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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2010.07.08 목요일

수도리한옥마을에서의 아침-아침체조&아침밥-회룡포(UCC찍기)-점심과 휴식-뿅뿅다리 물놀이-

단체퍼포먼스-삼강주막마을-저녁장보기-정자아래 바베큐 파티-놀쟈놀쟈 마지막 밤

 

"꿕, 꿔~억!" 마당의 거대한 수탉소리에 잠을 깼다. 어쩐지 찌뿌둥한 몸이지만 바지런을 떨고 싶어져 일어나보니 아직 5시 반. 마을구경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야지. 옅은 새벽빛이 가시지 않은 조용한 한옥마을은 로맨틱할 것 같아 왠지 신이 났다.

 

밖으로 나오니 맨솔 같은 아침공기가 아주 시원하다. 먼저일어나 계시던 주인아저씨가 아침인사를 하며 둑길을 따라 걸어보라고 권하셨다. 들뜬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다양하고도 정갈한 신식한옥들이 지어져 있는 모습도 보이고, 강물 앞엔 그림 같은 외나무다리도 있었다.

 

풀이 점점 무성해 지는 길 끝까지 갔다가 아주 정정하신 할머니를 만났다. 위풍당당 부지런한 걸음을 멈춰서시더니 나에게 운동 나왔나며 말을 떼셨다. 대뜸,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레 오가는 대화가 참 좋다. 아침식전운동이 건강비결이라 일러주시는 할머니, 나이가 여든 셋이시라는데 정말 젊어 보이셨다. 허기가 졌지만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다리 한복판에 앉아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하나둘 마을 분들이 길에 나와 두런두런 정적을 깼다.

 

마을구경 잘했다고 인사를 건네면서 마을의 토박이인 한 아저씨께 4대강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물어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여기 사셨기에, 마을과 마을을 잇는 저 돌다리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지어졌고, 박가 집성촌이었던 마을에 김가네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 등등 마을의 역사를 줄줄 풀어내시던 분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짧고 간단했다.

 

수도리 마을엔 4대강 사업이 주는 피해는 딱히 없고 오히려 좋을 거라고. 이유를 물었지만 어쩐지 대화가 흐지부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시의 지정으로 전면 한옥마을로 개조되어 관광촌이 된 곳에선 정부가 벌이는 사업에 대해 꽤 호의적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 공동체'와 애틋한 운명을 함께 해온 것을 탓 할 수 있나. 하지만 왠지 아쉬웠다.

 

수몰예정지인 금강마을에 다녀온 이야기를 이어 꺼내니 금강마을 뿐 아니라 또 하나 수몰마을이 있다고도 일러주신다. 씁쓸하고 딱한 사정이야 누군들 짐작 못하랴. 하지만 이 소도시 안에서도 공감의 정서는 어쩐지 아득한 느낌이다. 민박집에 돌아가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오늘은 회룡포로~! 내성천이 마을을 둥글게 휘돌아나가는 모양이 참 신기하고 유난히 아름다운 그 곳으로 갔다. 거기서 우린 계획에는 없던 UCC를 찍게 되었다. 모래톱에 둘러앉아 잠깐의 회의를 한 결과 '찢택연'과 '여신윤아'가 나오는 대형워터파크 캐O비안 베이 광고를 패러디하기로 했다. '청춘남녀가 상호탐색을 거쳐 사랑을 이루게 되는 이곳은 스릴과 로맨스의 캐베!' 대충 이런 내용의 광고인데 낙동강 강수욕에도 로맨스가 있음을 우리가 알려 보기로 했다. 영훈오빠의 좋은 아이디어!

 

나는 다소 부담을 지고 낙동강 윤아가 되었다. 그러나 허세와 엽기를 가미하니 신나는 촬영이 되었다. '찢성우', '장지유리', '서쿤'이 수줍은 연기력을 불살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감독이 되었다.

 

순식간에 찍은 거지만 우리들의 표현욕구가 모래톱위에서 난장을 피운 시간이었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던 결과물이 기대되는 UCC. 편집을 맡은 혜윤언니의 몫도 클 듯 했다. '비싼 캐배, 붐비는 해수욕? NoNo, 이제는 강수욕이다!'라는 주제를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어필할 수 있다는 상상에 기분이 좋았다. 요즘 같은 여름, 각종 다채로운 휴양지가 넘쳐나지만 강으로의 착한 피서는 그 어떤 곳에 뒤지지 않는 로맨스를 선사할 거다.

 

어느새 한 시가 넘었기에 모두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명 뿅뿅다리라 불리는 곳으로 온 우리는 강변에 죽 늘어선 자두나무에서 자두를 따먹었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드디어 물놀이시간이 되었다. 수구, 물 속 릴레이 등 여러 물놀이를 고안해 한참을 즐겼다. 그리고는 벼르던 공동 프로젝트를 슬슬 시작하였다. '강은 흘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공동 작업은 처음부터 마음언니와 가람오빠가 맡아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다. 강변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조각배를 만들어 하나씩 띄워 보내자던 처음의 계획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하지만 낮은 수심에 반쯤 드러누워 빨리 떠내려가기 게임을 하다 힌트를 얻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하나 강에 띄워 보내기로 했다. 모두 일렬로 줄을 섰고 신성한 예식이라도 치르는 듯 진지함 속에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한 명씩 차례차례 물 속에 몸을 잠그고 우리는 함께 '강아 일체'를 체험하며 흘러갔다.

 

엉덩이를 강바닥에 살살 쓸리면서 물에 잠긴 귀로는 수중의 소리를 들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똑바로 빠르게 내려가려 하기보단 허리에 힘을 빼면 물살이 한결 가볍게 나를 이끌어 주었다. '그래 그냥 흐르는 대로 가는 거다' 몸을 맡기고 편안히 물에 잠겼다. 마음언니 말마딴 자궁에 몸을 맡긴 아기의 기분만큼 편안하고 푸근했다.

 

퍼포먼스로 낙동강 걷기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잠깐이나마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나 자신을 비워 힘을 빼고 타자와 어우러져 가는 것, 무에 그리 어려운가. 내 안에 이따금씩 몰려오는 조급함, 불안함은 나를 '살아남도록'추동하곤 하지만, 그런 딱딱한 에너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나다움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나답게, 그리고 자연을 자연답게 하는 것. 굴종 아닌 포용, 두려움 아닌 사랑의 관계 속에서 각 개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 그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멋진 퍼포먼스와 모두의 수고에 박수를!

 

늦은 저녁의 바비큐 파티에선 맴버들이 솜씨를 발휘해 맛있는 식사를 했다. 아쉬운 마지막 밤을 달래기 위해 각종 게임을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막으로 서로의 소감을 나눴다. 모두의 삶에 꾹 새겨진 시간이었음을 확인하며 참으로 감사했다. 후엔 추억이라 부를 수 있으리. 내겐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 성취로서가 아니라 꾸밈없이 자연과 사람과 동화되어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큰 시간이었다.

 

[마지막날]2010.07.09 금요일

아침밥 및 정리-감자팩-벽낙서-집으로

 

삼강주막마을의 팬션이 넓고 편했던 덕에 늦은 밤까지 놀다 잠이 들었지만 다들 컨디션이 좋았다. 어제 다 먹지 못한 고기들과 된장찌개가 아침메뉴였다. 베지테리안 동욱오빠만은 볶음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가는 길에 먹을 주먹밥을 만들고, 숙소를 정리한 뒤 모두 정자 대청마루에 누웠다.

 

그을린 피부에 좋은 감자팩을 얼굴에 하나씩 얹고 릴레이 시짓기를 했다. 마음언니가 첫 절의 띄우고 가람오빠, 혜윤언니가 이어 받았다. 영훈이 오빠가 준비해온 소형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손발로 박자도 맞췄다. 따스한 햇볕 아래 가지런히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살랑살랑 날린다.

 

마지막 날 답지 않은 여유 속에서 낙동강 기행을 마무리를 지어가던 우리는. 차를 타고 떠나기 직전 신나는 놀거리 하나를 발견했다. 숙소 앞 하얀 담장이 누구에게든 내어진 낙서 공간이었던 것이다.

 

한 귀퉁이에 쓰인 '낙서장'이란 글자를 보자마자 우리는 첫날 티셔츠 그림 작업을 하고 남은 섬유물감을 들고 담벼락에 달려들었다. 우리 팀의 태반이 미대생이지만 여기는 그저 낙서장일 뿐. 무작위로 그림을 그려댔다. 그곳에 '꿈틀'의 흔적을 선명하게 남기고 이젠 정말 떠나야 했다.

 

조용한 차안에서 3박4일의 기행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웃겨서 웃는 것과 어쩐지 애잔한 감정이 섞인 웃음이었다. 안녕, 행복한 낙동강의 꿈틀이들. 비록 끝이란 건 아쉽지만 앞으로의 소망을 외쳐본다. 개발환상과 자본의 시대 속에서도, 내 마음의 낙동강아 흘러 흘러라~!

 

덧붙이는 글 | 일기형식으로 쓰여 개인의 주관과 비표준적인 표현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태그:#낙동강 순례, #4대강 사업, #공정여행 꿈틀, #강은 흘러야 한다, #낙동강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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