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허락하디?"올초부터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듣고 또 들었던 질문이다. "미쳤구나"라는 친구들의 의아스런 반응보다 갑절쯤은 더 된 것 같다.
나의 결혼 준비는 또래 친구들의 두 배 정도는 바빴다. 결혼 일자와 창업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둬야 하는 날짜가 채 한 달도 차이가 나지 않았던 탓이다.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위해 분주히 이곳 저곳을 쫓아다니면서도 한편으론 회사 설립과 사무실 임대료에 머리를 싸매야 했다.
사무실 구하고 집기 들였더니... 창업자금 바닥결혼 전, 곧 10년 직장 생활을 그만 두고 창업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고백에 아내의 반응은 '쿨'했다. "40세가 될 때까지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이해해 달라"는 가혹한 요구에 군말을 달지 않았다. 조건은 붙었다. 40세 이후부터는 돈 많이 벌어오라는 것. 어떤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약속할게"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돌이켜보면, 높은 연봉 걷어차고 고생길로 들어서는 남편, 그것도 결혼하자마자 탄탄한 직장을 내팽개치는 신랑의 선택을 새 신부가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게다(그래선 난 여전히 아내를 "천사"라고 생각한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누구나가 고려하는 '직장의 안정성', '넉넉한 연봉'과는 워낙 거리가 먼 길이었기에.
아내의 이해를 얻고 시작한 창업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다. 이미 뜻을 함께 한 공동 창업자는 시드 자금(초기 펀딩)을 끌어오기로 했고, 난 신규 서비스 기획을 담당하며 채용을 준비했다. 약속했던 자금은 1~2년 매출을 올리지 않고도 운영이 가능할 만큼 작지 않은 규모였다. 초기 펀딩은 아내를 설득하고 안심시킨 가장 큰 밑천이었다.
하지만 곧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자금은 투자자 내부 사정으로 1/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당장 사무실 임대료와 집기 구입을 끝내면 여유 자금은 곧 바닥을 드러낼 상황. 예상 못한 조건에 창업 동료들은 적잖이 당황스러했다. 이미 회사는 굴러가고 있었고, 퇴사 절차도 마무리가 된 시점이었다. 돌이킬 여지는 없었다.
결혼한 지 1~2달밖에 되지 않은 아내를 안심 시킬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불안해 하진 않을까 염려도 됐다. 나조차도 설득이 안 되는데 아내까지... 결국 있는 그대로 사정을 털어놓고 또 한 번 이해를 구했다. 돌아온 반응은 역시나 '쿨'했다.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도 예상 못했어?"수천만원 들인 첫번째 생산물... 다 갈아엎고 다시 시작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내가 창업한 회사는 소셜네트워크(SNS)와 음악을 융합시킨 소셜음악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조직인 만큼 사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기능을 갖추는 건 필수. 특히 K-POP에 열광하는 해외 사용자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여서 세련되고 모던한 디자인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이자 핵심 가치였다.
하지만 최종 상품이랄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가 기대처럼 만족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공개조차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2~3개월의 시간과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인건비까지. 모두 허공으로 날려 버릴 위기였다. 그렇다고 서비스를 오픈하면 "이거 만들려고 그 돈 들여 수개월 고생했어?"라는 냉담한 반응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친구와 후배들을 찾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첫 서비스를 직접 보여주며 조언을 들었다. "공개하는 게 좋을까, 그냥 덮어버릴까" 묻고 또 물었다. 하나 같이 같은 답변이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태어나서 가장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이때서야 창업자란 예상하지 못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최선 혹은 차선의 선택을 강요받는 3D 직종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함께 결의한 동료들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가장 창조적인 결과물을 제작해 내야 하는 고난의 행군. 예상보다 더 많은 불확실성과 고군분투해 가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선택 고문'에 시달려야 하는 운명. 그것이 창업한 CEO에 주어진 업보구나 싶었다.
두 달이 지난 11월 14일 정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서비스를 곡절 끝에 세상에 선보였다. 설렘과 긴장, 두려움과 기대는 '거짓말 보태지 않고' 1초 단위로 교차했다. 관심도 받지 못하고 소멸해 가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그저 그런 류의 서비스로 잊혀져 가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십여 건의 논문과 수십 개의 국내외 서비스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기억 속에서조차 검색도 되지 않는 수학 관련 서적을 들추어가며 내놓은 서비스 아니던가. 언성을 높여가며 토론하고 싸워가며 만들어낸 결과물 아니던가.
"월급쟁이 못해 먹겠어"... 반발적 창업은 곤란합니다
창업 5개월째.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선배 창업자들의 조언들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몇 가지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직장 생활에 회의를 품고 창업에 몸을 던지는 '반발적 창업'을 준비중이라면 지금이라도 접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 안 받으려면 내 사업해야지"하는 식은 위험하다는 얘기. 창업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없는 자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여건을 내어주지 않는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열정, 그리고 웬만한 어퍼컷에도 쓰러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맷집과 인내 없이는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생존하는 기업이 성공한 기업이다'. IT 벤처업계에선 통용되는 진리다. 3년 이상의 긴 시간을 버텨낸 벤처기업은 그것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으며, 시장도 그 좁디좁은 빈틈을 허락했다는 의미다. 인내가 창업의 제1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업 시점에 "내가 처음이고 내가 최초야"라고 확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경쟁자는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이미 탄탄한 자본력과 아이디어로 중무장했을 확률이 높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창업의 전제 조건이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만큼 무엇을 잘할 수 없느냐를 깊이 캐물어야 한다. 단독 창업을 할 것이냐 공동 창업을 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이 이 고민에서부터 파생된다.
모든 재정적 압박과 서비스에 대한 철학, 조직 운영과 관리에 대한 모든 갈등을 혼자서 짊어질 수 있다는 건 창업 초기엔 너무나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잘 하는 부분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는 좋은 파트너와 함께 길을 가는 창업 방식을 우선 권한다.
창업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그럼에도 난 주변 지인들과 후배들에게 창업을 권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뜻 맞는 동료들과 함께 창조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창업이 주는 짜릿함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또한 사회를 혁신하고 전근대적 생태계를 진화시키는 동력이 창업에서부터 싹트기에 그렇다. 비합리적 구조가 존재하는 모든 영역이 창업자에겐 성공의 씨앗이다. 그 씨앗을 발견하고 정확한 시점, 정확한 공간에 물을 주고 퇴비를 뿌리는 법을 일찍 습득한다면 성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실패? 실패도 성공의 과정이다. 완전한 실패는 도전이라는 상상력을 잃어 버린 상태를 뜻하는 단어 아니던가. 빚더미에 올라 삶 전체가 파탄나는 결과는 일부 소수의 사례일 뿐. 과욕에만 올라타지 않는다면, 재기 불가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의외로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 성공의 문턱조차 가보진 못했다. 조언하기엔 창업 경력도 일천하다. 안착 단계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겨우 창업 6개월 됐으면서..."라는 욕을 먹더라도 난 창업의 매력을 감히 행복과 건강이라고 하며 떠들고 다닌다. 내 꿈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해야 하는 것만 잔뜩 하며 후회하고 눈감을 게 아니라, 실패라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한 번쯤은 맘껏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자.' 내가 창업이라는 모험을 감행케 한 동력이다.
아내는 요즘도 이렇게 얘기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도 40세까지야 알지? 그때까지는 필요하면 먹여살려 줄게."난 아내와도 공동 창업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