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 후 2년째 되던 해, 아내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신혼부부의 당연한 흐름이겠지만 난 내심 아이가 부담스러웠다. 육아 문제부터 쏟아야할 많은 것들, 그러니까 돈부터 안락한 큰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격미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아이 낳는 걸 꺼리는 이유에 대해 어느 인류학자는 '경쟁에서 밀린 개체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결혼과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자연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열심히 살아온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그렇게 경쟁에서 밀리고 밀려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을 자격미달 인간이 된 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시큰둥했던 내 반응 때문이었는지 언제부턴가 아내는 인터넷으로 강아지 사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급기야는 강아지 사진 보여주는 걸 넘어서 키워보는 건 어떠냐고까지 물어왔고, 내키진 않았지만 미안함을 털어보고자 '한번 즐겁게 키워보자'고 말했다.

아내는 나도 좋아할 줄 알았다며 자신이 봐놓은 '애견숍'이 있으니 당장 가자고 차 키를 챙겨들었다. 마음의 준비가 완벽하게 되진 않았지만 아내를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바로 따라 나섰다.

꼬미와 만나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이 시간까지 하는 애견숍이 있을까 했는데, 차를 타고 10분 정도 지나니 어두운 빌라촌 골목 사이로 환하게 영업 중인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더 작고 비좁았다. 벽면은 미관보다 적재효율을 중시해 쌓아올린 애견 상품들로 가득했고, 쇼윈도 쪽엔 투명 유리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강아지 진열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엔 눈만 마주치면 낑낑거리는 강아지들로 꽉 차 있었다. 새로운 주인에게 선택받을 기회는 이번뿐이라는 듯 앞다리에 온 힘을 쏟아 최선을 다해 긁어댔다. 아내는 내가 강아지를 사주기로 했으니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고를 선택권을 주겠다고 선심을 섰다. 그러나 나에겐 그저 자갈밭에서 자갈 고르기 만큼 어려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집중해 둘러보던 중 한 녀석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말티즈와 푸들이 섞인 믹스견이었는데 털은 금발에 가까운 옅은 갈색이었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웅크리고 엎드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태생부터 믹스견이여서 생태계 경쟁에서 밀린 자신은 어떠한 선택의 자격도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응시했다.

"사장님! 얘로 할게요."

와이프는 왜 굳이 믹스견을 골랐냐며 묻기는 했으나 반대하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강아지 이름을 지었는데, 조그마하다 해서 '쪼꼬미'라고 했다가 부르기 편한 '꼬미'로 줄여 불렀다. 그렇게 '꼬미'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꼬미는 자기 의사가 분명했다. 말귀도 잘 알아들었다. 우리와 모든 여행을 함께했고, 직업 특성상 제택 근무를 했던 나와는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여름이면 보신탕을 즐겨먹던 나의 모습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애견인'이라는 딱지가 새로 붙어 있었다.

아이는 없었지만 우리는 꼬미로 인해 오히려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행복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함마저 들 정도였다. 꼬미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나면 언제나 꼬미와 잠깐 놀아 줬는데, 신나게 놀다가도 내가 일하러 작업실로 가야 할 때면 녀석은 더 이상을 보채지 않고 작업실로 따라 들어왔다.

작업실이라 해봐야 책상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방이었다. 아내가 퇴근해 오기까지 오롯이 혼자 일하며 버티던 외로운 공간이었지만, 꼬미 덕에 더 이상 혼자만의 쓸쓸한 곳이 아니었다. 녀석은 항상 작업실에 들어오면 의자를 타고 책상 위로 올라와 방해 안 되게 눕고는 날 빤히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꼬미가 아프기 시작했다
 
제 작업실 책상 위에 올라와 앉아있는 꼬미의 모습입니다.
▲ 건강한 시절 꼬미의 모습 제 작업실 책상 위에 올라와 앉아있는 꼬미의 모습입니다.
ⓒ 김현수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함께한 지 5년 정도의 시간이 되었을 때 건강했던 꼬미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간식을 많이 준 탓에 살이 찌면서 뒷다리가 탈구돼 수술을 하게 됐고, 연달아 눈병이 심하게 나며 염증이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올랐다. 그 염증은 부풀어 오르며 터지기를 반복했고 눈에서 피와 고름이 흐르는 날이 계속됐다.

꼬미의 한쪽 눈두덩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항상 땡땡 부어올랐다. 의사와 상담한 후 입원을 결정해 눈 치료를 시작했다. 강아지 입원실은 애견숍 진열장과 흡사했다. 입원실 사각 유리장에 넣을 때면 꼬미는 앞다리로 유리 문을 연신 긁어댔다. 자기를 데려가라는 양 낑낑대며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매일 집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의 병원으로 면회를 갔다.

며칠 뒤 꼬미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 수치가 너무 높아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냥 보기에도 꼬미는 호흡을 가빠하며 간신히 한숨 한숨을 쉬어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운 몰골이었다.

의사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시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을 우리 부부에게 전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렇게 쉽게 꼬미를 보낼 수 없었다. 의사에게 화를 내며 대꾸할 머릿속 여유도 없이 조금이라도 빨리 더 상황이 좋은 병원으로 꼬미를 옮길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 했다.

아내가 운전을 하고 나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꼬미를 안은 채 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큰 병원으로 향했다. 퉁퉁했던 녀석이 뼈가 만져질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급하게 내달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누가 봐도 우리 부부는 응급상황을 겪고 있는 몰골이었다.

담당 의사는 긴급히 꼬미를 받아안고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과 함께 너무 늦게 오신 거 같다는 말도 같이 남기며 응급실로 사라졌다. 곧이어 간호사가 다가와 꼬미가 안정이 되면 부르겠다며 대기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의사의 상기된 목소리가 급박하게 우리를 부르며 생명 연장 응급조치에 대한 의사결정을 물어왔다. 현재는 심장이 멈춘 사망 상태라고 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꼬미가 인공호흡기를 끼고 물먹은 걸레처럼 흠뻑 젖어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이상의 치료보다 편하게 보내고 싶었다.

꼬미와 이별하다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모든 장치를 떼 낸 후 꼬미는 작은 박스 안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졌다.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녀석의 몸은 따뜻했다. 아내는 눈을 뜬 채 허공을 바라보는 꼬미의 얼굴을 보며 의사에게 눈이 왜 감기지 않냐고 물었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는 설명만 돌아왔다.

눈물로 범벅이 된 아내는 연신 눈을 감기려 애썼지만 슬픔만 가중할 뿐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우리는 꼬미가 담긴 박스의 뚜껑을 닫고 반려견 화장터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입원을 시키지 말걸', '병원을 옮기지 말고 헤어지기 전까지 시간을 같이 보내줄걸' 하는 미안함과 아쉬움의 마음들이 반복해 들락거리고 있었다. 반려동물 화장장에 도착해 장례 수속을 밟았고 잠시 후 관리자가 나와 짧은 식순을 설명해 주었다.

관리자의 진행으로 곧이어 꼬미가 담긴 박스 앞에서 짦게 묵념하고 박스 앞에 놓을 국화를 우리에게 각각 전해주었다. 이제 정말 꼬미와는 사실상 마지막 순간이었다.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내는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꼬미가 담긴 박스를 천천히 열었다. 다음 순간 아내가 놀라 입을 열었다.

"오빠. 꼬미가 눈을 감고 있어."

나는 설마 하며 박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꼬미가 박스 안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는 눈물로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위해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보낸 꼬미의 위로라 느껴졌다. 녀석의 편안한 표정이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꼬미에게 우리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는데 이별의 순간에도 이렇게 또 받고만 가는구나. 고마웠다고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달라는 녀석의 마지막 선물을 받고 우리는 화로 속으로 꼬미를 보내주었다. 화로 속에선 화염의 일렁임이 마치 비온 뒤 구름 속 무지개처럼 연기와 함께 오색 빛을 뿜고 있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꼬미의 모습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눈앞에서 희미하게 번져 나가며 입가에 젖은 미소를 짓게 했다.

잘 가! 고마웠다, 꼬미야.

태그:#반려견, #반려견과의 이별, #반려견이 주고간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활의 소소함을 수집하여 이야기로 나누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수입니다. 쓰고 그린책으로 ‘굿바이, 플라스틱 바다’가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