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A씨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목숨을 끊은 건 8번째다. 이튿날 야당은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야당이 주장하는 선 구제, 후 회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며 "정부는 피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이를 낙찰받아 공공임대주택으로 확보해 피해자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선 주거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전세사기 문제에 대한 정부 측 대응에 피해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4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말을 듣기 위해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아래 광주청지트)와 함께 광주 광산구 우산동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3명을 인터뷰했다. 광주청지트는 지역 청년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시민단체다.
광주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없다"고 했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이름은 모두 익명이다. 아래는 일문일답.
- 전세사기 피해를 본 후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어떠셨나요?
진영 : "사건 이후 시청에 전세사기를 담당하는 부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구청과도 통화해 본 상황이었는데, 시청에서 구청에 전화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후 세 번 정도 전화가 돈 후에 '시청에 전세사기 부서가 생겼다는데 거기랑 연결해 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연결됐습니다. 시청에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피해자 인정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모두 준비해 갔지만 그마저도 전세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는 신청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계약 기간이 끝난 후인 지난 2월에야 피해자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경민 : "피해자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면 피해자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일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피해자 등'으로 인정받았는데 이 경우 경·공매 유예 및 정지를 신청할 수 없고, 경매 시 우선 매수권 신청도 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3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라'는 통지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못하면 요건을 충족한 후 처음부터 다시 신청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피해자 인정에는 2개월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의신청 과정에 왜 굳이 30일이라는 기간을 둔 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이런 규정을 둬서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지, 솔직히 자기들 일 편하게 하려고 뒀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정연 : "모든 피해자의 사정이나 상황에 다 맞출 수 없어서 기준을 정해둔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관련해서 담당자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피해자) 신청 과정에서 사람을 기다리게 할 거면 안내라도 해줘야 하는데 자기들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 이후에는 어떤 도움을 받으셨나요?
진영 : "LH 측에서 서류를 준비해 오면 (매수 관련) 도움을 준다고 했는데, 준비해 가니 경매가 들어 있어서 도와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협의 매수'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건 경매가 들어가지 않은 곳에만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경매를 취하하고 오라고 했는데 제가 건 경매가 아니었기 때문에 취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연 : "지금 제일 급한 게 이자 내는 일인데, 나라에서 그걸 안 내게 해주거나 도와주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도움받을 만한 게 나라에서 변호사 붙여주는 건데 이미 소송 중이라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 정부가 피해 주택을 LH를 통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진영 : "저희와 같이 피해를 본 분 중에 LH 협의 매수 관련 결정이 있어서, 감정평가사가 피해 주택을 보고 간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매수가 되려면 감정평가 금액이 대출금보다 높게, 전세금보다 낮게 나와야만 기회가 된다고 합니다. 다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분이 상당히 당황해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평가 금액이 전세금보다 비싸게 나오지는 않을 거 같은데 대출금보다 낮게 나와서 매수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분 말로는 감정평가사가 두 번 오는데, 청소 다 하고 기다리니 1차로 온 평가사가 집을 다 뒤져보고 갔다고 합니다."
경민 : "LH 우선 매수로 희망을 가져보려고 했습니다. LH 관계자분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웬만하면 매입해 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가금액이 대출금과 전세금 사이로 잡혀야 가능하다는 걸 알고 또다시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선 매수를 해준다는 말은 많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법이 바뀌면 될까요? 두루뭉술한 말만 오가는 느낌입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모든 절차들이 너무 허술해서 고통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 이 문제와 관련한 2차 가해도 심각한 상황인 거 같습니다.
진영 : "저 같은 경우에는 시청에 가거나 경찰을 만난 자리에서 왜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느냐, 개인 탓도 있지 않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잘 알아본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시선이나 말이 많았습니다. 피해자를 만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분께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광주 남부경찰서에서 하는 8주간의 집단상담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번 주부터는 모 재활병원에서 상담을 받습니다. 그런데 시청에서는 제대로 된 상담은커녕 필요한 안내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국토부는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광주 우산동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함께해 온 광주청지트 박수민 이사장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에는 상당한 절차적 어려움과 심리적 어려움이 산적해 있었다"라며 "전세사기 사건을 개인의 실수 혹은 책임으로 느끼게 하는 메시지들은 피해자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기본적인 경제적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부 정책은 각 피해자의 상황에 맞춰 개인회생이나 파산과 같은 채무조정제도를 안내하는 지점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