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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2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 이하 국정원 진실위)는 22일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사건' 조사발표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두 사건이 진행됐다는 것은 이미 여러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진실위 측은 기자들과 일문일답에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었던 박모씨가 2000년에 발간된 지방지에 수록한 글에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썼다"고 전했다.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세간에 알려진 대로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사유재산을 침해한 게 사실로 확인됐지만, 경향신문 매각사건의 경우에는 미운 털이 박힌 언론사 사주를 간첩으로 조작해 공권력이 재산을 빼앗았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한홍구 국정원 진실위 위원은 "아무 연관 없는 이형백 간첩사건과 윤우현 간첩사건에 이준구 경향신문 사장을 엮어 간첩으로 만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했다"며 "간첩사건에 연루됐지만 실제 관계가 없던 이형백 체육부장이 재판과정에서 이준구 사장은 관계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윤우현 간첩사건에서 중앙정보부는 간첩행위를 한 게 일본경찰에 발각될까 두려워 북송선을 탔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국정원 진실위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중정 파견관이 일본에서 문제가 된 간첩사건은 윤우현과 관련 없다고 보고한 게 있다는 것이다.

한홍구 위원은 "당시 중정은 원하는 방향대로 언론사 사주를 구속하기 위해 조작간첩사건도 만든 것"이라며 "그 시절에는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큰 신문사 사장이라도 공안사건의 간첩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중정은 이준구 사장이 간첩혐의를 씌웠는데도 경향신문을 포기하지 않자 급기야 살인혐의를 씌우려고 했으나 결국 이 과정에서 이 사장이 굴복하자 이 사건의 조사를 종결했다. 국정원 진실위의 한 관계자는 "박정희는 언론을 강탈하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며 "지금까지 갖고 있던 박정희 신화가 무너질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박정희 지시는 이미 여러 증언을 통해 확인"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한홍구 위원이 22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도중 땀을 닦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이번 조사결과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은 과거 최고권력자에 의해 자행됐다. 그렇다면 이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절차도 밟을 것인가.
"국정원 진실위의 기본 목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밝혀진 진실을 토대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는 관계당사자와 국가기관, 사법기관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나 피해자의 명예회복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정조치와 보상을 할지는 위원회의 소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향신문이 강제매각 당할 때 위치와 청사는 소공동이었다. 그 이후에는 문화방송과 합쳐지면서 현재의 위치인 정동으로 옮기게 됐다. 정동으로 옮긴 땅은 5·16장학회 소유의 땅이었다. 재산의 흐름 차원에서 봤을 때 현재 경향신문의 부지는 경향신문 원래의 자산과 무관하다. 위원회 의견을 첨부한 것은 사회환원 차원에서 언급한 것뿐이다."

- 두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됐다는 건대, 결정적 단서가 있나.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두 사건이 진행됐다는 것은 이미 여러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었던 박모씨가 2000년에 발간된 지방지에 수록한 글에 남겼다. 거기서 분명하게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썼다. 이 글은 당시 아무런 외부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본인이 직접 서술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당시 박모씨는 중정 부산지부의 독자적인 수사(김지태 등 부산일보 임원에 대한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였다고 주장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문건을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 김지태가 해외여행 떠난 게 6월 24일이고, 가족이 이보다 앞선 3월에 구속됐다. 출국 이후 작성된 부산지부 '정치인 평가서'에도 부정적인 내용이 아무 것도 없었다.

틀림없이 박정희 의장이 구정 때 부산에 내려가 박모씨를 만났고, 이때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김지태에 대한 추적수사가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 정권의 강압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뒤에 위원회 의견으로 사회환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이 있는지.
"진실위는 두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오랫동안 이 문제를 갖고 논의했다. 법률적 자문도 구했다.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행동인 경우에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임의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강제성은 여러 경로로 확인됐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큰 틀에서 어떻게 처리하는 게 적절한가, 합리적인가에 대해 논의한 결과 위원회로서의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부일장학회 재산은 김지태 측근 명의로 돼 있었다. 부일장학회 재산명록에는 그렇게 돼 있었다. 편법으로 있던 재산이 강제헌납을 당했던 것이다. 당연히 부일장학회의 소유로 넘어간다. 다만, 사회사업 부분은 그대로 존재하고, 그 재산은 계속 사회사업으로 남아야 한다는 게 사실관계이다."

"중정, 필요하다면 관계없는 간첩사건도 뒤집어씌워"

- 피해에 대한 보상, 원상복귀 부분은 사법부의 판단이라고 했다. 만약 소송이 제기되면 재판진행과정에서 위원회는 어떤 입장을 개진할 것인가.
"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으나 자문에 의하면 원인무효소송과 헌납취소송이 있다고 들었다. 헌납취소청구소송의 공소시효는 3년, 혹은 10년인데 이미 지났다. 원인무효소송 여부에 대해서는 관여할 바 아니다. 사법부에서 의견을 묻는다면 이 발표로 대체하겠다."

- 경향신문 매각관련 조사결과 발표에는 두 가지의 간첩사건이 나온다. 이들의 구체적인 간첩행위가 무엇이며, 이 간첩사건들이 이준구 경향신문 사장과 어떤 관계인가.
"두가지 간첩사건 중 하나는 경향신문 체육부장인 이형백 사건이다. 이문백은 이형백의 친동생이었다.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이형백이 아니라 다른 두 명이 간첩혐의로 사형됐다. 당시 중정은 이형백이 사장 이준구를 포섭하려고 하고 이준구가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발언을 했다고 발표했는데, 이형백은 재판과정에서 이를 부인했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이형백 경향신문 체육부장이 간첩사건에 연루된 것은 맞지만 이 사건과 이준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다른 하나는 윤우현 사건이다. 윤우현은 경향신문 동경지사장으로서 64년 12월 25일 북송선을 타고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윤우현 사건은 좀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당시 중정은 윤우현이 간첩사건에 연루돼 일본경찰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북송선을 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중정 파견관이 서울본부에 보고하기를 일본에서 문제가 된 간첩사건은 윤우현과 관련 없다고 보고했다. 윤우현은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우현 사건을 이준구에게도 걸어 간첩혐의를 씌웠다.

그 시절에는 신문사 사장이라는 상당히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공안사건의 간첩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이준구에게 간첩혐의 걸어도 경향신문을 포기하지 않자 중정은 다른 첩보를 수집해 한국전쟁 당시 이준구가 군납으로 돈을 벌었는데 당시 출납담당자를 죽였다는 살인혐의까지 씌우려 했다.

이준구가 이 즈음 중정에 경향신문 주식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이 수사를 종결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당시 이준구를 압박하기 위한 전술이었던 것이다. 만일 이준구가 진짜 살인혐의가 있었다면 끝까지 추적해서 벌했어야 했다."

"인신 구속하고, 석방을 대가로 재산을 헌납받는 방식"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과 경향신문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부일장학회 헌납사건과 관련해 묻겠다. 당시 김지태도 위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김지태는 국내재산해외도피방지법 위반혐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이 정식적으로 해외에 송금할 절차가 없었다. 절차가 미비한 상태에서 해외에서 수금했다가 다시 송금하고 지불하는 과정에서 허위공문서를 작성했을 수 있다. 그외 농지개혁법 위반이 있었을 텐데, 이것들은 모두 약간의 편법이 동원된 위법행위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 이 문제가 일반적 관행으로 볼 때 아주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였냐,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 파악하기 곤란하지만, 부분적으로 판단할 때 완전히 위법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인신구속을 한 뒤 석방을 대가로 재산을 헌납한 거래는 이뤄져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시인 구상을 내세워 경향신문 인수를 추진해 매매계약까지 체결했으나, 천주교측은 자금원이 박정희 의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계약금 2억환을 돌려주고 계약을 파기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당시 김재춘 중정 부장이 노기남 주교 등에게 경향신문을 꼭 박 의장에게 팔 필요는 없다고 언급해 박 의장의 경향 인수가 무산됐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당시 중정은 박 의장의 경향 인수를 막으려 했던 게 아닌가. 앞뒤가 안맞는 설명인 것 같다.
"그 당시에 정치상황이 대단히 복잡했다. 중정을 만든 것은 김종필씨이다. 김종필은 육사 8기이고, 김재춘은 육사 5기다. 이때 5기와 8기 대립과정에서 김재춘이 다른 식의 판단을 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충분하고 확실한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 있는 해석과 설명을 하지 못했다."

- 부일장학회와 경향신문 매각사건이 모두 박정희 혼자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 같다. 함께 공모해 박정희 언론정책을 코치한 사람은 누구냐.
"황용주 당시 부산일보 주필이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을 유도했다. 경향신문 사건이 터질 무렵에는 황용주 자신은 부산일보를 거쳐 문화방송 사장에 재직할 때다. 그 무렵, 김형욱 중정 부장은 박정희 주변에서 진보적 생각을 하는 사람을 거세하고 중정의 권력을 강화하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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