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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새터민 이윤주(22·가명)씨. 2002년에 한국에 와서 국적이 생기고,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이 사회에서 새롭게 태어났다고, 이제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문득 문득 다름을 실감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해외 봉사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이씨는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있기에 지원 자격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이다.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익숙한 이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당당히 중국에 가고 싶었지만 중국 측에서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보고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는 과연 어떻기에 외국 대사관에서 다 알아볼까.

새터민 피해사례, 작년부터 지금까지만 100여건

현재 9천여명의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는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에서 일률적으로 발급한 관계로  뒷자리 3개의 코드가 똑같다. 이러한 사항을 중국 대사관에서 알고 새터민들의 비자발급을 안 해주는 등 새터민들은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는 피해에 노출되어있다. 현재 9천여명의 새터민의 주민등록번호는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에서 일률적으로 발급한 관계로 뒷자리 3개의 코드가 똑같다. 이러한 사항을 중국 대사관에서 알고 새터민들의 비자발급을 안 해주는 등 새터민들은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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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들은 한국에 오면 한 달 정도의 조사기간을 거쳐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하나원에서 두 달 동안 교육과정을 마쳐야 사회에 나올 수 있다. 이 때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을 졸업하는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한 관계로 뒷자리 번호 3개의 숫자가 남자는 125****, 여자는 225****로 똑같다. 현재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새터민은 9천여명에 달한다.

이같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얼마 전 만난 연세대 3학년에 재학중인 김아무개씨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중국 하이난으로 가게 돼서 돈까지 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 혼자 못 가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작년에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중국에 두고 온 딸을 만나러 가지 못해 고민하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탈북 여성의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 사례들을 일일이 세자면 수도 없이 많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탈북자 동지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새터민들의 피해사례를 접수한 것만 해도 80여건, 언론에 소개된 기사 자료까지 합치면 100건이 훨씬 넘는다.

가장 많은 피해 사례로는 중국 비자발급, 해외여행 결격사유에 의한 취업의 불이익, 개인신상정보 노출에 의한 불안이다. 현재 주민등록번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새터민은 9천여명이며 특히 개인 신상정보 노출에 대한 불안은 새터민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자 통일부 하나원 측은 2007년 6월 새터민들의 주민등록번호를 하나원이 아닌 정착지를 거주지로 하여 발급함으로써 기존의 발급방식에 따른 문제점을 개선했다.

새터민들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정체성 헷갈린다"

하지만 새로운 주민등록번호 발급방식이 시행되기 전에 발급 받은 9천여 명의 새터민들(1997.1~2007.5)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숫자를 변경할 수 없는 것에 미루어 볼 때 현실적인 대책은 아니다. 이전에 온 9천여 명의 새터민들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어 있으며, 정부의 대책이 없는 한 이들의 불안은 자유를 찾아 온 대한민국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한 새터민은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를 통해 "주민등록 번호 때문에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늘 가슴을 조여 일상생활이 편치 못한 것부터가 심각한 피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을 제 2의 고향으로 받아들인 새터민들이 한국 사람으로도 살지 못하는 것 같다. 정체성을 상실해서 자신이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에 대한 갈등까지 생긴다"고 했다.

통일부에서는 지난 해 6월 이전까지 하나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취득한 9천여명에 대해선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번호를 갱신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바꿔주면 중국 측에서 전 한국민에게 비자 발급 시 호적등본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9천여 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이대로 두고 문제를 바라보기만 하겠다는 건 해결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이러한 정부의 무책임함과 무관심 속에서 새터민들의 사회적 불안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작년 5월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가 개최한 '새터민 1만 명 시대, 지난 7년과 앞으로의 7년' 토론회에서 사회복지사 90%가 "민관 탈북자 지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새터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우리 정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피해사례들에 수수방관한 태도는 많은 새터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9천여명의 새터민들의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히 신변문제가 아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심각한 사안이다. 더욱 깊어지는 새터민들의 불안과 피해를 정부 당국이 직접 나서서 막아야 한다. 새터민들의 주민등록번호 고정코드를 삭제하기 위한 정부 부처 간 통일적인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할 것이다.


태그:#새터민, #탈북자, #주민등록번호,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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