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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내가 다니고 있는 서울대에 '박정희 장학금'이 생긴다는 기사를 보았다.
 
서울대 공공리더십센터가 만드는 '리더스 펠로우십 프로그램(Leaders Fellowship program)'은 전직 대통령이나 유명인사 등 사회 각계의 리더들의 이름을 따 만드는 것으로,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이종욱 장학금'은 확정되었고, 고 박 대통령의 이름을 딴 '박정희 장학금'은 논의 중이라고 한다. '박정희 장학금'은 정수장학회 측에서 제안한 내용으로 학교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리더스 펠로우십에 선정되려면 해당 리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 리더에 대해 본받을 점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그 리더를 따라할 것인지 미래 계획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단다.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할 정도로 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큰 압박이다. 국립대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장학금이라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사립대학교에 비해서 상황이 낫다고는 하지만 서울대학교에 장학금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 커뮤니티 포털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에 달린 팽팽한 찬반 댓글들을 본 후,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학금'이라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 이름이든 장학금은 좋다" VS "돈 주고 면죄부 사는 것"

 

 

스누라이프 게시판에는 "누구 이름이든 장학금이면 좋다" 의견부터 "우리 학교에 이런 장학금이 있어도 되냐"는 의견까지 50여 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필명을 숨긴 한 학생은 "이상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당장 등록금과 생활비가 없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의견을 펼쳤다. "장학금이라면 학교와 학생들에게 좋은 것. 그래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만큼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대통령인데 무슨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반해 "개인적 차원을 넘어 대학교에서 이런 장학금을 제도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에게 해당 인물에 대한 다양한 연구 활동 과제가 주어지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었다.

 

한 학생은 "외부 장학금 받아보신 분은 알겠지만 장학금 받은 사람끼리 모여서 비싼 데서 밥 먹고 감사인사 드리고 뭐 이런 행사 하게 되는데 우리학교 학생들 모여서 '올해에도 박정희님께 감사하고 하지 않겠느냐"면서 "돈 주고 면죄부 살 수 있다는 생각이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박정희 장학금'에 대해 반대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장학금인데 누구 이름으로 주든 무슨 문제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정희 장학금'에 대해 다른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평소 가깝게 지내는 다른 학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와, 치욕이다ㅋ 애들이 그걸 그냥 두니?:; 굳이 학교에서 그런 장학금을 왜 만들어?'

 

학교 내 반응뿐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의 이런 대답까지 들으니,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김수빈씨(경제학과·04·가명)는 "박정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어 장단점을 구별할 능력이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면서 "논란이 심한 인물이라고 해서 그 장점을 찾을 기회마저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학생 한 명이 더 공부할 수 있는 것인데, 극단적 인물이 아닌 이상 장학금 설립 취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준수씨(경영학과·05·가명)는 "개인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므로 확실히 재조명이 된 후 장학금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인물을 본받자는 취지가 있는 장학금인데, 굳이 박정희를 선택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

 

이용규씨(통계학과·04·가명)는 "아직까지 평가가 많이 갈리는 인물이고, 박정희의 리더십이 이 시대 학생들이 배우기 적당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실질적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좋지만, 다른 좋은 리더들도 많다"고 말했다.

 

송기현씨(수리과학부·05·가명)는 "정수장학회의 설립에는 부일장학회의 강제 헌납 논란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의 재산을 가로채서 생색을 내는 것"이라며 장학금 설립에 반대했다.

 

그는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 이후 삼선 개헌, 유신 헌법을 관철시키는 등 문제가 많은 독재자였다, 요즘 학생들이 그에게서 배울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장학금을 지원받는 학생에게 해당 인물을 연구하는 과제가 주어진다는데, 수혜자가 박정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장학금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모두가 OK할 수 있는 리더여야"

  

찬반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박정희 장학금' 설립 여부가 확정되기까지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왜 굳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물을 선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있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를 탄압한 독재자 등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리더스 펠로우십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아래라면, 게다가 그 리더의 본받을 점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정도로 인물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리더여야 하지 않을까? '이종욱 장학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없는 것과 상당히 비교된다.

 

박정희뿐만 아니라 '리더스 펠로우십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리더'를 선정할 때마다 찬반 의견이 분분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리더 선정과정에서 꺼지지 않은 논란의 불씨가 장학금 수혜자에게 튀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장학금이란 본래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선정된 인물이 적합한지를 두고 왈가왈부하다가 시간이 지체되거나 본래 의도가 상실되는 일은 본래 의도와도 맞지 않는 일이다. 본래 의도는 사라지고, 장학금 명칭만 남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태그:#서울대, #장학금, #박정희, #박정희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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