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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안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사회에서 말로 안되면 어떻게 하나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에서 '말로 안되면'이라고 쳐보니 재미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말로 안되면 맞아야?', '말로 안되면 패야되', '말로 안되면 행동으로'와 같은 말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해 두 가지 약간은 다른 그러나 연결된 의견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이 표현이 전자제품과 관련해서 나왔다는 의견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전자제품을 '몇 번 두드려' 보거나 심한 표현으로 '몇 차례 때려주면' 다시 작동하게 되는 데서 이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나이든 세대라면 텔레비전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손바닥으로 몇 대 두드리면 화면이나 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즈음 같은 연결부분이 없이 집적회로가 주요한 부품으로 되기 이전의 텔레비전은 내부에 있는 여러 부품이 주로 소켓에 꽃혀 연결되거나 납땜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오래 사용하면 부품간 접촉이 불량한 경우 때려주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익숙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로 안되면 때려야'라는 표현의 의미가 사회적 타당성을 얻었지만 이 표현이 보편화 된 데는 사실 학교와 군대가 아니었나 싶다. 권위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때리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폭력적 군대 문화는 학교에까지 확산되면서 교실에서 많이 듣던 표현이 바로 '말로 안되면 맞아야지' 혹은 '한국 사람은 맞아야 제대로 해' 같은 표현들이었다. 교실에서 선생에 의한 폭력이 일상적이었던 그 시대에 이러한 말들을 안들어 본 중장년층이 별로 없을 것이다.

 

'맞아야 정신차리지'가 '얼차례'라는 순우리말로 널리 사용된 것이 군대였다. 소위 순화된 우리 말로 '얼(정신)'을 차례(준비자세)로 만드는 것으로 일본식 표현인 '기합'을 대치한 말이라지만 그것이 기합이든 얼차례이든 상관없이 '맞아야 정신차린다'는 말의 명확한 의미를 몸으로 체득하도록 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몇 대 맞으면 다 하게 된다'는 말이나 '까라면 까!'같은 원색적 표현이 상관이나 선임자의 입에서 터져 나올 때면 이 언어적 폭력 뒤에 이어질 '신체적 폭력'에 대비하여 저절로 이를 악물고 몸의 근육을 긴장하게 되곤 하였다. 하지만 폭력의 현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당장의 '얼차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질 선임들의 '야간집합'이나 '막사뒤 집합'이 더 살벌하고 무섭기에 어떻게든 모면할 수 없을까라고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말로 안되면 맞아야'나 '말로 안되면 패야되'는 단순히 사람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안되면 행동이나 무력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현대적 전자제품과 같이 산업사회적인 생활양식이 일상화되면서 또 권위주의적 사회제도가 사회 전반에 넓게 자리잡게 되면서 그 활용과 의미 맥락을 확대한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 소통이 안된다고 한다. 여기서 소통이라고 하는 것이 의사전달의 의미가 아니라 상호 이해가 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안통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사실 요즈음 말하고 있는 '소통이 안된다'고 하는 것의 기원은 소통이 안되는 것을 하소연하고 있는 민주시민들의 얘기가 아니라 '소통이 안된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검찰이나 경찰같은 공권력을 통해 소통을 하려는 정부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이 안되는 대신 정부는 '말로 안되면 맞아야'식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말로 안되면 맞아야'식의 국가폭력이 자행된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군화로 짓밟던 때에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검찰이 구속할 때에도, 용산에서 시민의 생명을 '강제철거'할 때에도 정부는 '말로 안되니' '패야'된다는 논리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사람이 옛날의 흑백텔레비전 같이 '몇 대 맞으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의 군대나 학교처럼 '얼차례'를 몇 차례 하면 '정신차리고' 시키는 대로 다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선풍기나 냉장고 같은 산업시대적 제품이 고장나면 부품을 갈아서 고친다. 하지만 휴대폰이나 컴퓨터처럼 정보시대 제품들은 기판을 통째로 새것으로 갈아준다. 그렇기에 시국선언을 통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몇 번 두드려서 정상으로 만들거나 혹은 한두 군데 땜질로 정상으로 만드는 산업시대적 수리가 아닌 것 같다. 기판을 통째로 새것으로 갈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진단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계적 비유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보다 부드럽고 인문학적인 표현으로 바꿔보자. '말로 안되면'에 대한 21세기 지식정보사회 버전은  '말로 안되면 마음으로 하라' '말로 안되면 느끼게 하라'이다.

 

국민과 '마음이 통하지 않거나'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하는' 이 정부에 대해서도 고장이 난 것으로 진단되면 몇 대 때리는 것 가지고는 힘들고 기판을 통째로 갈듯해야 하지 않을까?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가 바로 그럴 때이기는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통, #공권력, #의사소통, #지식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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