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족의 대명절 추석. 감옥에도 추석의 기쁨은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2급 수감자로 대구구치소에서 살고 있는 내 친구는 1회에 약 10분인 면회가 한 달 동안 단 6번. 전화는 1회에 3분씩, 한 달에 최대 3번까지 할 수 있다. 한 달에 69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언제 어떤 명분으로 검열될지도 모르는 편지들을 제외하면 그와 외부의 접촉은 그게 다였다.

그 69분에 추석맞이 면회가 1회 추가! 나와 내 친구는 법무부로부터 10분의 시간을 추석 선물로 받은 셈이다. 하지만 오랜만의 만남으로 기뻐야 할 우리의 만남은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기각 결정으로 인한 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지난 5월 14일, 내 친구가 대구구치소에서 당해야만 했던 알몸 신체검사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침해가 아니'라며 외면했다. '별도의 구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기각'이라는 이름으로. 참담했다. 10분의 면회에서 몇 달 만에 만난 서로의 안부를 나누거나 얼굴을 살필 사이도 없이 나와 친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수감자의 인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논의하다가 그렇게 10분을 허무하게 면회실 유리벽 마이크 사이로 흘려보냈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알몸 강제하는 대구구치소

알몸 검신 관련 인권 침해 사실 조회 질의서에 대한 대구구치소의 답변 공문
 알몸 검신 관련 인권 침해 사실 조회 질의서에 대한 대구구치소의 답변 공문
ⓒ 지선

관련사진보기

대구구치소는 지난 5월 14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수감자 가족 만남의 날 행사(수감자 18명, 가족 등 외래인 49명 참석)를 3층 강당에서 실시했다. 이 행사에는 지난해 9월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되어 있는 내 친구도 참여했다.

가족 만남의 날 행사는 수감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평소의 면회실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평소의 10분이 아닌 약 한 시간 가량 만남을 갖는 시간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수용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휴대품 검사 등을 받아야 하며, 이날 행사에 참가한 수감자들은 가족들이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과 떠난 후 2차례나 신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신체검사에 대해 대구구치소는 다른 수감자가 신체검사 상황을 볼 수 없도록 유의하며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며 신속하게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의 조사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국가인권위 조사관에 따르면, 행사장인 강당에 150cm 밖에 안 되는 간이칸막이를 설치해 놨는데, 칸막이의 정면은 커튼 등의 다른 차단 시설이 전혀 없는 개방 형태였다. 그 이동식 칸막이 4개 안으로 각각 1명씩 수감자들을 배치하고 신체 검사를 명목으로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전부 벗도록 했다. 다른 교도관들은 물론이고 수용자들끼리도 서로의 알몸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7년 개정된 형의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제93조(신체검사 등) ②항 '수용자의 신체를 검사하는 경우에는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유의하여야 하며, 특히 신체를 면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으면 다른 수용자가 볼 수 없는 차단된 장소에서 하여야 한다'에도 어긋나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이러한 알몸 검신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더니 대구구치소 측에서는 '신체검사과정에 최대한 수치심을 주지 않도록 수용자의 인권보호에 유의하면서 신체검사를 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는 수용자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 친구가 당한 인권 침해를 보편적인 인권에서 개별적인 개인의 주장으로 그 의미를 왜곡 시켰다. 기사를 쓰는 지금 현재까지도 그날 있었던 인권 침해에 대한 사과는 없다.

한편, 지난 6월 8일 친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대구구치소의 알몸 검신으로 인한 인권 침해 진정을 제소함으로써 이날 있었던 알몸 검신을 친구의 어머니께서 뒤늦게 알게 됐다. 그 후로 어머니는 가족 만남의 날 행사에 참여한 것을 두고 두고 후회하셨다. 자식을 감옥에 보낸 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당하는 인권 침해를 지켜보는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워 어머니는 병원을 오가셨다.

이미 폐지되었어야 하는 알몸 신체검사

대구구치소 알몸 검신 관련 인권위 진정에 대한 결과 통지서 사진
 대구구치소 알몸 검신 관련 인권위 진정에 대한 결과 통지서 사진
ⓒ 지선

관련사진보기

구금시설 및 교정 시설에서 알몸 검신 논란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2008년 3월28일 법무부는 수용자에 대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교도소 및 구치소 등 교정 시설에서 지금까지 실시해오던 알몸 신체검사를 2008년 4월1일부터 완전히 폐지한다며 보도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그 이전까지 교정기관에서는 법무부 '계호근무준칙' 70조 "겨드랑이, 입속, 항문 등 부정물품을 은닉할 가능성이 있는 신체부위를 세밀하게 검사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의거, 항문 등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담배 등의 부정물품을 은닉하여 교정시설에 반입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칸막이 등을 설치하여 알몸 상태로 신체검사를 해왔다.

그러나 알몸 신체검사가 성적수치심을 유발하고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있다는 인권위원회의 지적과 언론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전국 교정시설의 수용자에 대한 알몸 신체검사를 폐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날 이후로 수감자는 속옷을 입고 가운을 착용한 상태에서 신체 검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것은 이번 국가인권위의 기각 결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9월 26일 진정 사건 처리결과 통지문에서 대구구치소가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간이 신체검사 공간에서 속옷을 탈의케하고 신체검사를 실시한 피진정인의 행위는 진정인에게 수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한 바,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되는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반전은 그 다음 결정에 있었다.

국가인권위는 대구구치소가 2012년 9월 17일 가족만남의 행사부터 기존의 강당이 아닌 교육실에서, 180cm의 새로운 칸막이로, 한 번에 2명의 수용자만 검사를 하며, 타 수용자들은 검사장 밖에서 대기토록 하는 등 피검사 수용자의 신체가 노출되지 않도록 시설 및 운영에 대한 개선조치를 실시한 바,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기각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칸막이로 인원은 줄인 채 '알몸 신체검사는 그대로 실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실행하겠다'는 대구구치소의 결정을 국가인권위가 나서서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확인 도장을 찍어준 셈이다. 동시에 이는 2008년 법무부의 알몸 검신 폐지를 이끌어냈던, 과잉신체검사로 인한 인권 침해 진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지난 권고를 뒤집은 것이나 다름없다.

2008년 당시 피진정인이 검사의 절차와 목적에 대한 설명 고지 및 신체검사의 착용 등의 신체 검사 절차를 무시한 채 진정인이 알몸으로 신체 검사를 받도록 한 것은 인권 침해라고 하여 권고를 내렸는데, 어째서 2012년에는 알몸 신체검사가 인권 침해가 아니게 되었는지. 검신을 반드시 해야 한다면, 굳이 알몸 신체검사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속옷과 가운을 입고 전자영상기기를 이용할 수도 있고, 다른 수감자와 교도관이 보이지 않게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수감자가 입었던 옷 등을 모두 벗어 교도관에게 주면 교도관이 검사하는 방법 등 검사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해당 기관이 인권 침해를 하지 않겠다는 노력과 의지에 있는데, 국가인권위와 대구구치소는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이 인권 침해임을 알면서도 인권 침해 상황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아주 쉽게 눈 감아 버린다. 당사자들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든 말든 개의치 않고 말이다.

5월 14일, 잊지 못할 악몽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처리 결과에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던 내 친구는 쓰라린 마음으로 감옥 안에서 펜을 들기로 결심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감옥 밖으로 알리고 싶다며. 참담하고 잔인한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분노하여 출소하면 인권위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고민을 덧붙이며.

글재주에 자신이 없고 친구 덕분에 알게 된 감옥 인권에는 더더욱 문외한인 나보다는 당사자인 친구가 글을 쓰는 편이 나을 거라며 나도 생각 없이 찬성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그를 면회실에서 만났다.

"글은 잘 돼가? "
"잘 못 쓰겠어. 쓰려고 하면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도저히. 네가 좀 써줄래?"

펜을 들면 5월 14일, 악몽이 떠오르는 것이다. 가족과 만났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된 수감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범죄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타인들의 시선 앞에 자신의 알몸을 내보여야만 했던 그 날 그 시간의 기억이.

대구구치소 면회가는 길 입구
 대구구치소 면회가는 길 입구
ⓒ 지선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과거의 기억보다 더 걱정되는 일은 오는 11일 참여하게 될 가족 만남의 날 행사에서 있을 신체 검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기각으로 난 판국에 대구구치소가 수감자들에게 이제는 더욱 더 당연하게 알몸 신체검사를 강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지켜보는 사람들도 무척 겁이 난다. 더 이상 친구가 이 일로 상처받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랐는데.

'알몸 검신'이라는 인권 침해 상황은 그대로 남겨진 채로 검사 시설과 방법만 달라졌을 뿐인데 어떻게 인권이 구제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국가인권위에 묻고 싶다.

2008년에 폐지한다고 한 알몸 검신이 왜 5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법무부에 묻고 싶다. 또 인권에 대한 이해 없이 수용자에 대한 권력기관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수용자의 '인권'이라고 생각하는지 대구구치소에 정말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태그:#알몸 검신, #알몸 신체검사, #국가인권위원회, #수감자 인권, #감옥 인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직은 부족해서 공부를 먆이 해야하지만, 앞으로 교육 관련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하여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학교 현장 및 교육 관련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묻혀서 소리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낍니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에 대하여 더이상 눈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시민기자를 지원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