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각보다 연령대가 다양하네...

 

입 안엔 아직 채 씹지 못한 땅콩크림빵이 가득했다. 거칠게 우적거리며 냅다 뛰었다. 버스  출발시간은 오후 1시. 점심때였다. 시간이 촉박했으나, 초면에 연신 '꼬르륵' 소릴 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싶어, 억척스레 목구멍으로 빵을 밀어댔다.

 

숨을 헉헉대며 버스에 올라타니 자리는 벌써 꽤 차 있었다. 군데군데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분들도 앉아 계셨다. '생각보다 연령대가 다양하네. 언론사를 지망하는 대학생들 캠프인 줄 알았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서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이하 오기만)' 21기 멤버들이 첫 걸음을 내딛었다.

 

대충 훑어봐도 자리가 많지 않았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앉으려니 맨 뒷자리밖에 없었다. 풀썩, 가운데 앉으니 버스 안이 훤했다.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묘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한 데 어우러져 있었다. 순간 정적을 깨고, "가자마자 자기소개가 있을 거예요. 옆 사람도 함께 소개할 테니, 지금부터 서로를 '인터뷰'하세요"란 얘기가 들렸다. 이제야 옆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로 쭈뼛하게 시작된 대화는 어느덧 강화도 오마이스쿨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됐다. 대화가 있어, 한 시간 반 동안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얼른 짐을 풀라고 다그친다. 곧 손석희 교수가 올 예정이니, 서둘러야 한단다. 묵을 방만 확인한 채, 가방을 내던지고 곧바로 강당으로 향했다. 이윽고 오연호 대표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각자 소개합시다. 단, 시간이 없으니 짧게."

 

시간의 압박 속에 시계방향으로 마이크가 돌아갔다. 중반쯤 됐을까. 수강생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영향력 1위'라는 언론인 손석희 교수가 등장한 것. 이미 '자기소개'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기자가 되고픈 여러분, 삐딱한가요? 간절합니까?

 

"여기 기자분 혹시 있나요? 제가 기자를 안 좋아해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수시로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는 그다.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인터뷰 어떻게 하나'란 주제로 시작된 강의는 얼마 안 가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인터뷰의 종류는… 인터뷰의 자세는… 좋은 인터뷰란 등등. 과연 '인터뷰가 일상인 사람'이란 자기소개답게, 막힘 없이 이야기 했다. 어느덧 질문시간. 바쁜 스케줄에도 성실히 답변해준 손 교수는 언론인의 핵심 속성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삐딱한 거죠. (삐딱하게) 문제의식을 지녀야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잖아요."

 

수업이 끝났다. 도착이 늦은 탓에, 저녁식사도 늦었다. 밥알을 급히 삼키며 연신 꺽꺽댔다. 식판을 돌려주기 무섭게 다시 강당으로 향했다. 식사 후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기엔, 스케줄이 빡빡했다.

 

'나는 왜 기자가 되려 하는가?'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시작한 이번 강의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는 자리였다. 프로젝터가 반짝 빛나며 영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Grandma Moses'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이 중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 영상에 비친 그녀의 그림은 '아가처럼' 환했다. 장면이 넘어가며 그녀가 궁금해졌다. 순간, 시선이 고정됐다. 그것은 화면 속 한 구절 때문이었다. '70세의 선택이 그 후의 삶을 결정했다.' 환갑도 훨씬 지난 나이, 그녀는 '새 출발' 했다.


오연호 대표가 이어서 말했다. "간절함의 정도가 진심이라면, 도중에 어떤 길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기자의 모습이 화려함에서 비롯된다면 얼마 못 갈 거예요. 오늘 이 시간을 바닥을 확실히 다지는 계기로 삼읍시다." 나는 과연 기자를 꿈꿀 자격이 있을까, 그만큼 충분히 간절한가. 답은 쉬이 안 나오는데,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이제 본선은 시작됐다! 그런데 하늘이...

 

전 날 밤, 토론이 너무 길었나보다. 오전 7시 기상은 잔인했다. '수직낙하'하는 눈꺼풀을 겨우 올린 채, 터덜터덜 밥 먹으러 갔다. 공기가 좋아선지, 반찬이 맛난 건지, 잠이 덜 깼는데 밥은 쑥쑥 들어가기만 했다. '오늘이 본격적인 시작이야.' '똥꼬'에 힘 한 번 꽉 줬다. 어제 확인했던 스케줄 표는 오늘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죄다' 수업시간일 거라 경고했다. 커피 한 잔을 손에 쥐었다. 카페인의 힘을 한 번 믿어보련다.

 

오전 수업은 본격적인 기사쓰기를 위한 전초전이었다. 우선 '좋은 기사문장이란 어떻게 쓰는 것인지'에 대해 들었다. 오 대표는 "문장에도 서비스 정신이 있어요"라고 연신 강조했다. 대상에게는 냉정하면서도 독자에게는 친절한,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독자의 숨을 가쁘게 하지 않는 '간결미'가 있어야 한다고.


무엇보다 '테크닉 이전에 팩트'라는 말이 가슴에 안겼다. 기자는 요령이 아닌, 성실함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 짧은 말에 모두 담겨 있었다. 이윽고 이어진 현장취재론 시간에는 르포기사에 대해 간략히 다뤘다. 이제 전장에 나갈 탄환은 채워진 셈이었다. 몇 발을 명중시킬 것인가는 사수의 실력에 달린 게다. 그런데, 하늘이 연신 인상을 찡그렸다.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태세. 오후에 예정된 전등사 탐방과 운동회가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전등사를 갈 때까지 하늘은 울음을 참았다. 이대로 잘 가면 운동회도 할 수 있으리라. 기쁜 맘에 절을 오르는 발걸음은 연신 춤을 췄다. 전(前)시간에 배운 디카 활용법을 잊지 않고자, 학생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절반 정도 올랐을까? 잘 버틴 하늘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흐느낌은 어느새 '엉엉'하는 대성통곡으로 변했다. 건물 밑, 처마 밑에서 간신히 버티던 우리는 "이만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인솔자의 한 마디에 급히 뜀박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까지의 거리는 꽤나 멀었고, 땅바닥은 퍽이나 질척거렸다.

 

달콤했던 짧은 휴식 뒤, 기대했던 인터뷰 시간

 

"운동회는 취소됐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해주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오전의 스케줄만으로도 이미 몸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몸을 눕히자마자 침대가 사르르 녹았다.

 

띠링~♬

 

친구의 '왜 안 오냐'는 알람 문자가 아니었음, 세상사 다 잊고 하루를 넘길 뻔했다. 간신히 위기는 넘겼지만, 떼는 발걸음이 영 시원치 않았다. 잠든 사이에 누가 10kg짜리 모래주머니라도 매단 걸까.

 

오후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인터뷰 실습'이었다. 잠깐의 휴식 후 들었던 '인터뷰론'을 토대로 지정된 인물을 인터뷰 하는 것. 평소 관심 가는 분야기에 욕심이 났다. 아까 전등사 오를 때 이미 대화를 나눴던 조경국 기자를 인터뷰이로 잡았다.


의욕은 있었지만 여건이 안 됐다. 취재원은 한 명인데, 기자는 10명 남짓. 질문 하나를 던지려 해도 온갖 눈치를 봐야 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니 질문도 가지각색. 그의 일상생활부터 오마이뉴스의 논조까지. 질문은 사람 머릿수만큼 다양했다. 기대가 컸으니, 아쉬움도 컸다. 인터뷰 전보다 생각이 더 엉킨 듯했다.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 인터뷰, 기사로 쓸 수 있을까?

 

아, 이대로 놀다가 잠들었으면

 

 

빡센 수업은 시계도 빡세게 돌았다. 저녁 먹고 수업 몇 개 들으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됐다. 하지만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눈에 불 켜고 열심히 들었더니 수업이 끝나자 간식이 도착했다. 노릇노릇 군고구마. 한 입 베어 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아쉬운 맘 가득하니, 쉬이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강당을 나서 마당 한켠에 모락모락 핀 모닥불 근처에 모였다. 시린 손과 발을 쬐는 사이, 얘기가 더해지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막걸리 오늘 먹으면 안 될까요?"


학생들이 이구동성 외쳤다. 순간 오 대표는 당황한 듯했다. 원래는 캠프 기간 동안 금주인데… 하지만 민주주의란 애당초 '다수결의 원리'인 것을. 곧 막걸리 병과 술잔을 대신할 물컵이 쟁반에 들려왔다.


뽀얗게 찰랑거리는 방울방울에 얼굴들이 홍조를 띠었다. 그때서야 살아온 얘기, 앞으로의 꿈들이 입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몇몇은 그새 친해졌는지, 짓궂은 농을 치기도 했다. 환갑 넘은 어르신의 멋들어진 한 곡이 등장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박수가 커지면서 웃음도 커졌다.

 

'아, 이대로 놀다가 잠들었으면….'

 

그건 말 그대로 '바람'이었다. 내겐 아직 못 다 쓴 기사가 3개나 남았다. 의무는 아니라지만 어떻게든 완성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막걸리에 맥주까지. 몸은 이미 정상을 '한참' 벗어났지만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었다. 잠들면 안 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슬며시 벗어난 술자리, 하지만 그곳에 '동지'들은 여럿이었다. 다들 술기운에 얼굴이 벌개졌지만 타이핑 소리는 '타닥타닥' 그치지 않았다. 혼자 밤을 새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외롭지 않았다. 훈훈하다 느낀 건 비단 술기운만은 아녔다.

 

이젠 '안녕' 할 시간

 

기사 쓰느라 말 그대로 밤을 '꼴딱' 샜기에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눈에 선 빨간 실핏줄이 등산로 나무 뿌리마냥 도드라졌다. 마지막 수업은 그간 쓴 기사를 품평하는 시간이었다. 2박 3일간의 여정을 총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기사를 읽고 평가해줬다. 더러 괜찮다 싶은 기사는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끔 추천을 하기도 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갈까요?"


어느덧 마지막 식사시간이 왔다. 남은 수업이 없으니, 천천히 먹어도 될 듯했다. 따끈한 떡국 한 그릇을 시원하게 비워낸 뒤, 커피 한 잔 뽑아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간 바쁜 일정에 쫓겨 이제야 우리가 묵었던 오마이스쿨 전경을 제대로 보게 됐다. 폐교를 리모델링했다하기에 많이 기대했는데, 과연 그대로였다. 낡은 듯 편안했다. 된장같이 구수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첫 인사가 작별인사가 됐다.

 

"수강생 여러분은 1시 10분까지 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안녕~'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기자가 될 것인가

 

'위 사람은 상기교육을 성실히 이수하였으므로 본 증서를 드립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려 수료증을 받을 때마다 얼굴이 환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나 역시 가벼운 악수 뒤, 품에 안긴 수료증을 연신 펼쳐보며 기뻐했다. 30명의 수료생들 모두가 웃음 짓고 나서야, 수료식은 끝났다.

 

운동장은 떠나기 전 기념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처음으로 붐볐다. 떠날 채비에 짐 꾸러미는 양손에 한 가득이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운 듯 보였다. 날씨도 때맞춰 화창하게 개였다.

 

2월 말 어느 졸업식마냥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야 운동장이 잠잠해졌다. 이제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야 했다.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누군가는 눈을 붙이고, 누군가는 문자를 보냈다. 또 누군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각기 다른 모습마냥, 30명은 이제 다시 상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각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혹자는 이번 캠프를 통해 더욱 기자를 꿈꿀 것이고, 혹자는 '내 길이 아님'을 깨닫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이다.

 

그 어떤 결론을 내렸건, 진실로 마음이 움직이는 곳. 그곳이 바로 가야 할 곳이다. 서로 구하려 했던 질문은 같았지만, 이제 그 답변이 나뉘고 있다.

 

의자에 기대어 피곤함에 스르륵 눈이 감기려 할 때, 누군가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대, 간절히 기자를 꿈꾸는가.'


태그:#오연호, #기자만들기, #오마이스쿨,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