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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럽의 대학생 복지는 68혁명 이후 갖춰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 드골 정권의 실정과 권위주의적 태도에 반대해서 일어난 시위다. 몇몇 대학교에서 시작된 시위는 파리 전체 노동자의 2/3의 파업으로 확산되었다. 68혁명의 결과로 유럽에서는 평화주의와 같은 현대적인 이념이 자리 잡았으며 대학생에 대한 대우도 좋아졌다. 이처럼 대학생의 지위는 대학생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또한 세상을 뒤흔들었던 적이 있다. 독재정권을 위협하고 그들의 억지에 저항했다.

현재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IMF이후 대한민국에 대학생은 없다. 세상을 뒤 흔들던 대학생은 살아있으면서도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존재, 즉 좀비가 되어버렸다. 학생을 위해 일하던 총학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학생은 현실이라는 미명 아래 불의에 눈을 감고, 어른이 어른 스럽지 못하며, 효율성 아래 법적 정당성이 훼손되는 상황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대학생들이 왜 안녕한 척 지내왔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그 유치한 대학교의 이야기다.

대학생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무관심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신 자유주의가 자본주의에 가진 신앙심처럼 말이다. 그 결과 노예가 됐다. 그가 공부 한 목적은 오로지 좋은 기업에 가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 스스로 부품으로 전락했다.

대학교는 부품화한 대학생들에게서 주권을 박탈했다. 등록금을 정할 권리, 학교의 중대사를 정하는데 영향을 줄 권한은 학생에게는 없다. 대학교 총장은 학생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부가 노조를 무시하듯 총장은 총학생회를 무시한다. 때문에 총학은 시위와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거치지 않고서는 학생의 입장을 학교 행정기구에 전달하기 어렵게 됐다.

총장은 자신을 선출하는 교수를 위해 일한다. 한국외대의 경우만 해도 총장은 교수의 복지를 위해 월급을 올리고, 연구비를 올리는데 후하다. 한국외대 김인철 차기 총장은 그의 선거 공약에서 평균 2000만원의 교수 및 교직원 임금 인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을 위한 장학금에는 인색하다. 심지어 몇몇 총장들은 등록금 상승은 그저 건물을 짓고 교수의 월급을 올리는데 따르는 당연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외대 차기 총장 후보자 8명 중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같은 재정적 지원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는 그나마 김인철 후보가 유일했다.

사회는 대학생을 잊었다. 대학생들은 회사의 예비 부품으로 전락했다. 대학가의 멘토들은 '자신을 브랜드화'해서 기업에 팔아먹으라 한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마케팅학 교수는 사회를 탓하지 말고 자기만 탓하란다. 류승완 박사가 삼성재단을 비판하고, 학문의 자율권에 대해 물으니 성균관대 강의 배당이 취소됐다. 총학이 사회적인 의사를 표현하니 학생의 정치적 중립을 물으며 빨갱이가 되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는 대학생을 배신했다. 박근혜 정권은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다. 그러나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공약을 폐기했다. 한국대학생연합이 약속을 지키라 하니 빨갱이가 돼버렸다.
 대학교에서는 등록금으로 지은 건물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고, 가난한 대학생은 들어갈 수도 없다. 이제는, 대학생마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학우들에게 빨갱이를 남발하고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수용한다. 타인의 괴로움에 눈감고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 물으니 괜찮다며 대자에 낙서를 했다. 한 국가의 최고학부에 속한 학생들이 지식이나 원칙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이러한 현상들로 볼 때 현대 대학생은 사회의 주체가 아니다. 아마 수식어 쯤 되리라.


 타인의 고통에 눈감는 모습이 안녕하지 못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안녕하다 였다.
▲ 사진1> 대자의 답 타인의 고통에 눈감는 모습이 안녕하지 못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안녕하다 였다.
ⓒ 이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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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진행된 한국외대 총장 선거에 나온   두 후보의 공약에서 볼 수 있듯, 학생을 위한   총장이라기보다는 교수를 위한 공약이 중심인   즉, 교수를 위한 총장에 가깝다.
▲ 한국외대 총장선거 2013년에 진행된 한국외대 총장 선거에 나온 두 후보의 공약에서 볼 수 있듯, 학생을 위한 총장이라기보다는 교수를 위한 공약이 중심인 즉, 교수를 위한 총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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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진행된 한국외대 총장 선거에 나온   두 후보의 공약에서 볼 수 있듯, 학생을 위한   총장이라기보다는 교수를 위한 공약이 중심인   즉, 교수를 위한 총장에 가깝다.
▲ 한국외대 총장선거 후보 2013년에 진행된 한국외대 총장 선거에 나온 두 후보의 공약에서 볼 수 있듯, 학생을 위한 총장이라기보다는 교수를 위한 공약이 중심인 즉, 교수를 위한 총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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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인가?

모든 사회현상은 원인이 발생하면 적당한 과정을 거쳐서 숙성, 발효되고 그것이 결과로 표출된다. 현 대학생들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 및 보수화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정치적 이유
 김영삼 정권 당시 수구세력들의 교육정책방침

문민정부는 최초의 민주화세력이 주도한 정권이었다는 동시에 친일파 및 군부와 같은 수구와 보수세력을 껴안은 정권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6월 항쟁이후 조금씩 사회가 민주화가 되어가는 것을 목도한 보수세력은 미래의 유권자이자 정치적 자산이 될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 것을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학문인 철학과 역사교육을 교육과정에서 축소하는 방침을 내부에서 정하고 우민화 정책을 장기적으로 펴나가기로 결정한다. 한국은 철학이란 과목은 없고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이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대입수능에서 전 과목보다는 점점 국어, 수학, 영어 계열의 비중이 증가하고 사회탐구는 선택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철학이나 역사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어렵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관심은 자리 잡기 어렵다. 지금의 20, 30대들은 이러한 교육정책의 결과물인 셈이다. 장기적으로 역사나 철학교육을 축소 약화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던 것이고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2. 경제적 이유
 IMF 외환위기이후의 취업문제와 생존문제

경제적 이유는 다른 이유들에 비하여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제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처럼 물질이 정신을 규정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과거의 대학생은 매우 적었다. 학생수도 지금보다 많았다. 100만 명이 졸업을 하면 30만 명만 대학에 진학하던 시대가 산업화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대학생들은 당시에는 고급인력이었기 때문에 졸업즉시 취업이 보장되었고 공부문제 보다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시절부터 대학숫자를 의도적으로 늘렸고 대졸자는 양산됐다. 때문에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라는 상징보다 다른 대학교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대학교는 취업인 양성소의 이미지로 전락했다.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적 문제도 영향이 컸다. 외환위기 이후 고급 인력들의 취업이 힘들어 졌다. 지구화라는 구호 아래 필요 이상의 스펙과 검증받은 어학능력 없이 취업은 어려워졌다. 김영춘 민주당 전 의원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3년 5월호>에 기고한 '보수정치 시대와 386세대의 시대정신'에서 386세대 국회의원들마저 보수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답습했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이 있다. 먹고사니즘에 빠진 학생들은 학점을 챙기고 홀로 살기에 바빠졌고 자연스레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은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사회적 이유
 6월 항쟁이후 우리 사회는 표면적으로 민주화가 되었다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진 것은 과거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회의 부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6 공화국이다. 우리는 선거의 5대 원칙을 지킬 수 있었고 휴지 쪼가리인줄 알던 헌법이 지켜진다고 생각했고, 시민사회의 성장과 노동자의 권익 향상 및 독재세력들이 조금씩 그 권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 이전의 비이성의 광기의 시대로부터 탈피했다. 이에 비해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북한은 경제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고 그 잔악성 또한 과거보다 심해졌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이제 살만해 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정도의 민주주의와 자유이면 괜찮다는 안도감과 나태함이 자랐다. 6 공화국을 개선하고 끝나지 않은 부조리들을 개선하는데 무심해진 자리에 다시 이전 세대의 부조리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를 억압하는 구조는 단기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생도 사람이다. 더 나은 혹은 옳은 뜻에 헌신하기 이전에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모두 함께 시위하고 함께 목표를 향해 헌신하자고 하기에는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대신 일상 속에서 알고는 있어야 한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아야한다. 일베가 왜 잘못된 것이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한다. 현 사회의 사건들에 눈을 감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한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목표를 위해 헌신하면서 무엇이 불의인지를 잊었다. 심지어 IMF이후 일부 운동권들도 2009년 성공회대 한국대학생연합 가입투표 부정과 같은, 목표를 위해 불의를 행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우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극복하고자 했던 불의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친구와 함께 대자를 작성했다. 비록 대자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여러 학우들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 대자를 써보자 기사를 쓴 기자는 친구와 함께 대자를 작성했다. 비록 대자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여러 학우들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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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 실천이 헌신적일 필요는 없다. 그 방식은 매우 사소한 것 이여도 괜찮다. 그 사소한 행동으로 누군가는 사회에 처음으로 의심을 해보고, 누군가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낀다. 이것만으로도 모든 실천은 그 크기와 무관하게 가치가 있다. 자신의 의사를 담은 대자를 게시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니엇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거대했다. 아무리 사소한 방법이더라도, '이것은 잘못됐다'라고 하거나, 일베하는 친구에게 그 행동이 불의임을 설명해주는 그런 사소한 시도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당장 안녕하십니까 대자를 직접 써보자. 읽는 것 과 쓰는 것은 그 무게감이 다를 테니 말이다.


태그:#대학생, #정치, #안녕하십니까, #사회,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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