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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산언덕에 새로 난 길을 걸었다

랑탕 마을을 찾아가는 길, 첫날 무려 10시간을 걸었다. 함께 간 일행은 트레킹이 처음인데도 무난히 적응해 주었다. 쉐르파 게스트 하우스의 임대사업자가 된 상부 타망(Sangbu Tamang, 41)씨는 자신과 랑탕 사람들의 절박함을 호소하듯 말했다. 새로운 터전이 주어진 자신이야 어렵게라도 생활을 일궈가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머물 집도 지을 수가 없어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랑탕 가는 길 3일째. 우리 일행은 라마호텔 쉐르파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했다. 출발하자마자 익숙한 게스트 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은 티베트 게스트 하우스였다. 지진 이후 소식을 알지 못했던 오랜 지인이다. 그간 형님이라 불러온 티베트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무고함을 감사하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볼 것을 약속하고 랑탕 가는 길을 재촉했다.

지진으로 무너지고 이어진 산사태에 무너져 길이 바뀌고 뿌리째 뽑힌 나무는 덩그러니 길 위에 방치되어 있었다.
▲ 지진으로 무너진 산언덕 지진으로 무너지고 이어진 산사태에 무너져 길이 바뀌고 뿌리째 뽑힌 나무는 덩그러니 길 위에 방치되어 있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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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길 그리고 나무에 박힌 커다란 돌덩이가 지진과 산사태가 얼마나 심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져 길이 막힌 곳에 나무로 통행금지를 표시하고 자갈로 화살표를 만들어놓았다.
▲ 지진과 산언덕에 새로난 길 새로 생긴 길 그리고 나무에 박힌 커다란 돌덩이가 지진과 산사태가 얼마나 심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져 길이 막힌 곳에 나무로 통행금지를 표시하고 자갈로 화살표를 만들어놓았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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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 가는 길은 험난했다. 난 이번 도보여행이 25번째다.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코사인쿤드, 랑탕 히말 등을 수차례 반복해서 트레킹 해본 나다. 내가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길이라 여겼던 곳이 랑탕 트레킹 코스인데, 지진 이후 길이 매우 험난해졌다. 수없이 무너진 산언덕 위에 바윗덩어리가 굴러떨어져 기존의 등산로를 허물어 뜨렸고 길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새로 난 길은 흙먼지가 유별나게 심했다. 또 계곡을 건너 새로운 다리를 건너서 길을 내기도 했고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러져 있어 길을 가로지르기도 했고 터널처럼 길을 내고 있기도 했다.

나의 인연 돌마 타망네 집 짓는 현장을 찾다

그렇게 2시간을 걸어 고다따벨라(Godatabela, 3020미터)에 이르러서 다시 새롭게 소나무 다리가 놓인 계곡을 건넜다. 그리고 30분쯤 걸었을까? 이번 지진피해자 구호활동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돌마 타망네와의 인연이 된 마을이 바로 고다따벨라다.

나는 지난 2007년 처음 랑탕 계곡을 찾았고 그때 고다따벨라에서 돌마 타망네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하룻밤을 그들 가족과 보내기 위해 하루 만에 랑탕 마을에 다녀와 그들 가족과 잘 지냈다. 그리고 새벽 총총한 별을 보느라 잠을 포기하고 밤 하늘 별을 보며 즐거워했다. 다시 2013년 5월 그곳을 찾았을 때 그들 가족은 랑탕 마을로 옮겨간 후였고,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에는 돌마 타망의 외숙모가 있었다.

라마호텔을 지나 리버싸이드에 새로 집을 짓고 있다. 잠시 후 기존의 트레킹로가 사라지자 계곡 건너편으로 다리를 놓아 만든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 무너진 집을 짓고 있는 리버싸이드 롯지 라마호텔을 지나 리버싸이드에 새로 집을 짓고 있다. 잠시 후 기존의 트레킹로가 사라지자 계곡 건너편으로 다리를 놓아 만든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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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따벨라에서 파상 타망네 집 짓는 현장에 빵을 전하고 랑탕 마을을 향했다. 멀리서 바라본 랑탕 마을은 완전히 돌밭으로 변한 폐허의 땅이었다.
▲ 랑탕 마을에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헬기 고다따벨라에서 파상 타망네 집 짓는 현장에 빵을 전하고 랑탕 마을을 향했다. 멀리서 바라본 랑탕 마을은 완전히 돌밭으로 변한 폐허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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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랑탕을 다녀오는 길에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돌마 타망 어머니는 내 뒤를 쫓아와 고다따벨라 인근에서 재회했다. 그들은 그곳에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이메일을 전했다. 그 이메일이 돌마 타망에게 전해지고 지난해 4월 25일 네팔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돌마 타망과 나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지진 발생 한 달 전이었고 랑탕 마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돌마 타망이 할아버지 사십구재를 위해 랑탕 마을을 찾았을 때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돌마 타망은 부모를 잃고 어린 여동생을 잃었다.

바로 그곳에 또 다른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는데, 바로 돌마 타망네 집이다. 랑탕 마을에는 할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었고 고다따벨라에 또 다른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으나 지진으로 전파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돌마 타망의 오빠이자 집안에 가장이 된 파상 타망(25)을 만났다.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 새 집을 지으려고 멀리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아래 산악마을 오컬둥가에서 왔다는 작업자 10여명과 파상 타망 가족에게 빵을 전했다.

파상 타망의 꿈은 부모의 게스트 하우스를 여는 일

길을 걸으며 부모와 어린 동생을 잃고 이제 가장이 된 파상 타망과 살아갈 날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저 게스트 하우스를 지으면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는 랑탕 마을까지 우리를 안내한 후 곧 집 짓는 곳으로 돌아오기로 돼 있어 발걸음을 빨리했다. 랑탕 마을에도 그의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랑탕 마을 집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이곳에는 다시 집을 지을 수 없다며 그냥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 
 
랑탕 마을은 드넓은 평지에 596명이 살았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알았던 그 랑탕 마을은 300여 명이 살았는데 그 중 200여 명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드넓은 랑탕에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두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두 개의 마을 전체가 지진에 이은 대형 눈사태와 강풍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8시간 30분을 걸어 랑탕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머물게 된 랑탕 마을 임시거처 주인인 팔상 타망(Palsang Tamang, 48)씨를 통해 그때의 참상을 전해 들었다.

랑탕에 도착한 후 헬기가 이륙 중 사고를 일으켜 동체가 넘어져버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나는 잠시 후 상황이 정리된 후 빵을 만들기 시작했고 빵을 만드는 주방에 독일인이 찾아와 반겨주었다.
▲ 랑탕에 도착하고 헬기사고 목격 랑탕에 도착한 후 헬기가 이륙 중 사고를 일으켜 동체가 넘어져버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나는 잠시 후 상황이 정리된 후 빵을 만들기 시작했고 빵을 만드는 주방에 독일인이 찾아와 반겨주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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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랑탕 마을에는 막 집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된 집 한 채도 지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독일의 건축업자가 집을 짓기 시작했고 헬기를 동원해서 건축자재를 쉴 새 없이 나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고 10분이 지났을까?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조종사는 무사했고 헬기도 동체가 넘어지고 조금 부서진 것 말고 추가 피해는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짐을 부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굉음이 들리며 엔진 소리가 났다. 나는 곧 헬기에 이상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곧 헬기장으로 발걸음을 했다.

잠시 랑탕 마을 사람들의 탄성과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곧 프로펠러 소리는 멈추고 사람들 탄성만 들렸다. 랑탕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헬기를 동원하여 건축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헬기에 문제가 생겨 동체에 손상이 가고 넘어진 것이다. 우리는 상황을 살피다 곧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건축하는 노동자들과 현지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도넛을 만들기 시작했다.

랑탕 마을 재건 현장에서 만난 팔상 타망씨의 아픈 사연

모두 400여 개의 도넛을 만들었고 윗마을 격인 캉진곰파(Kangjingompa, 3800미터)로 가는 사람에게 내일 아침 들리라고 전했다. 야채 한 단도 구할 수 없는 사막이 되어 버린 랑탕 마을 저녁 식사로 감자를 삶아 밥을 비벼먹었다. 그것이 준비된 반찬과 식사의 전부였다. 노동자들도 주민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4월 25일 지진은 랑탕에 대재앙을 부른 대형 눈사태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전날 밤 우리가 머문 집주인 팔상 타망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찍은 랑탕 마을의 지진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다.
▲ 2013년 5월의 랑탕과 2016년 3월의 랑탕 마을 내가 직접 찍은 랑탕 마을의 지진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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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나고 2분 후 랑탕 히말에 눈이 쏟아져 내렸다. 이후 건너편 산을 치고 다시 돌아와 랑탕 마을을 휩쓴 후 대형 회오리바람을 동반하고 랑탕 계곡을 휩쓸고 말았다. 당시 팔상 타망씨는 랑탕 마을에서 친구 7명과 함께 눈사태에 휩쓸려 계곡 건너편 산언덕에 파묻혔다고 했다. 팔상 타망씨는 의식을 잃은 후 1시간 30여 분 만에 의식에서 깨어났다. 그가 깨어났을 때 눈 속에 파묻힌 친구가 구해 달라고 아우성이었으나 부상 당한 왼팔로 구해낼 수 없었다. 팔상 타망씨는 그렇게 친구 6명을 잃고 2시간을 걸어 고다따벨라로 향했다고 한다.

그때 흐트러진 길과 무너진 집들 사이로 수많은 시체를 보면서 걸어야 했다. 사지가 잘린 어른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았으며 죽어간 관광객도 보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너무나 담담하게 설명했다. 아직도 수많은 돌덩이 아래 죽은 사람들이 있지만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랑탕 마을에서는 독일 건축업자들의 노력으로 텐트와 임시 거처를 만들고 재건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랑탕은 이제 다시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걸음을 막 내디디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람과 사회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라마 호텔, #고다따벨라, #파상 타망, 돌마 타망, #랑탕 마을, 헬기 사고, #팔상 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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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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