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300명의 당선인들은 5월 30일부터 각자의 화두와 과제를 가지고 임기를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선인들을 만나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인 저출생, 노동시간 단축, 대화정치 복원, 서민경제, 지역소멸 대응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묻고 들었습니다.[편집자말] |
'라인사태'
이해민 조국혁신당 당선인의 요즘 최대 화두다. 그는 지난 4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권에선 처음으로 네이버가 오랜 시간 공들인 메신저 플랫폼 '라인'을 하루 아침에 강제로 일본에 뺏길 위기임을 알렸다. 그 뒤로도 같은 이유로 여러 차례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 13일엔 다른 당선인들과 함께 네이버를 비롯한 IT 기업들이 많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를 찾아 사태의 심각성을 재차 알렸다. 그럼에도 아직 '당선인 신분'이란 점이 답답할 따름이다. 조만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관련 현안질의가 열린다면 "그냥 저를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말할 정도다.
현재 국회에는 과학기술 분야 인사가 드물다. 이 당선인이 최초로 라인사태를 거론했을 때도 사안의 심각성을 포착한 이들이 적었던 까닭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에서야 대변인 명의 논평으로 첫 반응을 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하루 뒤인 3일 공개석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구글 본사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를 지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 정계 입문 전까진 스타트업 기업 최고제품책임자였던 그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쓰임이 있구나."
이 당선인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 당이 개혁을 선도하는) '쇄빙선' 얘기를 하지만 과학기술 쪽으로는 쇄빙선이 아니라 바늘로 얼음을 깨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제가 얼음을 깨놓으면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고도 했다. CPO에서 당선인으로, 기업에서 국회로 '위치'는 달라졌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고 협업으로 개선책을 내놓는다'는 일의 본령은 그대로임을 파악한 터라 주저함도 없었다.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 이 당선인은 구글코리아의 단 한 명뿐인 '여성 개발자'였다. 소수자의 경험은 직급이 올라가고, 여성 동료들이 늘어나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뜯어보면 다 사회문제"였던 현실은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개발자의 시선에선 AI 등 미래 의제 대응도 시급한 과제다. 이 당선인은 보좌진 면접마다 로봇세와 기본소득의 관계를 묻고 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지만, AI가 기술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하고 싶어서"다. '쓰임'에 관한 그의 고민은 날마다 커지고 있다.
"일본 기업-정부 손잡고 싸우는데, 우린 네이버만..."
- 정치권에선 처음으로 라인사태 문제를 제기했다. '자본관계 재검토'를 못 박은 일본 총무성의 두 번째 행정지도가 4월 16일에 나온 점을 감안하면 한국 대응이 전반적으로 늦었다.
"4월 25일 최초 보도를 보고 그날 밤 관계자한테 전화했고, 다음날 아침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어제(13일) 대통령실에서 '4월 26일 주일한국대사관을 통해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어떻게 정부가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인지했는지 너무 궁금하다. 정보력의 부재 아닌가. 그런데 이 사안뿐만 아니라 IRA, 반도체법 등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몰랐다면 정말 글로벌 호구, 알았다면 매국이다."
- 대통령실은 13일 '부당한 조치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한다'고 했지만 '반일 프레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이버가 조금 더 진실되고 구체적인 입장을 주는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최근 2~3년 간 국제 추세가 자국의 이득을 위해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일한다. 그 측면에선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가 아주 일을 잘 했다. 반면 한국은 네이버만 대응하는 게 맞나? 일본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싸우는데 한국은 네이버를 혼자 그냥 던져놓은 상태다.
게다가 지난주 과기부 차관은 '일본 정부는 지분매각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확인했지만'이라고 말했다. 국제통상법을 들이밀고 싶어도 우리나라 정부에서 먼저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외교부는 '언플(일본 총무성이 한국 언론에 입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중간다리 역할 – 기자 주)'하고, 과기부는 일본 정부에 면죄부 주고, 대통령실은 네이버 탓하고. 그런데 반일 프레임? 정부야말로 친일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국익을 원하는 게 맞나."
- 무엇이 가장 걱정스럽나.
"특정 회사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글로벌 진출하려는 우리나라 기업, 일본에 진출한 기업, 이 사안에 영향받는 개발자 전체를 정부가 다 내쳐버리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동남아 쪽만 지키고 일본 쪽은 넘겨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분 매각 등이 이뤄지면 2~3년 동안 (새로 인수한 기업은 기존 회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열심히 한 다음 사람을 자른다. 개발자들은 고용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글로벌'을 외치던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 네이버 창업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직원들을 폭삭 망하게 하는 것 아닌가. 또 일본이 이러면 다른 나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 글로벌 디지털 마켓은 전쟁 중인데, (한국은) 아이스크림 퍼주듯 알아서 회사, 개발자, 기술력 다 퍼주고 있다. 네이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하나의 서비스가 플랫폼으로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 입장에선 도대체 왜 이러는지 묻고 싶다."
"주변은 '미쳤냐' 말렸지만... 정치하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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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민 조국혁신당 당선인 "스톡옵션, 영주권 버렸지만 미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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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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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개원 전인데도 할 일이 많다. 그만큼 정치권에 귀한 IT 전문가인데, '잘나가는 전문가'이기도 했다. 급작스럽게 정치 입문을 결심해서 한 달 만에 당선까지 됐는데 후회한 적 없는가.
"없다. 주변에서 '도대체 왜?' '미쳤어?' 할 정도로 버려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스톡옵션, 월급, 심지어 2020년 딴 미국 영주권도 버렸다. 국적은 한국이라 꼭 필요한 절차는 아니었지만 '영주'라는 게 쭉 거주하겠다는 의미인데, (영주권이 있는 상태로 한국에서 정치를 하는 일은) 앞뒤가 안 맞아서 반납했다. 그런데 미련이 안 생기더라. '결정부터 하고 수습하고 있지만,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라인사태를 겪으면서 어려움을 깨닫는다. 저 같은 수준의 과학기술 지식이 있는 이들이 드물지 않겠나. 우리 당이 '쇄빙선'이라고 얘기하지만, 과학기술 쪽으로는 쇄빙선이 아니라 바늘로 얼음을 깨는 느낌이다. 하지만 제가 얼음을 깨놓으면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더 많은 과학기술계 인재들이 정치권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또 제가 전문성을 토대로 구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면에서 쓰임이 있더라. 더 잘 쓰여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
- 입당 전 조국 대표의 사법문제는 생각해봤나.
"하나도 생각 안 했다. 조국 대표와 온라인 화상회의로 처음 만났을 땐 당 강령에 과학기술에 관한 대목(우리는 과학정책은 과학자들이 주도하도록 하기 위해 행동한다)이 있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조 대표가 검찰개혁뿐만 아니라 사회권 선진국 이야기,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 살고 당이 지속성을 가질지 정말 잘 설명해줬다.
그때는 사법리스크 이런 것도 잘 몰랐고, 알았다 한들 바뀌었을 것 같지 않다. 당 지지율이 낮은 정도가 아니고 발표조차 안 될 때였다. 혹자는 그런 것도 모르고 '오케이' 했냐고 하는데,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하지 않나(웃음)."
- 많은 전문가들이 있지만 조국혁신당의 대표적 이미지는 '검찰개혁'이다. 총선 당시 후보들 평균 재산도 약 19억 원에 달해 '강남좌파' 당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점들은 당의 저변을 넓히는데 걸림돌이지 않을까.
"이번 총선에서 동서를 넘나들며 골고루 어느 정도 지지를 받은 정당은 조국혁신당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남좌파랄지, 엘리트들의 정당이라는 것은 (만들어진) 프레임이다. 거기에 걸려들지 않은 국민들의 투표가 있었다. 조국혁신당이 의정활동으로 현안을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프레임은 빨리 깰 수 있다. 다만 언론 지형이 기울어져서 어려움은 있을 거다. 이 정도를 제외하면 걱정은 없다.
또 검찰개혁은 총선의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런데 제가 처음 조 대표랑 화상회의를 하며 당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검찰개혁은 그 중 하나였다. 당원들을 만나도 우리가 '총선 다음'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얘기한다. 저는 과학기술, 김선민 당선인은 의료, 김준형 당선인은 외교 이런 식으로 진짜 강한 전문가 집단이 있기 때문에 '헤쳐 모여' 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보좌진 면접 때 꼭 묻는 '그 질문'
- 국회에는 이공계 출신도 드물지만, '여성·이공계' 출신은 더 귀하다. 구글 재직 당시 여성 개발자 수를 늘려서 사내 다양성상을 받는 등 '뒤에 올 여성'들을 고민했는데, 정치인 이해민으로선 어떤 역할을 하겠는가.
"구글에서 일을 시작할 때, 여성 개발자는 저 한 명이었다. 되게 외로웠다. 그런데 '여성 개발자를 늘려야지' 생각했을 때, 스스로 '왜'를 고민해봤다. 예를 들어 우리 팀에 여성 개발자가 저 혼자일 때, 무기명 투표한다고 해도 누군지 특정된다. 어떤 집단에서 소수자로서 안전하게 목소리를 내려면 어느 정도 숫자가 되어야겠더라. 그래서 여성 개발자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 멘토가 되어서 다단계를 해야 한다. 숫자부터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가 여성 개발자들로부터 '결혼하고도 할 수 있나' '애 낳으면 어떻게 하냐'는 얘기를 듣는데, 뜯어보면 다 사회문제다. 구글코리아에서 육아휴직제도를 만들었고, 첫 번째로 썼다. 기업 안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회문제는 풀 수 없더라. 우리끼리는 도저히 못 풀었고, 정치권에서 풀어줬으면 하는 이슈들을 해결하고 싶다. 그리고 정치를 여성 개발자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커리어 옵션으로 만들고 싶다."
- 지난 7일 당선자 총회에서 AI 문제를 언급하며 미국 바이든 행정부처럼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를 국가 차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오픈AI가 전날 공개한 GPT-4o는 인간과 대화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르고 그 파급은 예측 불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논의가 더디다.
"보좌진을 꾸리는 중인데 '로봇세와 기본소득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공통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그럼에도 그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AI가 기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하고 싶어서다. (국회 계류 중인) AI기본법을 다 들여다봤지만, 다 피상적으로 생각한다. '정치랑 관련 없네' '기술에서 알아서 하는 거 아냐?' 아니다. AI는 우리의 미래와 바로 연관된다. 이것을 알리는 일부터 필요하다. 사실 로봇세는 부정확한 이름이지만.
기술이 새로 나오면 취약계층부터 일자리가 줄어든다. 미국에선 맥도날드가 정리해고를 시작했다. 어떤 회사든 AI를 쓰면 인력을 감축할 수 있는 분야가 너무 많다. 치킨도 기계가 튀기면 밤새 튀길 수 있다. 물론 그로 인한 새로운 직업이 나오겠지만, 사회 전체를 봤을 땐 알바생부터 직업을 잃는다. 이들의 재교육, 재취업을 위해선 기본소득이 나온다든가 기금을 마련한다든가 하는 범위들을 규정해야 한다. 빠른 입법화를 생각하고 있다. 다만 다들 아직 로봇세와 기본소득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것 같아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 구글폼으로 '내가 만드는 과학기술' 제안을 받기도 했다. 어떤 내용들이 있었나.
"'왜 정치권에서 AI를 다루지 않냐'는 얘기가 많았다. 또 하나는... 사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들의 고급 인력 투입을 북돋아주던 제도가 병역특례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축소했다. 그런데 AI 다음으로 '병역특례를 다시 확대해달라'는 의견이 많았다. 인재들을 제때 산업 현장에 투입한다는 면에선 환영할 일이지만, '쟤네들만 특혜 받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 목소리 또한 이해한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한다."
"대통령 한 마디에 R&D 예산이 쫙... '허리' 없앴다"
- 인재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R&D 예산 삭감으로 이미 연구인력들은 한국을 떠나는 중이다.
"박사 후 연구원 등 청년과학자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교수들 월급이야 연구비와 별도지만, 연구원을 채용할 수 있는 인건비가 없으니까 재계약을 못한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가장 활발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이 연구인력의 허리를 싹 없애버렸다. 정부가 최근 선진 선도 연구 예산 지원을 말하지만 이 사업들은 기존 실적을 토대로 평가하기 때문에 청년과학자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다.
청년과학자 육성을 위한 지표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 예산의 0.67% 정도는 청년과학자 육성 씨드머니(종잣돈)으로 책정하자. 제가 미국에서 RA(연구조교)를 할 때 갓 임용된 지도교수가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나온 씨드머니를 저한테 (인건비로) 주고, 연구비로도 썼다. 이런 씨드머니로 청년과학자들이 결과물을 내서 올라갈 힘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너무너무 취약하다."
- 전체 R&D 예산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R&D 예산은 단 한 번도 삭감된 적 없었다. 지난 10년 간 정부 총 지출이 늘어나는 규모에 저절로 연동되면서 전체 예산 대비 평균 4.8% 수준을 유지해왔는데, 대통령 말 한 마디에 3.9%로 쫙 내려갔다. 이런 일을 막는 장치가 없어서 영입식 날부터 '연동'을 외쳤다. 정부 총 지출 대비 R&D 예산 비율 연동을 아예 법제화하겠다. 또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이 가장 큰 자원인 나라다. 향후 R&D 예산을 7%까지 확대하는 법안도 추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