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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6월 10일의 밤은, 대한민국 허리에 위치한 대전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대학생들을 ‘행동하는 지성’이라고 한다. 미국 쇠고기 수입과 대운하로 나라가 떠들썩한 지금 이 순간, 대전의 대학생들도 일어났다.

 

21년 전의 그날을 기억하는 직장인들도 함께 했고, 유관순 열사를 닮은 중고생들도 손을 맞잡았다. 대전지역 대학생 행동의 날, 이름하여 ‘액션데이’의 시작은 서대전 시민공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시철회, 전면재협상, 이명박은 물러나라, 대전 시민 함께해요"를 외치며 행진하는 대학생들의 행렬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풍경이었다. 서대전 시민공원을 출발한 대전의 대학생들은 대전역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있던 시민들과 만났다.

 

경찰 추산 2500명, 주최 측 추산 5000명의 시민들은 같은 목적 의식 아래 한 곳에 모였고, 87년 6월 항쟁은 2008년판 6월 항쟁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대전역에는 대전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뤄지고 있었다. 시민들의 자유발언으로 촛불집회는 더욱 뜨거워지고, 한마음으로 정권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를 높여갔다.

 

전에는 없던 국민 전체의 단체행동. 국민전체의 ‘액션데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의 정부가 오히려 대응이 없는 것이 의아한 지경이다.

 

시민들은 중앙로를 점거하고 충남도청을 향해 행진해 갔다. 그들을 막는 것은 전경뿐이었고, 그 길을 지나가야 하는 버스기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대전의 뜨거웠던 밤. 액션데이는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액션데이로 부활할 것이다. 영화 <홀리데이>의 한 대사처럼 '잘못된 것에 대해서 말할 자유'는 보장되어 있어야 하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끝까지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촛불집회, #대전, #대학생, #액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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