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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미쳐야 미친다>
ⓒ 푸른역사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는 한 시대를 광기로 살다간, 비록 그 삶은 곤궁했지만 '나'로서의 삶을 살다간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영, 김득신, 이덕무, 박제가, 노긍 다섯 사람의 삶이 관심을 끈다.

김영, 그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독학으로 역상(曆象)을 공부하여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 조선 후기 독보적인 천문학자였다.

'적도경위의'와 해시계 '지평일구' 등을 만들고 관련 책을 편찬하여 정조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특례로 역관에 발탁된 그였지만, 정조가 승하한 뒤로는 주변의 질시를 이기지 못하여 벼슬길에서 물러났고, 자기 나름의 학문에 몰두하다 굶어 죽은 비운의 인물이다.

노긍이란 사람은 과거시험을 보기만 하면 급제를 했지만 몰락한 잔반에게 벼슬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과거시험 답안을 대신 써 주며 전전하는 삶으로 전락했고 귀양까지 가게 되면서 집안은 엉망이 된다. 이가환은 <노한원묘지명>에서 노긍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노긍은 기억력이 뛰어나 고금의 서적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대략 외울 수가 있었다. 특히 시무에 밝아 당대 인재의 높고 낮음과 어느 자리에 누가 마땅한지 하는 판단과 국가 계획의 좋고 나쁜 까닭을 하나하나 분석하매 모두 핵심을 찔렀다. 만약 그를 써서 일을 맡겼다면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중략) 애석하도다. 노긍을 알아줄 환담은 어디에도 없구나. (119~120쪽)

노긍이 말년에 썼다는 '어린 손자(穉孫)'라는 시가 쓸쓸하다. "어린 손자 이제 겨우 걸음 떼는데/ 날 끌고 참외밭에 들어가누나./ 참외를 가리키곤 입 가리키니/ 먹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걸세."

박제가가 쓴 <묘향산소기>의 구절구절이 가히 일품이다. 그 중 한 문장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물에 비친 자신의 머리 위로 역시 구름 그림자가 내려와 앉아 함께 이루고 있는 풍경을 생생한 글로 전해준다.

이런 그가 그곳에서 특별히 가져가 읽고 있는 책이 있었다. 원굉도가 서위의 일생을 적어놓은 <서문장전>이다. 박제가는 하필이면 이 책을 들고 있는 것일까? 지은이는 당시 박제가의 마음을 그려본다.

박제가, 그는 서얼이었다. 선대가 첩의 자식이면, 그 자식의 자식도 본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과거 응시가 제한되고 벼슬에 제한을 받았다. 그게 당시 조선의 법이었다. (중략) 뜻있는 이로 하여금 (…) 마침내 미쳐 분을 품고 죽게 만들고는 쉽게 잊고 마는 세상에 대한 절망의 심정이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99~100쪽)

박제가가 자신에 대해 쓴 <소전>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아아! 껍데기만 남기고 가버리는 것은 정신이다. 뼈가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그 말의 뜻을 아는 자는 삶과 죽음, 알량한 이름의 밖에서 그 사람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재미있으면서도 숙연해지는 사람이 있다. 김득신이다. 그는 이른바 '엽기적인 노력가'다. <백이전>을 11만 3천 번이나 읽고 만 번 이상 읽지 않은 책은 읽은 책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그는 사실 머리가 둔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오로지 성실함과 노력만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고 또 실제로 극복해낸 인물이다.

이덕무라는 사람은 서얼 출신인지라 책을 많이 읽는다 해서 딱히 써먹을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책만 읽던 간서치(看書痴)였다.

그는 추운 겨울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얼어 죽을 것 같아 <논어>를 병풍처럼 늘어세워 웃풍을 막고 <한서>를 이불 위로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얼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그가 다행히도 서른아홉에 이르러 규장각의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어 많은 일을 하게 된 것은 알고 보면 두루두루 책을 읽은 덕일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 2부에서는 인물과 인물 간의 소중한 만남과 교유에 대해서, 그리고 3부에서는 선인들의 일상 속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 책은 같은 이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짝이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인물이나 서지 등 부분 부분 차이가 있고 서술 방식 면에서도 성격을 달리한다.

조선 지식인의 '벽'과 '치' 추구 경향에 대한 내용은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이 훨씬 더 체계적이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정민 / 펴낸날: 2004년 4월 3일 / 펴낸곳: 푸른역사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푸른역사(2004)


태그:#정민, #미쳐야 미친다,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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