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밭갈이하기에 좋을 만큼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소재한 선농단(사적 제436호)에서는 선농대제(先農大祭)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본행사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동대문구청에서 선농단까지 약 1.3Km 구간의 거리에서 주민과 자원봉사 학생 320여명이 함께 참여하는 어가행렬이 있었으며, 본행사인 선농대제는 11시부터 거행되었다.
선농제향(先農祭享)은 조선시대 역대 국왕이 풍농을 기원하며 매년 입춘(立春) 뒤 첫 해일(亥日)에 선농단에서 농업신으로 전해오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고 선농단(先農壇) 부근에 적전(籍田)을 설치하여 몸소 쟁기로 밭을 간 후에 행사에 참여한 백성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소를 잡아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는데, 그 국밥은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탕(先農湯)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
적전이란 국왕이 농사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농사짓기를 장려하는 뜻에서 몸소 밭갈이를 하는 토지로서 여기에서 생산된 곡물은 대개 제사용으로 쓰였다. 적전의 경영은 일찍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이와 비슷한 형태로서 입춘에 선농(先農), 입하에 중농(中農), 입추에 後農(후농)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왔으나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정상적으로 행해졌다.
적전에서의 의례는 먼저 국왕이 선농단에서 신농신과 후직신에게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내고, 제례가 끝나면 국왕이 몸소 밭갈이를 시범하는 친경의(親耕儀)가 행해졌다. 국왕이 중심이 되어 국가의 기본적 과업인 농정을 위한 의례였기 때문에 그 절차는 매우 엄격하고 장엄하였다. 적전이 설치된 것은 태조 때였지만 적전에서 처음으로 친경한 것은 성종 때(1475년)부터였다.
동대문구 지역에 사람들이 터를 잡은 것은 선사시대부터였고 농경은 곧 그때부터 행해졌다. 이 지역은 특히 자연조건이 양호하였다. 기후가 온화하였고 전농동, 답십리, 장안동 지역은 비교적 넓은 평야로 토지가 비옥하여 일찍부터 삶의 터전이 되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곡물은 매우 우량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농경의 시범단지가 되어 전국 각지 농토에 종자로 보급되기도 하였다.
선농제향과 친경(親耕)은 조선시대 마지막 황제인 순종 융희 3년(1909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중단되었다. 1979년부터 제기동의 뜻있는 마을 주민들이 조상들의 미풍을 되살리기 위해 선농단친목회를 만들어 1년에 한 번씩 이 단에서 제를 올리다가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를 중심으로 농림부와 동대문문화원, 선농제향보존위원회가 공동주관하면서 국가행사로 발전하여 매년 4월 곡우를 전후하여 선농단에서 선농대제를 재연하고 있다.
전폐례를 시작으로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례, 망요례까지 1시간이 넘도록 제례를 거행하는 동안에도 비가 계속 내렸지만 올해도 풍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례의식은 시종일관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