익 집단들은 주로 '공공성'을 기치로 내걸고, 좀 요란한 집단 시위 방식으로 자신의 사익을 관철하려 한다. 본질은 둘 다 자신의 사회적 기여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려는 도적떼적 행태이다.

저자는 한 사람은 자동차의 왼쪽 바퀴를 끼우고, 다른 사람은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단지 한 사람은 정규직이고 다른 사람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우에 질적 차이가 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러한 불공평한 현실의 밑바탕에는 사회전반적으로 정의와 공평의 원리가 내면화되지 않은 한국의 전근대적 토양이 있고, 이 토양 위에서 자라난 도적떼적 심성이 넘치는 이익집단에 불과한 노조가 있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OECD 교육지표가 발표한 교사들의 처우를 1인당 GDP로 나누어 보고, 한국 교사들이 초중고를 막론하고 1인당 GDP 대비 세계에서 가장 높은(2위와 엄청난 격차가 난다) 처우를 받는 반면 정규 수업 시간은 최하위라는 것을 밝혀냈다. 결혼정보회사의 신랑감, 신부감 선호도 조사에서 공무원, 공기업직원과 더불어 교사가 최상위권을 구가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노동의 양·질 대비 상당한 고연봉과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높은 진입장벽(자격증 제도) 및 과도한 신분보장 등 특권에 대한 점진적 조정 없이 교육재정 증대, 교사수 증원, 보충학습 활성화 등이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좌, 우 개혁 병진론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좌파 개혁과 우파 개혁이 모두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좌우파 개혁 병진론이다. 가령 연금 개혁을 보면 수백만 노인들을 연금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가입자의 1/3 이상(600만명)이 연금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여 연금혜택을 볼 수 없는 현행 연금 제도를 폐지하고, 조세방식이든 보험료 방식이든 매년 필요한 만큼 걷어 공적 보장 수준을 약간 하향 조정하는 대신에 사각지대를 없앨 것을 주장한다.

이는 전형적인 좌파적 개혁이다. 그런데 저자는 최소한의 공적 보장 이상의 부분은 개인들이 자율 책임하에 다양한 연금 펀드를 선택할 수 있게 의무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 연금관리 공단에 200조원 정도 쌓인 돈의 상당 액수를 점차적으로 연금의 주인한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형적인 우파적 개혁이다.

의료 개혁에서는 보험자간 경쟁을 촉진하고, 고급 보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민간 의료 보험의 도입을 주장한다. 이는 전형적인 우파적 개혁이다. 동시에 현재 무늬만 공공인 공공의료 기관을 실질적인 공공의료 기관으로 바꾸자고 한다. 즉 공무원 의사, 공무원 간호사를 대거 양성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공공 의료가 아래 부분을 튼튼히 떠받치면서 민간 의료의 지나친 고가화 및 고급화 경향성(시장 실패 가능성)을 제어하여 의료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의료 공급자에게는 다양한 상품 개발 가능성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무현, 선진화,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반대의 헛발질

아울러 필자는 노무현-열린우리당, 선진화, 뉴라이트, 신자유주의-FTA 반대파들의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는 정의를 고창하긴 했지만 정의의 문제를 '법 앞의 평등' 문제로만 파악하고 실질적인 사회-경제 관계에서의 공평 문제를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즉 기여·부담·의무에 비해 과도한 권리·이익·혜택을 보장하는 합법화, 제도화된 불의를 혁파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이 선언적, 도덕적, 문화적 개혁에 그치고 기득권 집단의 부당한 물질적 기득권 구조 개혁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선진화론, 뉴라이트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극소수파가 된 민중민주세력을 주적으로 삼아 개혁 담론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선진화를 가로막는 주적을 잘못 선정하여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FTA 반대론은 세계화라는 시대의 대세의 역행하고, 무엇보다도 한국 국회와 정당과 이익집단의 저열한 국가 구조 개혁 능력과 한국인의 개별적인 역동적 대응력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한미FTA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창조 수준의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미FTA반대 논리가 타당성을 가지는 비극적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도 필자에게 제일 중요한 개혁은 헌법과 선거법 개혁이며, 정치가 국운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나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조항과 국무총리 사전 동의제 등의 개정도 절실하다. … 정치 선진화를 위해서 의원 정수의 절반을 2년에 한 번씩 선출하여 유권자의 선택권과 심판권을 강화하는 중간 선거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정치가 국운을 가를 것

나아가 필자는 이러한 공평 개혁을 하기 위해서 관건은 리더쉽이라고 단언한다. 필자가 말하는 리더쉽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평을 쓸어내는 리더쉽, 역사적 감각이 있는 리더쉽, 불합리한 특권을 깨는 리더쉽, 정의의 전쟁을 불사하는 전투적 리더쉽이다.

필자는 제대로 된 리더쉽을 세우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의 부족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기본적으로 참여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통찰력도 균형감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참여정부 때리기를 통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존재들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노무현 정부의 기본 방향은 옳았지만 뭔가 부족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 정의와 공평의 반석 위에 코리아를 세워라!

김대호 지음, 백산서당(2007)


태그:#공평, #김대호, #진보, #뉴 라이트,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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