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왼쪽이 바리스타 고제옥(66세)씨, 오른쪽이 바리스타 윤선애(72세)씨
 왼쪽이 바리스타 고제옥(66세)씨, 오른쪽이 바리스타 윤선애(72세)씨
ⓒ 송수연

관련사진보기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요. 노사연의 '바램'인데 거기 이런 가사가 있죠.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고요. 어느 날 이 가사가 가슴에 사무치더라고요. 그 가사 대로 살려고 해요. '나이로 나를 한정하지 말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나 자신으로 열심히, 신나게 살자'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요." (바리스타 윤선애)

인천 서구 청라호수공원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광 한 가운데 자리한 작은 카페를 만날 수 있다. 한껏 걷거나 운동을 한 뒤, 다리쉼을 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는 카페의 이름은 리본 (RE-BORN). '다시 태어나다, 다시 산다'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인천 서구 노인인력개발센터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노인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카페다.

"결혼 전에는 직장 생활을 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관뒀어요. 그때만 해도 결혼한 여자는 사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오랫동안 주부로 살았죠. 아이들도 다 커서 분가를 하고 나니 제 일을 갖고 싶었어요. 예쁜 카페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생각뿐이지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돈도 용기도 없었죠. 그래도 하고 싶으니까 우선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어요. 그리고 자격증이 아까우니까 인터넷을 뒤졌죠. 그랬더니 실버 바리스타를 모집한다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고제옥씨는 2019년 8월부터 카페 리본의 바리스타로 일했다. 햇수로는 벌써 4년차 바리스타이다.

"일을 하기 전에는 일상이 무료하고, 무력감에 시달렸어요. 지금은 소속감이 있으니까 활력이 생기고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해요. 우리 카페 이름(RE-BORN)처럼 저는 다시 살고 있어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죠. 용돈 정도지만 직장도 있고, 동료도 있잖아요.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다소 수줍어했지만 인터뷰를 하는 내내 고제옥 바리스타의 눈은 반짝거렸다.

"저는 30대 초반에 사별을 하고 딸을 키우면서 살았어요. 도전하고 활동적인 삶을 살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2015년엔 국무총리상도 받았어요. 충북 청주에서 살다가 인천 청라로 이사 와서 바리스타가 됐죠. 바리스타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전과 다른 행복감을 느껴요. 눈높이가 맞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는 것도 즐겁고, 단골손님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는 것도 감사해요."
 
카페 리본 내부
 카페 리본 내부
ⓒ 송수연

관련사진보기

 
카페 리본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고 싶다'는 윤선애씨의 바람을 실현시켜주는 또 다른 삶과 문화의 현장이다.

보건복지부 노인일자리 사업은 한국이 고령화 사회를 거쳐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일차적으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에서 시작, 점차 어르신의 여가활동과 수익을 연결하는 문화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버 바리스타가 일을 하는 카페 리본은 문화와 복지가 혼합된 좋은 본보기다. 카페 리본을 찾는 손님들은 실버 바리스타를 보고, 그리고 실버 바리스타가 일하는 카페라는 안내문을 읽고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요?"
"멋있어요. 커피도 맛있고요. 저도 나중에 꼭 해보고 싶어요."

단순한 재정지원도 필요하지만, 실버 세대가 스스로 문화의 주체가 돼 자기 효용감을 느끼고 삶의 기쁨과 활력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쓸모없는 노인이 아니라, 나도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며, 나를 통해 누군가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는 사회적 효용감, 문화적 자신감은 실버 세대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색안경을 끼고 실버 세대를 보는 젊은 세대의 굴절된 시각을 교정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카페 리본을 통해 일어나는 세대 간 교류는 앞으로 각종 노인 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이정표가 되어준다. 실버 세대가 단순한 재정 수급자가 아니라 카페 리본의 사례처럼 문화의 주체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때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부드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문화는 이렇게 힘이 세다.

글·사진 송수연 문학평론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태그:#인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는 시민의 알권리와 다양한 정보제공을 위해 발행하며 시민을 대표해서 객원·시민기자들이 콘텐츠 발굴과 신문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작된 신문은 뉴스레터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