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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 휴일이라 길거리가 넘쳐나지만 자식들을 다 키운 사람들은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마침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온 친구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와 낮술을 마셨다. 친구와 헤어진 후 집에 갔지만 마땅히 할 것도 없고 술기운이 도니 졸음이 밀려왔다.

낮잠을 자느니 차라리 주변의 산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짐을 꾸렸다. 밖으로 나간 후 바로 장갑을 챙기지 않은 것을 알고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장갑을 던져주느라 4층에서 내려다보니 아내의 눈에 내 머릿속이 자세히 보였나 보다. 요즘 부쩍 많이 빠지고 있는 머리카락을 걱정하며 머릿속이 훤하다는 멘트를 보내오지만 신경 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 천주교 옆으로 산책로 초입이 보인다
ⓒ 변종만
충북 청주시내 외곽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용암동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 용암동에 이사와 많이 찾던 산책로가 용암동 천주교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이다.

▲ 정자 옆에 있는 운동기구들
ⓒ 변종만
능선을 따라 계속 숲길이 이어져 여름 산책코스로 좋고, 본인의 능력에 맞춰 산행 거리를 조절하기에도 좋다. 천주교에서 가까운 곳에 정자와 체육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까지는 노약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산책코스다.

▲ 산책길에 보이는 풍경들
ⓒ 변종만
▲ 바로 앞산이 청주 제일봉인 선도산이다
ⓒ 변종만
주변의 풍경도 아름답다. 도심에서 키재기를 하고 있는 아파트와 산비탈에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련공원으로 가는 길 건너에서 청주 제일봉인 선도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산행거리를 조절하도록 갈림길 역할을 하는 안부가 여러 곳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너 시간 거리인 보살사나 낙가산 정상에서 김수녕 양궁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낙가산 정상에서 것대산 활공장을 거쳐 청주 상당산성으로도 산길이 연결된다.

▲ 쉼터에서 만나는 나무 의자들
ⓒ 변종만
전국의 이름난 여행지를 사진으로 남기겠다는 목표를 실천하느라 4년여 만에 처음 찾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사랑받는 산책로다. 다만 주변이 아파트들로 꽉 들어찰 만큼 발전한 데 비해 능선을 따라가며 여러 번 만나는 쉼터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곳의 산책로를 많이 본 사람으로서는 행정의 난맥상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자원을 재활용해 더 자연스럽다는 고집을 내세워야 할 세상이 아니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 산책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런 등산로의 쉼터는 정비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나무를 엮어 의자를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도 산책을 하다 보면 등을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싶을 만큼 피곤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지자체에서 신경 쓸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하지만 관청에서 좀 더 세밀하게 예산을 배분하면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지역이 발전한다. 작은 일에도 관심을 둬야 지역민이 행복해진다. 욕심을 부리면서 좀 더 먼 곳, 좀 더 이름 있는 여행지를 찾아다니고 있는 내 여행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 산책하기 좋은 숲길
ⓒ 변종만
산이라고 무조건 힘든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의외로 산속에는 산책하기 좋을 만큼 평탄한 길이 많다. 산행을 자주하며 나름대로 세워 논 철칙이 있다. 먹을 것(특히 물)과 시간이 충분하면 산에서는 걱정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산은 색깔만 달리할 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늘 그 자리에서 사람을 기다린다.

▲ 산악훈련코스
ⓒ 변종만
산속에서 각자의 계획대로 활동하며 주인공이 되는 것은 사람이다. 용정골 포도밭으로 하산할 수 있는 안부를 지나 낙가산 쪽으로 가다 보면 청주마라톤에서 설치한 4㎞ 산악훈련코스 안내판을 만난다. 이 산길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땀을 흘리며 발길을 내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쓸데없이 왜 산을 오르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어 세상살이는 재미있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호락호락 정상을 내주지 않는다. 낙가산 정상까지는 숨을 헐떡여야 할 만큼 여러 번 오르막이 이어진다. 낙가산 정상 못 미처인 보살사 뒤편의 능선에서 왼쪽으로 20여 분 하산하거나 낙가산 정상에서 김수녕 양궁장으로 하산하다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보살사가 나타난다.

▲ 보살사의 극락보전과 오층석탑
ⓒ 변종만
▲ 석조이존병립여래상
ⓒ 변종만
법주사의 말사인 보살사는 567년에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이 창건해 청주시 근교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현재 보살사에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58호), 조선 초기에 세워진 극락보전(충북유형문화재 제56호), 1703년에 건립되어 조선 중기의 석탑 양식을 고증하는 오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제65호), 석조이존병립여래상(충북유형문화재 제24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 생수를 받기 위한 물통
ⓒ 변종만
요사체 옆에 있는 우물의 물맛이 좋다고 소문나며 보살사는 물 뜨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아예 지금은 수도꼭지를 절 밖으로 빼놨다. 물통 옆에서 누군가 한마디 한다.

"오염되지 않았으면 모두 약수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e조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살사, #충북 청주, #산책길, #낙가산, #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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