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워 옴을 알리고,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까워 옴을 알린다'는 진리를 내세우지 않아도 내가 사는 산골의 풍경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집 뒤로 보이는 용화산 설경이 말해주듯 모든 게 정지된 듯하지만, 눈 속에서도 푸름을 잊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이 정중동(靜中動)을 나타내며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농한기의 시골은 숨죽은 듯 조용하지만 그래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꿈틀거림을 자연이 말해주고 있음을 알고 카메라를 들고 집주변을 산책하며 신비로운 겨울 풍경들을 담아본다.
자연의 섭리에 맞게 겨울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사물들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려고 침묵 중에도 끊임없이 샘물을 길어 올리듯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지난 가을 이웃에 사시는 분이 어린 소나무 60그루를 주셔서 밭에 심어 놓았다. 어린 소나무가 겨울을 날 수 있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눈 속에서도 얼굴을 뾰족이 내밀며 '저,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죠'라고 말해주듯 예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게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어린 아이라면 겨울 동안은 따뜻한 실내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랄 텐데, 어린 소나무는 아무런 보호도 없이 겨울을 버티어낸 것이다. 겨울을 잘 이겨내며 자라는 소나무가 자식처럼 애틋하게 느껴져 눈 속을 헤집고 도닥거려준다. '너희들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기지개를 활짝 펴고 너희들 세상을 맞을 수 있을 거란다'라고 말을 건네본다.
우리 집 샘물을 통해 또 다른 강한 생명력을 느껴본다. 샘물이 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집 뒷동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인데 겨우내 마르지 않고 쉼 없이 흘러 내려온다. 파이프를 연결해 산에서 끌어내리는 샘물인데 수도를 잠가두지 않으면 얼지 않고 물이 흘러 겨울 동안 맑은 샘물을 마실 수 있으니 깊은 산속 옹달샘의 토끼가 부럽지 않다.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낮에도 난로의 불꽃이 사그라지는 일이 드물지만, 그래도 따뜻한 난로 곁에 머물기보다 살아 숨 쉬는 겨울을 느끼며 밖에 나가 자연을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힘찬 기운을 얻을 수 있고, 머지않아 오게 될 봄을 맞고자 기지개도 활짝 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