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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은 1973년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지시에 의해 ○국 공작단이 주일파견관들을 동원해 실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최소한 묵시적 승인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정부도 박정희 정권의 잘못된 행위를 묵인했던 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드러났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24일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모두 정리하면서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종합보고서 중에 김대중납치사건에 대해 이 같이 매듭지었다.

중앙정보부의 조직적인 은폐행위 드러나

국정원 진실위는 "한국정부가 73년 벌어진 김대중납치사건 발생 직후 공권력 개입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진상은폐에 주력해왔다"며 "사건에 관여된 주일파견관들의 조기 귀국조치를 통해 일본 당국의 조사를 회피하도록 했으며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된 김○○의 출두요청에 대해 혐의점이 없다고 거부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중정은 특별수사본부의 조사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조정·통제는 물론 언론을 통해 '김대중은 조국에 대한 배신행각을 벌였다'는 점을 부각시켰으며 민심을 호도하고 사건을 미궁에 빠지도록 하겠다는 등의 '국내 대책방안'을 작성, 추진했다고 밝혔다.

김대중납치사건에 동원된 용금호 선원들에게는 특별보상금을 지급하고, 보안유지에 대한 서약서까지 받았으며 중정 직원들의 경우에는 보직관리 등 애로사항 해결로 불만을 해소시켜주는 방안까지 마련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후락 중정부장이 87년 8월 김대중납치사건에 중정이 개입했던 사실을 인정한 인터뷰를 한 것과 관련해 당시 안기부는 이를 번복하는 기자회견을 갖도록 압력행사를 했던 것점도 밝혀냈다. 박정희정권은 물론 전두환정권도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막기 위해 사후 관리대책에 부심했었다는 것이다.

1973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다나카 일본 수상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는 친서를 전달, 75년 7월 김○○을 불기소 처분하고 수사를 종결하면서 일본정부와 외교협상을 통해 이 사건을 재론하지 않는데 합의했지만, 사실 이 사건에서 일본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국정원 진실위의 판단이다.

국정원 진실위는 "한국정부가 납치사건 진상을 은폐한 잘못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나 일본정부 또한 한국의 공권력 개입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외교적 해결에 협조한 사실은 결국 잘못된 행위를 묵인한 데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살인자다, 살려달라" 했지만 복부 구타

국정원 진실위는 김대중납치사건의 출발은 이후락 중앙정보부 부장이 이철희 차장보에게 납치공작을 지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실무자들의 반대의견도 제시되기는 했지만 이후락의 강력한 지시에 의해 결국 ○국에서 비밀리에 공작을 추진키로 결정됐으며 'KT공작계획안'은 이후락 부장-이철희 차장보-하○○ 국장-김○○ 공사-김○○ 파견관'이라는 명령계통을 통해 73년 7월 14일경 지시가 하달돼 7월 19일 작성, 보고됐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73년 호텔에서 납치할 당시 "떠들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폭행과 함께 마취제 사용 등 불법행위를 당했지만, 권총이나 칼로 위협하는 등 살해를 기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행동은 없었다고 보았다. 다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동승한 일본인들에게 "살인자다, 살려 달라"고 소리쳤지만, 복부를 구타당할 뿐이었다고 밝혔다.

납치차량에 김대중을 태운 후 오사카 안가로 이동할 때는 뒷좌석 바닥에 엎어놓고 움직일 경우 발로 내리누르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안가에서는 소지품을 빼앗고 코만 남긴 채 얼굴을 포장용 테이프로 감은 후 손발을 결박한 상황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심각한 위협행위로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고 발표했다.

또한 용금호에 감금돼 있을 당시 십자형 널빤지에 묶고 재갈을 물려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을 당한 피해자로서는 수장을 하기 위한 준비행위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으며 더욱이 피해자가 선원들로부터 '솜이불을 붙여 놓으면 떠오르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수장을 당한다는 위기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직접적으로 갑판 위에서 바다에 던지려고 시도한 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설과 관련해서는 'KT공작 계획서'가 남아 있지 않아 대통령의 결재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고,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사전에 구두지시를 했는지에 대한 명백한 자료 또한 발견하지 못해 쉽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사후에 대통령이 납치공작 추진 사실을 알았다는 근거로 7가지를 들기도 했다. 이후락의 지시로 이 사건이 진행됐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법적 정치적 책임 면키 곤란

무엇보다 ▲73년 8월 9일 오전 외무부가 김대중 실종사실을 외신을 통해 인지했다는 내용과 윤석헌 차관이 주한 일본대사와의 접견 상황을 보고한 뒤 박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정부는 김대중 실종사건과 무관하다'는 훈령을 발표하도록 했다는 점 ▲73년 8월 10일 박 대통령은 외무부에 지시해 목격자 심○○과 김○○에 대해 귀국을 연기, 일본 측의 수사에 협력토록 강력히 권고하는 훈령을 주일대사관에 하달 ▲대통령 의전일지 상 납치사건 발생 전후시기에 이후락과 박정희의 접견상황을 통해 사후보고 가능성 ▲이후락이 독단적으로 벌인 사건이라면 박 대통령이 즉시 책임을 물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점 ▲박 대통령이 모르는 사이에 국가적으로 중대한 공작이 추진됐다는 것은 유신체제의 특성상 거의 불가능 ▲김대중이 당시 미국과 일본 정계에 박정권의 지원중단을 요구하면서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등의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이후락에게 대책을 강구토록 지시했던 점 ▲납치사건 관여 중정직원 및 용금호 선원들을 사후관리하도록 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국정원 진실위는 "사전지시 주장에 대한 정황증거 자료를 종합, 분석해볼 때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최소한 묵시적 승인은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은 사전지시 여부 문제와는 별도로 대통령직속기관인 중앙정보부가 납치를 실행하고 사후 은폐까지 기도한 사실에 비추어 통치권자로서의 정치적·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정원 진실위는 이번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김대중납치사건은 공작계획 단계에서 야쿠자를 이용한 살해계획안이 논의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용금호가 오사카항에 도착한 이후 또는 호텔에서 납치가 실행된 단계에서는 단순납치 방안이 확정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박정희정권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73년 8월 이후락 중정부장이 직접 '나는 납치사건과는 무관하다, 내 부하가 한 사람이라도 개입했다면 전부 책임지겠다'는 등의 불개입 기자회견 ▲납치사건 관련 주일파견관 교체 ▲특별수사본부 조정·통제 ▲정치·민심순화 대책 등 사후대책 방안 마련 ▲김대중 가택연금 및 외부인사 접촉차단 ▲보도통제 ▲용금호 선원에 대한 특별보상금 지급 및 보안유지 서약서 징구 등 여러 활동을 벌였다고 적시했다.

국정원 진실위는 "그동안 진상이 은폐된 채 의혹에 휩싸여 사회적 논란을 야기해온 김대중납치사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당시 중정 ○국과 주일파견관 사이에 송수신된 전문내용이 보존돼 있어 핵심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납치사건에 관여한 전직 중정요원 11명과 용금호 선원 4명을 포함 총 18명에 대한 면담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34년 진상규명 못한데는 일본정부도 책임있다"

이어 국정원 진실위는 "이 사건의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치상황과 진상은폐 과정에서 겪었던 생명의 위협과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명예회복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중정 직원들이 조직체계상 상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납치공작에 가담한 이들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진실위는 "일본 내에서 납치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을 표명한다"면서도 "일본정부 또한 한국의 공권력 개입사실을 알고 있었으며서도 외교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합의해줌으로써 결국 사건 발생 초기에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진실위는 "30여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던 납치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을 했다는 것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일본당국도 인식을 같이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정원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저지른 정치공작 등 잘못에 대해 솔직히 반성하라"고 주문했다.


태그:#진실위, #김대중납치사건, #국정원, #이후락,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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