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 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2013년에 산티아고 프랑스 길을 걸었고, 2017년 900km에 이르는 산티아고 북쪽 순례 길에 다시 섰습니다. 기사와 더불어 순례의 전체 여정이 담긴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

'이제 우리는 다시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되었다.'

우리 부부의 '산티아고 북쪽 길' 순례는 공항에서 SNS에 이 말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지난 5월 10일 우린 한국을 떠나 순례길에 올랐다. 파란만장 촛불혁명을 끝내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놓고 떠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5월 10일 새벽에 진주 집을 나서 인천을 거쳐 파리까지 날아갔는데, 여전히 5월 10일!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시차'라는 게 참 적응 안 되면서 신비로운 존재같다.

순례의 시작점인 프랑스 바욘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에서 본 파리 전경. 파리의 유혹을 떨치고 곧바로 순례 시작점인 바욘으로 직행했다.
 순례의 시작점인 프랑스 바욘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에서 본 파리 전경. 파리의 유혹을 떨치고 곧바로 순례 시작점인 바욘으로 직행했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정한 파리의 숙소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 바로 앞. 다음 날 바로 북쪽 순례 길의 출발점인 바욘(Bayonne)으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4년 전 프랑스 길 순례에 나섰을 땐 파리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기왕 온 김에 여유롭게 파리를 즐긴 후 순례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파리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나는 밤마다 위경련에 고통스러워했고, 남편은 덩달아 마음 졸이며 잠을 설쳤다. 10kg에 이르는 배낭을 짊어지고 800km를 걷는다는 것이 그 무게와 길이만큼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죽을 듯이 아팠던 위장의 고통은 실제 짐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자 발과 다리와 어깨의 고통으로 옮겨져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런 경험으로 이번엔 파리의 유혹을 떨치고 곧바로 순례 시작점인 바욘으로 직행했다.

파리에서 바욘까지는 테제베로 5시간 10분, 프랑스 남쪽 끝을 향해 달린다. 바욘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는 순례자를 많이 만난다. 그러나 대부분은 바욘을 지나쳐간다. 프랑스 길을 걸을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생 장 피드 포르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북쪽 길을 걸을 순례자도 대부분 바욘을 지나쳐 북쪽 길의 첫 스페인 마을인 이룬(Irun)으로 직행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프랑스의 파리나 투르, 혹은 브르타뉴 지방의 아르모리크 반도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북쪽 해안 길로 들어서는 곳, 프랑스 바욘(Bayonne)에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ela)까지 900km를 온전히 걷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2017년 5월 13일부터 6월 23일까지, 프랑스 바욘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900km를 걸었다.
▲ 빅풋 부부가 걸었던 북쪽 순례길 경로 우리 부부는 2017년 5월 13일부터 6월 23일까지, 프랑스 바욘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900km를 걸었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9세기 야고보 성인(산티아고)의 유해가 발견되고 그 지점에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성지가 되었다. 유럽 각지에서 이곳으로 향하는 산티아고 순례 길은 11~14세기 황금기를 맞았고, 수 세기 동안 잊혔던 이 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지금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물론 첫 황금기는 종교적 의미에서 기인했고, 지금의 황금기는 미디어의 발달과 걷는 여행의 돌풍이 가져왔다는 아주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 길은 대략 9가지의 길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 부부는 2013년 대부분의 순례자가 걷는 프랑스길을 걸었고 2017년 5월 13일부터 6월 23일까지 900km에 이르는 산티아고 북쪽 길을 걸었다.

'왜 두 번이나 산티아고인가.'

주변의 많은 이들이 질문했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질문했다.

첫 산티아고 순례에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거나 영혼의 자유를 만끽한 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이 평온함만 가득한 길도, 온전한 믿음을 향한 길도 아니었다. 도전과 성취 같은 단순하고 명확한 단어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첫 순례 길에 대한 우리 부부의 감정은 실망, 절망, 분노, 허탈, 힘겨움, 부대낌…. 그런 부정적인 단어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우리 부부는 지난 10년 간 매년 한 달 이상 꾸준히 해외여행을 해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했는데 그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많이 돌아보게 되고 곱씹어 이야기하게 되는 여정은 산티아고 순례였다.

우리 부부는 2013년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 길을 걸었다. 당시 미완의 순례였고, 짧아서 더 강렬했던 북쪽 길에 대한 추억이 있어 다시 순례 길 위해 섰다.
▲ 201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모습 우리 부부는 2013년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 길을 걸었다. 당시 미완의 순례였고, 짧아서 더 강렬했던 북쪽 길에 대한 추억이 있어 다시 순례 길 위해 섰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사실 우리는 4년 전 산티아고 프랑스 길을 걷는 첫 800km 순례를 완주하지 못했다. 순례자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 속에서 트레킹 대회에 나선 것처럼 순례 길을 걸으며 절망하고 분노했다. 천천히 걷고 길 위에 오래 머무르며 느린 순례를 지향했던 우리는 매번 숙박해야 할 마을에 꼴등으로 도착했다. 겨우 가장 불편한 자리에 침대 하나를 얻거나 아주 비싼 숙소에 머무르거나를 반복하다 결국엔 숙소가 아예 없어 버스를 타고 다음 마을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결국 우린 처음 계획했던 길을 벗어났다. 우리는 산티아고 프랑스 길을 벗어나 산탄데르에서 야네스까지 북쪽 길을 걸었다. 하지만 북쪽 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다시 프랑스 길로 내려왔고 헝클어진 우리 순례 길의 모습에 허탈했다. 레온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며 순례 길을 마무리 짓긴 했지만 산티아고 순례는 우리에게 미완으로 남았다. 그리고 4일간의 북쪽 길 경험은 의외로 강렬하게 남았다.

미완의 순례, 짧아서 더 강렬했던 북쪽 길에 대한 추억. 그것이 '왜 두 번이나 산티아고인가'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다.

프랑스 바욘은 아두르 강과 니브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바스크 지방 도시다. 우리가 머무를 당시 강 옆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 산티아고 북쪽 순례 길의 출발 도시 바욘(Bayonne) 프랑스 바욘은 아두르 강과 니브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바스크 지방 도시다. 우리가 머무를 당시 강 옆 광장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어쨌든 두 번째 순례, 북쪽 순례 길의 출발점은 아두르 강과 니브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프랑스 바욘이다. 프랑스가 출발점이라 하지만, 국가라는 테두리보다 더 끈끈하고 오랜 역사로 묶여있는 '바스크 지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더 맞을 듯싶다.

바욘에는 5만여 점의 바스크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바스크 박물관이 있다. 17세기 수녀원 건물 자체가 프랑스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바스크 건축과, 의상, 예술, 풍속까지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는 바스크 문화를 벼락치기처럼 공부했다. 좀 더 깊이, 꼼꼼히 공부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박물관에서 벼락치기라도 하는 것이 스페인 게르니카와 빌바오에 이르기까지 순례길 내내 만나게 될 바스크 지역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됐다.

우린 앞으로 바스크,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지역을 거쳐 900km 순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17세기 수녀원 건물 자체가 프랑스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 바스크 박물관(Musee Basque)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17세기 수녀원 건물 자체가 프랑스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250만 바스크인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유물 5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 바스크 박물관 내부 250만 바스크인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유물 5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이제 남은 준비물은 단 하나, 크레덴시알(Credencial, 순례자 여권)이다. 크레덴시알은 일종의 순례자 증명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자신이 묵는 숙소나 걸으며 들르는 성당 등에서 세요(Sello, 도장)를 받는다. 그것으로 자신의 순례 구간을 증명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있으며,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먹거나 성당의 입장료를 할인받는 등 순례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바욘에서는 대성당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 수 있다. 따로 사무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 구석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카미노 친구들 협회에서 나온 친절한 봉사자가 예비 순례자를 맞이한다. 바욘에서 출발하는 외국인 순례자가 많지 않아 그런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손발이 있고, 웃음과 윙크가 있고,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겠노라는 넓은 마음이 있으니 통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비용은 1인당 2유로,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가비는 약간의 기부금을 내면 얻을 수 있다. 이때 바욘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북쪽 길 숙소 정보도 함께 제공받는다.

13~16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이곳에서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Credencial)을 만들 수 있다.
▲ 회랑에서 바라본 바욘 생트마리 대성당(Catedral de St-Marie) 13~16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이곳에서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Credencial)을 만들 수 있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1인당 2유로를 내면 크레덴시알(Credencial, 순례자 여권)을 만들 수 있으며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도 일정액을 기부하고 받을 수 있다.
▲ 바욘 대성당 내부 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데스크 이곳에서 1인당 2유로를 내면 크레덴시알(Credencial, 순례자 여권)을 만들 수 있으며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도 일정액을 기부하고 받을 수 있다.
ⓒ 박성경

관련사진보기


수십 개의 칸이 지어진 순례자 여권에 바욘 대성당의 세요(도장)가 첫 칸에 찍혔다. 프랑스 봉사자가 알아듣지 못할 격려의 말을 쏟아놓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순례자 여권을 손에 쥐고 흰 조가비를 가방에 다는 것이 어떤 의미라는 걸. 설렘 뒤로 두려움이 몰려오고 벅찬 마음 위로 가늠하지 못할 힘겨움이 얹어지는 느낌, 그걸 모두 싸 짊어지고 어쨌든 내일부턴 길 위에 있게 되리라는 사실.

우리가 성당에 들어설 때부터 진행되고 있던 엄숙한 미사가 젊은 파일럿의 장례 미사라는 걸 성당을 나설 때야 알았다. 수많은 사람의 통곡 없는 눈물 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생이 마감되는 곳에서 새로운 걸음을 준비하게 되다니. 900km의 길을 걸으며 하게 될 수많은 기도 중에 그의 평온한 안식을 비는 기도 하나를 더 얹어야겠다.



태그:#산티아고북쪽길, #산티아고순례, #카미노, #바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