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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인터넷으로 케임브리지 행 버스 티켓을 끊고, 런던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를 탔다. 한적한 시골풍경을 지나치며 2시간 여를 달려 런던 북동쪽에 위치한 케임브리지(Cambridge)에 도착했다. 번화한 옥스퍼드보다는 상대적으로 조
용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과 더불어 영국의 명문대학 중 하나인 케임브리지 대학(Cambridge University)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대학 중 한 곳이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석학들을 배출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의 아이작 뉴턴, 진화론을 주창했던 찰스 로버트 다윈, 시인 존 밀턴과 바이런,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역사 수업시간이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도 케임브리지 대학의 강연에서 비롯되어 책이 나왔다고 한다. 이 같은 이유로 대학생으로서 역사깊은 학교의 매력에 이끌려 호기심 반, 설렌 마음 반으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

 

도시 전체에 걸쳐있는 수많은 대학(College)들로 이루어져 있는 케임브리지(Cambridge)는 하나의 대학도시이다. 로마 시대부터 시작되었고, 9세기 색슨 시대에는 '그랜트브리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Cambridge University)은 세 개의 여자 대학과 두 개의 대학원을 포함하여 모두 31개의 대학(College)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뛰어난 외관을 자랑하는 대학(College)들은 케임브리지의 중심인 캠 강(River Cam)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건너온 학자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케임브리지 대학(Cambridge University)은 1284년부터 세워지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서 무려 724년의 역사를 가진 대학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도시 곳곳에서 중세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버스에서 내려 지도를 들고 피츠윌리엄 박물관(Fitzwilliam Museum)을 찾아갔다. 1816년에 피츠윌리엄 자작이 자신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설립했다는 박물관이다. 고대 미술품과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등 볼거리가 많다고 들었지만, 내가 찾아간 날이 때마침 휴관일이었던 월요일이라 아쉽게도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박물관에서 길을 따라 쭉 걸으니 퀸스 칼리지(Queen's College)를 지나게 되었다. 1448년 헨리6세의 왕비인 마거릿에 의해 창설되고 에드워드 4세의 왕비인 엘리자베스가 완성시켜 이름 지어진 이 칼리지 뒤편으로 흐르는 캠 강에는 가로놓인 목조다리가 있다.

 

'수학의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1749년 뉴턴이 수학적 이론에 의해 설계한 다리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다리로 유명했으나 현재의 다리는 1902년에 재건된 것이고, 여러 번의 보수공사를 통해 못이 많이 박혀있다고 한다.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 골목골목을 누볐지만 결국 길을 찾지 못해서 실제로는 보지 못했다.

 

킹스 퍼레이드(King's Parade)를 따라 찾아간 곳은 칼리지(College) 중에서 특히 유명한 곳인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였다. 1441년 헨리6세가 설립한 단과 대학으로 대학 안에는 16세기 전반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예배당이 있는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오른 건물은 밖에서 보아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학문의 신성함에 대한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 정도였다.

 

넓은 광장으로 가니 조그마한 시장이 열려있었다.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였다. 1546년 헨리 8세가 창립한 대학으로 17세기 천재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의 역학을 완성시킨 곳이다. 찰스 황태자도 여기서 수학했다고 한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총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대단한 학교이다. 

 

이곳에도 부속 예배당이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2층에서 파이프오르간 레슨이 한창이었다. 잠시 쉬어갈 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배당에 울려퍼지는 웅장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접해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이처럼 선율이 아름다운지 처음 느꼈다. 

 

파이프오르간 하면 떠오르던 것이 드라큘라 영화와 같은 공포 영화였으니 오죽 했을까 싶어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음악소리가 너무 좋아서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결국 30여 분이나 멋진 연주를 감상하고 예배당을 나섰다.

 

음악을 듣고나니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중앙정원으로 나왔다. 칼리지 건물 안에는 제한구역이 많았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학업을 방해받을 수 있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인듯 했다. 그 중 개방된 입구가 있어 들어가보니 우측에 식당이 있었다.

 

교직원 식당인 듯한 그곳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커다란 홀 같았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교수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긴 식탁들이 이어져 있고 카페테리아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여기는 지어진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고풍스런 곳이었다. 불현듯 영화 <해리포터>에서 높다란 천장 사이에 촛불들이 둥둥 떠다니던

학생식당의 장면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학교 식당도 이 정도니 강의실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강의실도 구경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건물 내부는 관광객들이 출입할 수 없었다.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기서 생활하는 교직원이나 학생들에게는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한 점이 세심하게 와닿았다.

 

트리니티 칼리지를 나와서 세인트 존스 스트리트(St.John's Street)를 거쳐 브리지 스트리트(Bridge Street)로 향했다. 거리를 기웃거리며 걸어다녀보니 런던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대학도시라서 그런지 서점도 많고 학교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유난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일부는 시내 관광을 하려고 대여한 사람들이었고, 대다수는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이었다. 강의 말고도 많은 활동을 해야하는 학생들에겐 자전거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조그마한 마을을 걷다보니 캠 강이 보였다. 모들린 브리지에서 바라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펀팅(Punting)'이라 불리는 너벅선을 타고 캠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노가 긴 막대기로 되어있어 그걸로 강 바닥을 짚어 나아가는 배였다. 케임브리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노를 저어주기도 하고, 배를 빌린 사람이 직접 노를 저어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초보자에게는 결코 만만해보이지 않았다. 펀팅 또한 케임브리지 관광 명물 중 하나다.

 

캠 강을 건너 20분 여를 걸어가니 세인트 존스 칼리지(St.John's College)가 나왔다. 1511년에 설립한 곳으로 캠 강에 가로놓여 있는 '탄식의 다리'가 유명한 곳이다. 1831년 베네치아의 다리를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키친 브리지(Kitchen Bridge)에서 가장 잘 보인다. 하지만 여기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관광객이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규모가 큰 대학들과 캠 강의 강둑 사이의 초원대에 붙여진 이름인 더 백스(The Backs)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이름답게 대학들의 뒷모습을 볼 수있었다. 한가로이 펀팅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강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왔다. 트리니티 애비뉴 다리(Trinity Avenue Bridge)에서 캠 강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부리며 반나절 동안의 대학탐방을 정리했다.

 

 

케임브리지는 확실히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명문대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을까? 호기심에 여행을 갔던 나조차도 도서관에 들어가 공부하고 싶단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이곳은 엄청난 양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고, 세계의 저명학 학자와 교수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혜택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학생들을 유혹하는 술이나 놀거리 등도 그다지 많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괜히 세계의 명문대라는 호칭이 붙은 것이 아니었다. 

 

학교 앞 가게의 반 이상이 술집, 노래방, 당구장 등인 우리나라 대학가와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물론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학문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더 나아가 케임브리지 대학은 자신이 더 배우고, 알고자 하는 학문을 심화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환경을 제공해주고 뒷받침해주는 것이 이곳 대학의 역할인 것이다.

 

반면 한국의 대학들은 어떤가? 매년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강의와 나아지지 않는 학교 학습환경에도 불구하고 매년 높이 뛰는 등록금, 혜택이 적은 장학금제도. 게다가 자신들의 꿈을 펼쳐야할 대학생들은, 경기침체로 인해 늘어난 청년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1학년 때부터 치열하게 취업준비를 시작한다. 자기가 공부하고자 했던 학문은 결국 대기업에 취업을 위한 학점 따기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

 

이 모든 게 우리 대학과 학생들의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이럴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케임브리지에 가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학문에 대한 자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케임브리지 대학 못지 않는 우리의 대학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늘어 케임브리지와 같이 대학을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태그:#영국, #CAM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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