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촬영장 옆 대나무숲_2 트위터 계정
ⓒ 트위터 캡처

<출판사 옆 대나무숲>, 줄여서 '출대숲'이라는 트위터 계정은 이미 유명하다. 연이어 생겨난 <IT회사 옆 대나무숲>, <촬영장 옆 대나무숲>, <신문사 옆 대나무숲>, <우골탑 옆 대나무숲> 등도  덩달아 인기다. 가히 우후죽순. 출판사 편집자인 나도 팔로잉하고 있는데, 분초 단위로 올라오는 트윗을 따라 가자면 눈이 팽팽 돌 지경이다.

어느 동료는 대나무숲 트윗이 흥하는 업종들은 대체적으로 소통문화가 없고 억압적인 곳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난 출판쪽에서만큼은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삼국유사>의 경문왕 설화에서부터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이야기까지, 큰 귀를 감추려는 왕의 권위 의식과 왕의 우스꽝스러운 귀를 목격한 모자 장인 또는 이발사의 말 못 할 '화병'은 출판계에 너무도 딱 들어맞는 비유가 아닐까 한다.

이미지 괴리 큰 출판사, 연월차도 없다

출판사에서 일 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출판사를 바라보는 이미지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 괴리가 너무 크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으레 진보적인 책을 출판하는 곳이면 그곳 사람들도 진보적이며, 소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출판사가 너무도 많다.

연차휴가는 일한 지 2년째에 15일부터 시작해 2년 마다 1일이 늘어나는 법정휴가다. 그런데 휴가를 10일만 주는 출판사도 있고, 심지어 5일만 주고 정 힘들면 말하고 쉬라는 곳도 있다. 어떤 곳은 구인공고에 버젓이 "연월차 : 없음"이라고 공지하기까지 했다.

또 어떤 곳은 노동자가 법정 연차를 달라고 하니, 사장님이 깜짝 놀라더라고 했다. 도대체 그게 왜 깜짝 놀랄 일인가? 물론 일부 몰지각한 출판사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닌 게 문제다. 모두 알만한 출판사이고 유명한 출판사의 일이다.

임금도 문제다. 연봉에 퇴직금이 수당처럼 포함되어 나오는 곳이 많다. 이는 사용자가 임의로 중간정산해 급여에 포함해서 주는 것과는 또 다르다. 입사할 때부터 퇴직금이란 것이 월급에 섞여 나온다는 것이다. 엄연히 불법이다. 시간 외 수당 역시 대부분 주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아예 포괄임금계약을 요구하는 출판사도 늘어나고 있다.

포괄임금이란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시간외근로 등에 대해 법정수당을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약정해 지급하는 임금제도를 말한다. 판례에 근거에 통용되는데 사실 출판사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은 포괄임금계약을 할 필요가 없다.

염전처럼 날씨에 따라 하루 노동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곳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전제로 하는 것이 포괄임금계약이다. 그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부나 밤낮을 전천후로 일하는 출판사에서 왜 포괄임금계약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야근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다. 계약서에는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주당 몇 시간 야근을 해야 하고, 주말에서 월 몇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야근 시간을 특정하지 못해 포괄임금 계약을 맺는데 거기에 야근 시간을 적시하는 건 또 뭔가? 이렇게 되면 법을 들이대는 것도 서글퍼진다.

고용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노동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용 관계의 안정이 아닐까. 일단 함부로 해고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문제를 느끼는 사람과 해결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생기기 어려운 곳이 많다. 몇 달 전에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 한 명이 사장실로 불려갔다. 회사가 어려우니 나가달라. 그걸로 끝이었다. 일주일이 못되어 그 편집자는 짐을 쌌다.

이 정도의 일은 얘깃거리도 아니다. 출판 구인 사이트를 보면 요즘은 온통 알바, 계약직을 구한다는 글뿐이다. '출대숲'에 누군가는 북에디터(출판계 정보 교류 사이트)의 구인 게시판이 알바천국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일은 지금 출판사에서 대부분 정규직이 해내고 있는 업무들이다. 결국 상시 비상시 업무 가릴 것 없이 출판노동이 전체적으로 비정규직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문화의 근간이라고 하지만, 근간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곪아가고 있다. 수당 없는 장시간 노동에 법정 휴가도 못 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포괄임금계약대로 회사에 묶여 있기만 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퇴직금 섞인 월급. 아, 너무 슬프다.

대나무 숲 연대,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나무 습지(자료사진)
ⓒ 4대강저지 범대위

자, 지금부터는 밝고 신선한 이야기를 해 보자. 근데 '대나무'는 왜 하나씩 자라지 않고 숲을 이루어 자랄까? 대나무는 땅 속에서 옆으로 땅속줄기를 뻗어나간다. 그리고 땅속줄기의 마디에 있는 눈에서 죽순이 올라온다. 우후죽순이란 비 온 뒤, 대숲의 땅을 이리저리 가로지르고 있는 땅속줄기에서 일제히 죽순이 올라오는 걸 말한다. 나는 '출대숲'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대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땅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출판노동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 바닥 진짜 좁아.' 그 좁은 바닥 소문이 신경 쓰여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기도 하지만, 반대로 출판노동자들이 서로 인맥이 넓게 짜여 있으니 오히려 조직화의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 이런 인맥이 강한 연대로 발전하리라 믿는다. 회사 옆에 대나무 숲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모두 한 그루의 대나무다. 이제 겨우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트위터라는 땅 속 줄기를 발견했을 뿐이다. 혼자 있으면 인파 속에서도 외롭지만, 그 사람들이 손을 잡으면 그 자리가 바로 아고라요, 광장이 된다.

옛 이야기 속의 모자 장수와 이발사는 대나무 숲에서 속병을 풀었지만, 출판노동자들은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출대숲'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노동 문제로서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잠깐 스트레스 해소야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출대숲'의 부정적인 면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출대숲' 만큼의 진전도 놀랍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술자리에서, 점심 먹고 난 후 동료들끼리 담배 한 개피 피는 자리에서 매번 지겹도록 나왔던 얘기들이 이렇게 트위터에서 크고 광범위하게 다시 '리바이벌'되고 있는데, 문제는 그 성질이 너무 다르더라는 것이다.

혼자서 하는 사장 욕은 투덜거림이지만, 둘이서 하면 문제적 대화가 된다. 그리고 몇천 명, 몇만 명이 하면 사회의 주요 현안이 되어 끝내는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시킨다. 물론 현실에서 무엇인가 바뀌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사용자와 교섭하며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모두 작은 투덜거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출대숲의 트위터리안들은 하루에도 마음결이 "죽순 모드"가 되었다가 "죽창 모드"가 되기도 한다. 대나무는 만들어 쓰기에 따라 활과 화살이 되어 나라를 지켜주고, 소쿠리가 되어 산나물을 담고, 피리가 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붓이 되어 문기(文氣)를 뿜으며, 당집의 혼대로 서서 무당의 영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이 불의할 때는 일제히 깎여서 죽창이 되었다. 지금 대숲에서 지저귀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도 자기 안에 대나무처럼 많은 쓰임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강변구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장 입니다.



태그:#출판, #출판사 옆 대나무숲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