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불교는 현실정치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방관자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공자가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말했다는 내용은 수두룩한데 부처님이 말했다는 내용은 흔히 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느낌은 개인적인 선입견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 불교가 취해온 처세술이 투영된 시대적 자화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무관할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 게 불교와 정치와의 관계입니다.
우선 불교 교조인 석가모니불이 정치인 집안 출신입니다. 붓다 자신은 속세를 떠났을지라도 자신의 출신 배경까지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 역시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만 그런 게 현실정치에서도 눈에는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어떤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맺을 수밖에 없는 게 실체적 진실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불교와 정치는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라 사이의 분쟁과 통치 권력의 무상, 잘못된 정치에 의해 고단히 사는 백성의 삶을 보시면서 통치자의 자질이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본생담(本生譚, 부처님께서 전생에 이루신 보살행을 기록한 550편의 신화적 이야기)>에 보면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열 가지 덕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기위한 이정표 <불자로 산다는 것><불자로 산다는 것>(지은이 도일, 펴낸곳 불광출판사)에서 이 열 가지 덕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열 가지 덕목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지만 작금의 정치에서 타는 목마름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몇 가지만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둘째는 지계(持戒)이다. 지도자는 높고 고결한 도덕적 품성을 지니려고 노력해야 한다.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등을 하지 않는 계를 지키며 덕을 쌓아나가야 한다. 도덕을 잃은 지도자는 체면과 위엄을 잃는다.
넷째는 정직과 성실이다. 정직함에서 국민의 신뢰가 모이고 성실함으로 백성의 본보기가 된다. 지도자에게 있어 진정한 재산은 물질이 아니라 정직과 성실이다. 다섯째는 유화(柔和)이다. 지도자는 친절하고 부드러워야하며 타인과 화합할 중 라는 성품을 지녀야 한다. 사납고 독선적인 지도자는 외롭고 일이 순조롭지 않으며 백성이 저항한다.여덟째는 비폭력(非暴力)이다. 지도자는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와 화합을 꾀하여야 한다. 공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것은 폭군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열째는 불상위(不相違)이다. 지도자는 국민들의 의향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민심을 잘 파악하여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 민주적인 정책은 곧 백성의 뜻과 함께 하는 것이다. -<불자로 산다는 것> 228쪽-특히 열째, '불상위', '지도자는 국민들의 의향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 구구절절하게 느껴지는 건 어인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에도 우리나라 불교가 이따금 부당한 정치에 침묵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없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건 작금의 우리나라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보다는 권력에 아부하는 비겁한 처세술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교조적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으로 가기 위한 선택<불자로 산다는 것>은 42년째 출가수행 중인 도일 스님이 송광사 율원에서 10여 년을 수행하며 송광사 사보에 기고한 글들을 갈무리한 내용을 이번에 단행본으로 펴낸 것입니다.
내용 하나하나는 부처님 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정표이자 부처님 삶을 닮아 가는 여정입니다. 불교초심자들이 두리번거리며 첫걸음마를 떼듯 궁금해 할 내용들부터 오래된 출가 수행자들이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경책하는 데 필요한 거울 같은 계율까지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내용입니다.
스스로하기에 벅찬 일을 일컬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합니다. 이에 혹자는 '요즘은 전동 이발기가 나와 중 머리도 혼자서 깎을 수 있다'며 빈정댑니다. 하지만 이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에 담긴 진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출가에 따른 제도적 의미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말임을 알게 되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얼마나 엄중한 말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 스님들이 앉을 경우 스님들 자리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지도 궁금하고, 스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술과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궁금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불자들이 알고 싶어 하거나 궁금해할 만한 내용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리나 글자에 얽매인 딱딱하고 속 좁은 설명이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실생활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설명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열 가지 덕목'은 이 시대 지도자 모두가 골고루 갖추고 챙겨야 할 필수 덕목이라 생각됩니다.
'불자로 산다는 것'은 결코 불교 교리만을 추종하는 교조적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걸 <불자로 산다는 것>을 읽으며 통감하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불자로 산다는 것> (지은이 도일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5월 28일 / 값 1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