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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안츠생명 본사 앞 조회 투쟁 모습
 알리안츠생명 본사 앞 조회 투쟁 모습
ⓒ 알리안츠생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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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행사가 많아질 즈음인 지난 7일, 기자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알리안츠생명 본사 지하 주차장을 찾아갔다.

지난 1월 23일 시작된 알리안츠생명 노조의 파업은 이미 100여 일을 넘긴 상황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이 나부끼고 있었고, 지하 주차장 입구에는 결의를 다지는 포스터가 줄줄이 붙어 있었다. 지하 2층부터 6층까지 주차장 한구석에 비닐 막사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원은 대략 750여 명. 그 중 가정이 있는 몇몇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과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건데..."

김선희(33)씨는 4살 여자아이의 엄마다. 강릉에서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며 일을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주말 부부였다. 파업을 시작한 후 아이를 동생네 집에 맡겼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가 밤낮으로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해 지금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다행히 이해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요. 하지만 경기까지 일으키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 미안하고…."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던 김씨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가장 힘들 때는 아이에게 전화가 왔을 때에요. 엄마 보고 싶다고, 언제 오냐고 물어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5남매의 아버지인 부주영(47)씨는 파업이 시작된 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대구에 있는 집에 간다.

"큰 애가 고등학생이고, 막내가 7살이라 아이들이 많이 어린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아닌 아빠가 필요한 영역의 역할을 못해줘서 미안하죠. 그래도 지금 여기에 어린 아이들을 집에 두고 온 여성분들이 더 걱정이에요. 자식과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고, 시기마다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는데….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니까…. 모두 힘들게 싸우고 있는 만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네요."

시어머님께 다섯살 아이를 맡기고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영희(33)씨는 "가정을 떠나 힘들게 생활해보니 정말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라면서 "회사 다닐 때 힘든 점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 책 읽어주는 일 같은 것까지 정말 '일상'이 그리워요"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야기했다.

깊어만 가는 갈등의 골

알리안츠생명 본사 지하 주차장
 알리안츠생명 본사 지하 주차장
ⓒ 알리안츠생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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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안츠생명의 파업사태는 올 초 회사 쪽이 성과급제를 시행하면서 비롯됐다. 노조는 '회사가 노조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성과급제를 시행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사실상 구조조정을 단행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쪽에서는 '성과급제 도입이 이미 2005년에 합의된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이 악화된 것은 지난 3월 초 지점장들이 해고되면서부터다. 회사 측은 "회사와 노조 간에 맺은 단체 협약서에 따르면 지점장들은 노조원이 아니기에 파업이 성립되지 않아 15일 이상 근무지에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단 근무지 이탈로 해고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와 사용자·노동자 관계를 맺는 근로자들의 단결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상으로도 지점장들의 노조가입을 보장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이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인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가며,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동참인원 940명으로 시작해 현재 750여 명이 남아 있는 이번 사태는 지난 8일 밤 노조위원장과 해고된 지점장 한 명이 구속되면서 더욱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들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다. 때문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이 더 크고, 함께 해주지 못하는 이 현실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혼자만 생각한다면 몇 해 근무하고 말겠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고 가난하게 살지라도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식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다고 한다. 외국자본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고 싶다고도 했다.

"부인을 이해해주는 남편들 많았으면..."

세살 아이의 엄마인 전영희(37)씨는 집에 다녀오고 나서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자신을 찾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면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여자 동료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맞벌이에 더해 육아까지 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남편들이 많아요. 함께 양육할 때는 몰랐던 여자들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마치 여자들이 자신의 도리를 버리고 간 것처럼 말하죠. '가정'이라는 이름 하에 여자들의 사회활동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아직도 남자들의 사고방식이 많이 열려 있지는 않고, 이것이 남편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실제로 파업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빠지거나, 많은 사람이 지금도 힘들어하는 문제가 가정 내의 갈등이다. 남자 파업 참가자들 보다는 여자들이 부부 사이의 갈등으로 속앓이를 많이 한다고 했다. 남자가 아닌 '여자'라서 그들은 또 다른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알리안츠생명 파업 사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대규모 정규직 노조 파업'이라고 한다. 게다가 여기에는 대기업 임금체계 조정과 구조조정 문제 같은 올해 노사관계 현안들이 얽혀 있다. 때문에 이 사태는 '친기업'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노사문제에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전망이 가능해진다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파업에 참여 중인 이은숙(33)씨는 다음과 같이 안타까운 심정을 이야기했다.

"정부는 자본가의 편에 서지 말고 진실만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큰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적으로 파업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우리 때문에 몇백명의 경찰들이 백일 넘게 대치하고 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민생치안에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고, 기업들 또한 회사의 이익금을 독식하기보다 직원들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한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예요."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지금 '생존'과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의 창구를 넓히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들도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가정의 달'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태그:#알리안츠파업, #가정의달, #가족, #알리안츠생명,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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