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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1일차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고공농성 1일차 아래를 내려다보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고공농성 1일차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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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4공단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있다. 2022년 11월 4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노동자들에게 문자로 청산을 통보한 후 전원을 희망퇴직 시키려 했다. 대부분 이를 받아들였으나 노동자 11명이 이를 거부하고 평택 쌍둥이 공장으로의 고용승계 투쟁을 하고 있다. 11명의 노동자가 구미 공장에서 일한 평균 기간은 12년이며,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약 18년간 구미에서 공장을 가동하여 약 7조7천억의 매출을 올렸다.

2024년 1월 8일, 11명 중 두 명의 여성 조합원이 영하 12도 강추위에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고공농성의 시작이었다. 2024년 5월 13일 기준, 고공농성이 시작된 지 127일이 지났다. 약 1년 6개월의 투쟁, 약 4개월의 고공농성을 지켜본 이가 있다. 가족이다. 고공에 오른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의 동생인 박혜진씨를 5월 10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고공농성 1일차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왼)과 소현숙 조직2부장(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고공농성 1일차 아래를 내려다보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왼)과 소현숙 조직2부장(오) 고공농성 1일차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왼)과 소현숙 조직2부장(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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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선택을 지지해요

반갑습니다. 저는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의 동생 박혜진입니다. 저도 예전에 옵티칼에서 일한 적 있어요. 언니랑 같이 일했죠. 저는 2년 정도 다닌 후에 그만뒀고 언니는 계속 꾸준히 다녔어요.

언니랑 직장에 대해 이야길 많이 하진 않았어요. 근데 회사가 2019년, 2020년에 희망퇴직 받을 땐 언니가 몇 번 얘기했어요. 회사가 희망퇴직 신청받고 있는데 자기는 신청 안 할 거라고.

정혜: 나는 희망퇴직 신청 안 하려고
혜진: 왜? 언니도 신청하지?
정혜: 나는 나이도 많고 오래 일했잖아. 여기 더 다니고 싶어.
혜진: 그래. 언니 원하는 대로 해.

노동조합 투쟁을 하겠다고 말할 때도 비슷했어요. 언니는 하겠다고 말하고, 저는 언니 뜻대로 하라고 했죠. 처음엔 이렇게 심각해질 줄 몰랐어요. 언니가 투쟁을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언니 인생이잖아요. 언니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똑같이 생각하고요. 언니의 선택을 지지해요.

작년 8월, 언니 전셋집에 보증금 가압류가 들어왔어요. 저한테도 말해주더라고요. 저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언니 집 새로 구해야 하는 거야?"라고 물으니까 언니가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언니를 믿었어요. 그 후로 언니 집에 법적 서류가 날아오기도 하고 가처분이 걸리기도 했더라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언니가 저랑 수시로 연락하면서 말해주었어요. 저는 그때마다 언니가 잘 해결할 거라고 믿었어요. 저는 언니에 대한 신뢰가 있어요.

언니가 왜 고공에 올랐는지 알아요

 
고공농성 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고공농성 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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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요. 고공농성에 들어갔다고. 이제 투쟁 끝날 때까지 위에 있을 거라고. 그 말 듣고 언니한테 "그럼 나 언니 집에서 필요한 거 갖다 쓴다?"라고 했어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사실 속상했어요. 안쓰러웠고요. 그런데 언니한테 내려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언니한테 우는 모습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농담으로 말했죠. 언니 물건 쓴다고(웃음).

고공농성에 올라간 후로 일주일에 한번정도 찾아가요. 언니가 빨랫감을 아래로 내리면 제가 세탁해서 갖다주거든요. 처음 온 날, 많이 울었어요. '우리 언니가 왜 저기서 저렇게 있어야 하나' 싶어서요.

저는 언니가 어떤 마음으로 고공에 올랐는지 알아요. 언니는 회사를 좋아했어요. 예전에 희망퇴직을 안 한 것도 누군가는 남아서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 거에요. 2022년에 회사가 희망 퇴직한 사람들 중 여럿을 다시 불러온 적이 있어요. 그때도 언니는 같이 일했던 사람들 많이 불러들였어요. 회사도 지키고 동료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겠죠. 고공도 비슷한 마음으로 올라갔을 거에요. 회사와 동료를 지키고 싶은 마음. 저도 지켜보면서 '이 여자가 이 회사에 자기 젊은 시절을 다 바쳤구나. 진심이구나' 생각해요.

고집도 세고 책임감도 많은 사람이에요

아래에 있는 9명의 조합원한테 미운 마음은 안 들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리고 언니는 책임감이 강해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아마 고공에 올라가기 전에 누가 말렸어도 올라갔을 거에요. 어떻게 보면 고집이 센 걸 수도 있겠죠. 하긴 고집이 세니까 지금까지 고공에서 버티고 있죠.(웃음)

언니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반장 한 번 안 해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노조 수석부지회장도 하고 고공농성도 하네요. 가끔 농담으로 말할 때도 있어요. 언니는 왜 학교 다닐 때는 안 하다가 이제 와서 하냐고(웃음). 그러면 언니는 그냥 웃어요. 그럴 때면 언니의 책임감이 느껴져요.

언니의 투쟁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고공에서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왼)과 소현숙 조직2부장(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고공에서 구호를 외치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왼)과 소현숙 조직2부장(오) 고공에서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왼)과 소현숙 조직2부장(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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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가끔 물어봐요. "혜진씨 언니 있구나. 언니 결혼했어? 직장 다녀?" 저는 "4공단에 옵티칼 공장 있잖아요. 거기서 노조 투쟁하고 있어요.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요. 언니의 투쟁은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요. 사람들도 "와 언니가 대단하네"라고 말해줘요.

언니랑 매일 통화해요. 덥지 않은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여름옷은 충분히 있는지 물어요. 그러면 언니는 오늘 집회에 몇 명이 왔는지, 밥은 뭐 먹었는지 그런 얘기해요. 통화를 안 한 날은 하루가 안 끝난 거 같아요. 그래도 매일 언니가 걱정돼요. 거의 매일 보던 사람이 안 보이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죠. 제 딸도 언니랑 사이가 좋아요. 못 본 지 꽤 되니까 보고 싶다고 운 적도 있어요.

저는 지금도 언니의 투쟁을 지지해요. 언니가 계속하고 싶다면 계속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래에서 언니를 잘 기다리고 필요한 지원을 해주면서 응원하려고요. 그냥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저는 언니가 건강하게 빨리 내려오면 좋겠어요. 혹시 이 글을 회사가 본다면, "빨리 해결해주세요. 우리 언니 빨리 내려오게"라고 말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셨다면, "불탄 공장 지키며 싸우던 이들, 옥상으로 향하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5463 를 확인해주세요.


태그:#노동조합, #구미, #고용승계, #NITTO,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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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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