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도 하기 전부터 '묻지마 규제 완화'를 시사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기어이 부동산 투기를 막아 온 모든 봉인을 풀어 버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경기 부양이라는 명색은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방식에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현재 극심한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에 추가적인 '빚'을 대량 살포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띄우겠다고 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이 24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부동산 경기부양책'이었다. DTI(총부채상환비율) 및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각각 60%, 70%로 단일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언론에 의해서 예상되던 것보다도 더 큰 폭이다.
아마 최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 차에 경기 회복에 실패할 경우,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초에 내놓은 474비전 등을 위해서는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인식일 테다. 패기와 열정은 좋지만, 그가 주장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 드라이브는 여러 면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 전에, 부동산 관련 규제로 인해 전세로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난이 심화된다며, 전세 수요를 거래 수요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가계부채 절대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신 경기 활성화로 가계소득을 늘려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을 키우면 된다"라는 뻔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내세워진 명분으로, 이미 실패가 입증된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1000조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 총액은 가처분소득의 163.8%이나 되었다(OECD 평균 134.8%). 그리고 그 중에 절반이 부동산 관련 부채다. 사실 정부도 이것을 심각하게 인식했는지 올해 초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5%포인트 낮춘다는 목표가 들어 있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규제 완화로 인해, 가계는 집을 담보로 하여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고,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소로 꼽히는 가계부채의 증가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최 부총리는 정부가 세운 가계부채 감축 목표를 포기하면서까지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상태에서 가계부채를 더 악화시킨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내수 위축이 벌어지고, 깡통주택과 하우스푸어도 양산될 수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또한, 현재 주택의 실수요자는 전세자금 대출을 가지고 있는 수도권의 30대이고, 그 사람들이 금융 부채를 동원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리고 50대 이상은 대출이 목 아래까지 차 있다. 즉,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이동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부동산 경기를 위해 세대간의 일종의 부채 돌려막기를 하는 셈이다.
사실 거래량과 가격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결코 침체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정부가 발표해 왔던 주택 거래량을 보면, 2013년에만 85여만 건 정도로, 2007년의 87만여 건 수준을 거의 회복했으며, 올해도 4월까지 지속적으로 늘다가 5월 들어서 약간 주춤하고 있는 정도다.
또한, 지난 5년간의 주택매매가 상승률은 12.7%로, 같은 기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 11.4%도 앞서고 있다. 철저한 시장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최경환 부총리가, 이러한 객관적인 시장 데이터에는 왜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동산 경기가 살면, 내수가 살고, 그래서 우리 경제는 성장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공식은 무너진지 오래다. 지난해에 정부가 쏟아 놓은 4·1대책, 7·24대책, 8·28대책, 12·3대책 중에서, 성공한 것이 있었던가. 유일한 효과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것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위해,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경기를 띄워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부총리로서는 하면 안 될 일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제 투기로 과열되었던 부동산 시장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어느 정도의 한계치를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와 함께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기 경제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강조했던 경제 민주화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도록 바랐던 것은 정녕 실수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