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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아~ 큰일 났어. 큰일 났어." 

9살 딸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나는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놀란 눈을 하고 아이를 쳐다봤다.

"왜? 무슨 일이야?" 
"흔한 남매 5권 나왔대. 빨리~ 빨리 주문해줘."


아이는 화장실을 찾을 때보다 더 다급하게 나를 재촉한다. '뭐야~' 싶은 황당함에 건성으로 "응..." 대꾸하고 만다. 내 시큰둥한 반응에 아이는 더 안달이 나서 급기야 핸드폰을 손에 쥐여준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서 주문해줘. 내가 보는 앞에서."

나는 할 수 없이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흔한 남매>를 찾았다. 아니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미 베스트셀러 순위에 '흔한 남매 5'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떠올려보니 1권부터 5권까지 모두 베스트셀러였다(리스펙!).

도대체 <흔한 남매>가 뭐기에 아이들의 애간장을 이토록 태우는 것일까? 노벨 문학상도, 유명 작가의 소설집도 이 <흔한 남매> 앞에선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다. 몇 달 상간에 5권까지 출판될 줄이야! 그것도 책이 나오기만 하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건 시간 문제. <흔한 남매>! 이쯤이면 신드롬이다 할 만하다.

모르는 사람을 위한 정보 하나. 사실 '흔한 남매'의 으뜸이와 에이미는 유튜브 구독자 수가 202만 명을 넘는 인기 크리에이터다. 책 <흔한 남매>는 '흔한 남매' 유튜브 영상 가운데 일부를 만화로 풀어낸 코믹북이고.  

<흔한 남매> '찐팬'이 우리집에 삽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전 예약 해달라는 말을 할 정도로 우리집 인기도서1위 인 흔한남매.
▲ 소장중인 흔한남매 시리즈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전 예약 해달라는 말을 할 정도로 우리집 인기도서1위 인 흔한남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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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9살 남매를 키우는 우리 집은 <흔한 남매> 신드롬의 중심지다. 모르긴 몰라도 <흔한 남매> 에피소드는 거의 다 꿰고 있을 것이다. 책도 1권~5권까지 모두 소장했다. 4권까지는 사전 예약을 할 정도로 아이들이 열광했다(아이들에게 5권은 안 나온다고 거짓말했는데 나와 버렸다). 책뿐만 아니다. 껌, 인쓰(잘라서 쓰는 스티커), 스티커, 수첩 등 <흔한 남매> 굿즈들도 우리 집엔 수두룩 빽빽이다.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에서 <흔한 남매>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흔한 남매>가 베스트셀러인 것을 너무나 한탄스러워하며 출판계의 기형적 형태라고 비꼬았다. 차마 그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바로 그 기형적 형태에 가담한 찐팬'이라고 말은 못 하고 희미하게 웃고만 있다가 돌아왔다. 자신의 문학적 견해를 펼쳐 보이는 지인 앞에서 차마 초등 유머집의 인기를 옹호하는 발언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흔한 남매>의 인기가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로 아동을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 파워는 상상 이상이니까. 전 세계 유튜브 역대 조회수 2위가 '아기 상어 뚜루루~'의 그 '아기 상어'라고 하지 않나. 

특히나 <흔한 남매>는 인기 콘텐츠를 활용한 학습 만화가 아닌 일반 만화로 승부를 겨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저 유쾌하고 재밌는 거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의 성공을 보며, 그동안 아이들의 읽을거리가 너무 학습에만 초점이 맞춰져 강요되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예전의 <윙크>, <보물섬>, <소년챔프> 만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은 <흔한 남매>를 볼 때 유독 비슷한 지점에서 빵빵 터지곤 했다. 예를 들면 평소에 귀찮던 동생이 심부름 시킬 땐 좋다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데 밖에서 불을 끈다거나 하는 식의 자신들이 겪었거나 혹은 자신들에게 있을 법한 이야기에서 박장대소 했다.

콘텐츠 기획자인 내가 봐도 <흔한 남매>는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포인트를 아주 센스 있게 잘 파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 착 하고 붙는 "냐하" 같은 유행어부터 결정적 순간에 허를 찌르는 말과 몸 개그, 유치하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잘 만든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보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 순간은 내용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으뜸이와 에이미가 실제 커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남매가 연인? 이걸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근데 얘들아... 에이미랑, 으뜸이랑... 사귀는 사이래."
"나도 알아, 다 연기잖아... 에이미랑 으뜸이랑 결혼한다던데? 결혼하면 '흔한 부부', '흔한 아이'도 만들 것 같아. 그치 엄마?" 


헉! 요즘 애들은 현실과 연기의 경계점도 정확히 구분하는구나. 나는 아직도 드라마 속 남주를 현실과 혼동하는데... 졸지에 나만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흔한 남매'와 다르지 않은 '현실 남매'
 
베스트셀러인 흔한 남매 책, 매일 한 번씩은 꼭꼭 챙겨본다. 키득키득 대고 읽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 흔한남매 읽고 있는 현실 남매들 베스트셀러인 흔한 남매 책, 매일 한 번씩은 꼭꼭 챙겨본다. 키득키득 대고 읽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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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흔한 남매 현실 버전 에피소드는 특별할 것이 없다. 너무 사소하고 때론 찌질해서 남들이 봤을 때 '저게 뭐가 그리 대단해?'라고 할 만큼 어처구니없다. 누군가는 놀리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또 화해를 시도하는 척 하다가 도 장난치고... 또 꾐에 넘어가고... 이것이 바로 우리집 현실 남매들의 무한궤도다.

그러다보니 우리 집 남매를 연구해서 <흔한 남매>를 제작하는 건지, <흔한 남매>를 마르고 닳도록 읽으면서 우리 집 남매들이 그들을 따라하는 건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물론 엄마인 내 생각이고 <흔한 남매> 찐팬인 아이들에게 인기 비결을 물어봤다. 

"<흔한 남매>가 왜 재밌어?"
"으뜸이랑 에이미 둘이 노는 게 재밌어."
"어떻게 재밌는데?"
"에이미랑 으뜸이가 서로 장난치면서 노는 게 재밌어."
"너희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
"응. 오빠도 맨날 나보고 못생겼다고 하잖아."
"야! 너도 맨날 나보고 바보라고 하잖아."


이러다 또 싸움이 날 것 같아 인터뷰는 급히 종료됐지만 <흔한 남매> 신드롬은 역시 '공감+재미'라는 원초적 인기 비결에 상응하는 결과인 것 같다. 아이는 <흔한 남매> 5권을 받자마자 책의 맨 뒷장을 꼼꼼히 살피면서 6편도 나올 거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흔한 남매>의 인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혹여 <흔한 남매>님이 이 글을 본다면 '친한 남매' 제작이 시급함을 알려드립니다. 

태그:#흔한남매 , #베스트셀러 , #인기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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