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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전 대추리 농협 창고앞 공터는 쓸쓸했다. 오전 10시께부터 20여 명의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이 설맞이 마을잔치를 위해 멍석을 깔고, 목청껏 윷놀이꾼들을 불러 모아도 사람들은 쉬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설날을 하루 앞둔 잔치는 응당 흥겨워야 했으나 흥의 끄트머리는 쳐져 있었다.

잔치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흥을 돋우곤 하던 노령의 주민들은 방안에 웅크려 좀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일 정부와 합의한 이주결정이 46가구 남은 이곳 주민들의 삶 속에 던져준 의미는 단순한 '이사'가 아닌, 자신들의 몸과 평생토록 혈관처럼 얽혀있던 땅과의 '이산'이다.

"어떻게 지켜온 건데, 어떻게 싸워온 건데, 여태껏 도와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할머니는 자신의 손을 이끄는 지킴이의 손을 끝내 뿌리쳤다.

야트막한 침묵이 농협창고 주변을 감싸고 있을 무렵, 집 떠난 주인에게 버려져 들개처럼 쏘다니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잔치를 위해 내놓은 돼지고기 덩어리를 물고 달아나다 지킴이들에게 들켜 타박을 들었다.

"내비둬, 저 놈도 먹고 살아야 하잖어!"

▲ 집 떠난 주인에게 버려져 들개처럼 쏘다니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잔치를 위해 내놓은 돼지고기 덩어리를 물고 달아나다 지킴이들에게 들켜 타박을 들었다.
ⓒ 손대선
이민강 할아버지(67)의 퉁바리를 시발점으로 윷이 뛰놀고 고기가 구워졌다. 명절이 마냥 즐거운 아이들은 '스카이씽씽'을 타고 주변을 맴돌았다. 금방이라도 진눈깨비가 흩날릴 듯한 하늘 아래에서 서넛이 짝을 이뤄 윷놀이를 시작했다. 막소주가 오가고 더불어 조촐한 판돈이 오갔다. 힘겨운 사람들의 얼굴은 서로 마주볼 때 위안을 준다. 그래서 웃음이 피어난다.

한 번 가속이 붙은 이들의 윷놀이는 도무지 끝날 줄 몰랐다. 미군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엔진을 가열하며 내지르는 굉음이 무시로 고막을 두드리지만 이들의 신명은 그것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그것은 지난 4년 여 동안 치러온 촛불문화제를 이끌어온 그 무엇처럼 느껴졌다.

방송기자 몇이 주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물색없이 '마지막 설날을 맞은 소회'를 묻다 고기 한 점 얻어먹지 못한 채 욕만 먹었다.

"니들이 언제 우리 얘기해서 제대로 보도해 준 적이 있어. 맨날 돈만 밝히는 노인네들로 매도하다가, 이제 뭘 또 물으려고 해."

송재국(70) 할아버지의 말에는 취기를 넘어선 뼈속에서 치솟는 한이 느껴졌다.

▲ 가창오리떼들이 마을 상공을 주유하듯 선회하다 붉게 물든 황새울 들녘을 향해 검은비처럼 쏟아졌다.
ⓒ 손대선
저녁놀이 질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들이 하늘을 덮었다. 마치 먹장구름처럼 보였다. 새들은 마을 상공을 주유하듯 선회하다 붉게 물든 황새울 들녘을 향해 검은비처럼 쏟아졌다.

"가창오리들이여. 이맘때면 날아오지. 왜 이렇게 많냐고? 예전엔 저리 많지는 않았어. 아, 지난 봄에 집집마다 50만원씩 내서 직파를 했잖어. 그게 철조망에 막혀 수확을 못하니 저 들판이 죄다 밥상이지. 철새들만 살판 난 셈이지. 그나저나 많이 먹어둬라. 저 놈들 내년에는 어쩌나..."

이상열(63) 도두리 이장은 새들의 포식을 질투하면서도 내년부터 계속될 미물들의 굶주림을 가엾어 했다. 그것은 애틋한 느낌을 주었다.

▲ 900회째를 맞는 촛불문화제가 설날을 하루 앞둔 대추 농협창고에서 열렸다.
ⓒ 손대선
이날 저녁 농협창고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는 정확히 900회째였다. 주민들은 900일 내내 논일로 다져진 손을 씻을 겨를도 없이, 저녁밥 몇 술만을 챙긴 채 행사장을 찾았다. 무너진 대추분교 앞 비닐하우스, 평택역 앞 광장, 평택지청 앞 대로, 안정3거리, 대추 농협창고, 그리고 평화예술동산…. 주민들이 그곳에서 밝힌 촛불의 숫자가 10만개는 될까. 그러나 주민들이 흘린 눈물방울 수는 가늠할 수가 없다. 다만 아무리 긁어내도 지워지지 않는 촛농자국이 농협창고바닥에 이들이 지난날 흘린 눈물을 증거 하듯 대신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새 촛불문화제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와 서울과 일본과 미국에서 이곳을 찾았다.

"손이 갈쿠리가 돼 일구어낸 곳입니다. 이 땅은 여러분 자신이었습니다. 이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지만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봄은 오고 평화도 찾아올 것입니다. 기어이 평화는 싹틀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으시길 호소합니다. 땅은 빼앗겨도 마음만은 빼앗기지 마십시오. 막아내지 못한데 대한 죄송한 말씀을 어떻게 드리겠습니까…"

낮부터 주민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빼앗길 들에 봄은 올 것이다"라고 낮게 말하자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주민들은 오는 3월31일까지 자신들의 정든 집과 농토를 정부에 내줘야 한다. 285만평에 이르는 이 광활한 땅에는 골프장을 포함한 미군의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선다.

▲ 대추리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이 한데 어울려 윷놀이를 즐겼다.
ⓒ 손대선
▲ 동네꼬마들은 잔치 와중에도 불장난을 하며 새해를 기약했다.
ⓒ 손대선
눈물을 뒤로 한 채 마을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꼬마들과 노인과 지킴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박수와 발장단이 호응했다. 비견할 데 없이 처연한 그 흥겨움은 설날 전날, 농협창고를 내내 불밝혔다.

지난 세월 동안 한여름의 모기와 한겨울의 추위, 또 그 사이에 낀 두 계절의 스산함을 견디며 이들이 촛불을 들고 싸운 대상은 국가일까, 아니면 그 너머에 웅크린 아메리카일까. 자신들을 보상에 눈먼 촌로들로 매도해, 기어이 외면의 철조망으로 둘러친 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들은 무엇을 요구했을까.

이태헌(63) 할아버지는 다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하루 대추리 주민, 평택지킴이 그 누구도 '마지막'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인매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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