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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오이, 애호박, 쌈채소, 양배추, 풋고추, 당근, 가지…….

최근 우리 부부가 '모둠 농산물 가족회원'에게 발송하는 주요 농산물이다. 총 6개월간 주1회씩 제철 모둠 농산물을 보내는 가족회원제는 3년 전에 귀농해서 우리가 1년을 농사지어 보고 살 길(?)을 모색해서 기획한 일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것도 힘들었고, 친환경 인증을 받는다고 적당한 판로가 쉽게 뚫리지도 않았다. 친환경 농사가 경쟁력이 있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규모를 늘리고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해서 어려운 농촌 현실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찾은 길은 안정적인 직거래 회원 확보와 친환경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농사 규모의 결합, 소규모의 생산적 직거래 방식이다.

생협·인터넷 직거래, 농부에겐 남는 게 없다

▲ 도시에 있을 때는 자동차 본네트 한번 열어본 적 없던 내가 이젠 농기계가 고장 나면 각종 연장들을 챙겨들고 덤벼든다. 농사는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다.
ⓒ 조계환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우리 부부는 3년 전 전북 장수의 백화산 자락으로 귀농했다. 주변에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곳이 없고 물이 깨끗해 친환경으로 농사짓기 좋았기 때문이다.

귀농 첫해에는 토마토와 양상추를 키워 직거래로 판매했는데, 도시에 연고가 있는 우리로서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농산물을 파는 일은 어려웠다. 따뜻한 격려 전화나 맛있게 잘 먹었다는 연락에는 물론 힘이 났지만, 밭에서 일하다 주문받는 일, 인터넷에 광고 글 올리고 일일이 댓글 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작년에 태풍이 왔을 때다. 밭작물 다 넘어지고 집도 날아갈 듯 비바람이 심한 날이었는데, 그래도 약속한 농산물을 보낸다고 밭에 나가 힘겹게 이것저것 따다가 박스 포장을 해서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전화가 왔다. 보낸 농산물 중 호박잎 하나가 누런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누구나 전국이 태풍에 휩쓸렸다는 걸 알 만한 상황이었다. 전화를 끊고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직거래는 이렇게 농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다. 그래서 기존 농민들은 한박스에 단돈 천원이 나와도 속 편하게 공판장에 출하한다. 직거래로 물건 판다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인터넷으로도 농산물을 판매해 봤는데, 10%가 넘는 수수료를 내야 하고, 가격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제 값 받고 농산물 판매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 생협 같은 유통회사에 납품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업체를 찾아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이후 몇몇 친환경 관련 유통 업체에서 연락이 오기는 했다. 하지만 일일이 소포장을 해야 하고, 1시간 이상 되는 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직접 배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년에 납품을 한번 해봤는데 차비와 포장비를 빼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멋진 직업 농사꾼! 그러나 전혀 멋지지 않은 농촌 현실

▲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우리 부부는 3년 전 전북 장수의 백화산 자락으로 귀농했다. 주변에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곳이 없고 물이 깨끗해 친환경으로 농사짓기 좋았기 때문이다.
ⓒ 조계환
세상에 농사짓는 일처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위에서 억지로 시키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작은 밭뙈기라도 스스로 기획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나간다. 일기의 변화며 밭가는 방법, 작물의 시기별 특성을 배우며 땅과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 새록새록 재미있다.

물론 처음엔 육체노동에 익숙해지는 게 힘들었지만 요령이 생기니 적응이 됐다. 도시에 있을 때는 자동차 본네트 한번 열어본 적 없던 사람이 이젠 농기계가 고장 나면 각종 연장들을 챙겨들고 덤벼든다. '일'의 주인이 된다는 것, 게다가 그 일이 많은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소중한 일이라는 점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일은 일반 관행농에 비해 몇 배는 힘들지만, 풀은 부직포를 깔아서 잡고, 벌레는 천적으로 잡고, 각종 병균은 땅심을 키우고 배수 관리를 열심히 해서 그나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한미FTA 협상 체결까지 된 농촌 현실은 정말 참담하다. 주변에 농사짓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도시 나가 돈버는 자식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나 품일 나가 받는 삯으로 근근이 버티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도농 교류'니 '녹색 체험 마을'이니 하면서 농촌을 관광지화하는, 무늬만 좋은 정책으로 두번 세번 농촌을 죽인다. 결론적으로 경쟁력 없는 농업은 포기하고 농촌을 관광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농사짓는 농민들한테 가야할 보조금이 이렇게 관광 사업 추진하는 사람들이나 소위 일부 경쟁력 있는 농민들한테만 집중된다. 당연히 농촌의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규모' 친환경 농업, '미션 임파서블'

한미FTA가 체결된 이후 언론은 'FTA 위기, 친환경 농업으로 넘는다' 류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내용인 즉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농업 경쟁력이 더더욱 없어질 것이므로 '대규모'의 '친환경 농업'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친환경으로 한 달만 농사지어 봐도 안다. 규모를 크게 해서는 절대로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불가능하다.

시기별로 병충해가 오면 농약으로 해결하고, 작물 넣기 전에 화학비료 조금 뿌리고, 제초제로 쉽게 풀을 잡는 일반 관행농과 달리 친환경 농업은 몇 배의 공이 들어간다. 소규모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나서서 넓은 땅을 인증 받아 농산물을 판다는 소릴 들으면 일단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설사 친환경 농사를 규모를 크게 한다고 치자. 현재 발표된 한미FTA 협상에 따르면, 토마토의 경우 5년 후면 관세가 완전 철폐된다. 경쟁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이젠 아예 유럽과도 FTA를 한다고 한다. 까다로운 국제 유기농 기준에 맞게 키운 유럽 농산물의 경우 우리 친환경 농산물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

결국 투자를 많이 해서 친환경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다 한들, 10년을 못 가서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이 뻔하다. 귀농해서 보니 주변에 빚 없는 농사꾼은 단 한명도 못 봤다. 항상 이러저러한 어설픈 환상에 속아 농민들은 피땀 흘려 일만 하고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로 살아가고 있다.

농촌과 도시민의 가족 만들기, 이거 괜찮네

▲ 총 6개월간 주1회씩 제철 모둠 농산물을 보내는 가족회원제는 3년 전에 귀농해서 우리가 1년을 농사지어 보고 살길(?)을 모색해서 기획한 일이다.
ⓒ 조계환
우리는 작은 규모로 농사지으며 '모둠 농산물 가족회원제'를 2년째 운영하고 있다. 700평 남짓 되는 밭에서 나오는 작물을 20여 가정에 6개월간 매주 발송한다. 가족회원제의 가장 큰 취지는 제철 농산물을 매주 보낸다는 점이다.

회원이 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때그때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발송한다. 제철 농산물로 푸른 밥상을 꾸리는 것이 가장 건강에 좋다는 취지에서 가족에게 농산물을 정성껏 챙겨 보낸다는 생각으로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쇼핑몰식 주문에 익숙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농산물을 직접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철 푸른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다양한 농산물을 발송하니 우리의 취지에 동감하고 맛나게 농산물을 받아준다. 이렇게 하면 봄에 회원이 모집되는 규모를 보고 씨앗을 넣을 수 있고, 작은 땅에서 다품종 소량 재배로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작년에 우리가 하는 방식을 보고 올해는 주변의 몇몇 귀농자들도 가족회원제를 시작했다. 여러 농가가 비슷한 형태로 농산물을 발송하기 시작하자 좋은 아이디어도 모아지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더욱 효율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게 됐다.

올해 3년차를 맞는 부족한 것 많은 가난한 초보 농부지만,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많은 분들에게 가족회원제를 추천하고 싶다. 소규모의 생산적 직거래가 널리 퍼져서 농민의 땀도 제대로 보상받고 도시민들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갈수록 쉽지 않는 농촌 생활이지만 우리 같은 소농들이 계속 살아남아 친환경으로 농사지으며 땅을 지켜나간다면, 그것만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농촌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희망의 씨앗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논과 밭 곳곳에 퍼져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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