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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한남대학교에서 열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특강에는 700여명의 학생 및 직원, 시민들이 몰렸다.
ⓒ 오마이뉴스장재완
"세계 일류를 향한 꿈과 도전!"

지난 7일 내가 다니는 한남대학교를 찾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강의 주제다. 이날 학교는 아침부터 술렁였다. 불우한 가정, 현대건설의 신화, 서울시장, 청계천 복원, 그리고 유력한 대권 후보. '인간 이명박'은 충분히 대학생의 관심을 끄는 '아이콘'이다.

"3시에 성지관(한남대 강당) 이명박이 온대." 우리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이 전 서울시장의 강연은 큰 화제였다.

친한 선배는 이 전 시장에서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내게 상의했다. 한 친구는 강연 시간과 수업시간이 겹쳤다며 둘 중 어느 것을 가야하나 고민했고, 또 다른 친구는 빨리 가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며 두 시간 일찍 강연회장으로 떠났다.

연예인과 같은 이명박의 인기

이명박 전 시장의 인기는 연예인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물론 이 전 시정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뻔하지 뭐, 표 몰이하러 오는 거지"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오후 3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강연회장인 성지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700여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와∼"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학교 축제 때 인기 가수가 노래 한 곡쯤 부르면 터질법한 큰 박수소리였다.

학교에 일반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도 잘 들르지 않는데, 이날은 그냥 정치인도 아니고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라니…. 많은 학생들은 이 전 시장의 강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나도 좋은 말이 나오면 받아 적으려고 수첩 위에 펜을 갖다 대고 있었다. '이 전 시장은 스물셋인 나에게 어떤 꿈과 희망을 심어줄까' 하는 잔뜩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이 전 시장은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부터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스스로 돈을 벌며 공부했던 야간 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가만히 듣고 보니 5개월 전 읽었던 이명박 전 시장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와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귀띔해주니, 정말로 이 전 시장은 내가 예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이야기를 했고, 마지막으로 대선 공약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청계천 복원을 성공적으로 해냈듯이 경부운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충청권 개발 청사진까지. 이 전 시장은 중부권이 개발돼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충청권 대학 강의여서 그랬는지 이 전 시장은 충청권 개발 이야기를 많이 끄집어냈다. 나는 솔직히 내 머릿속의 테이프가 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했는데, 지금 충청권 개발론은 뭐지?' 내 생각을 읽은 듯 이 전 시장이 자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저 사람은 행정수도를 반대했던 사람이니 충청권 개발을 반대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이 좁은 사람입니다."

'헉, 나? 내가 정말 생각이 좁은 사람이었나?' 나를 지목하고 말하는 듯해서 조금 뜨끔했다.

그리고 이 전 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후 나라가 잘살게 되었듯이 경부운하건설도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강단에 서 있는 이 전 시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차례로 떠올려 봤다. 외모는 조금 닮은 듯했다.

마지막은 우리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인 바로 일자리 문제. 이 전 시장은 우리에게 희망을 품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도시 개발 공약과 연결했다. 분명 실업 해소에 도움이 있다는 것.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7일 오후 대전 한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실시했다.
ⓒ 오마이뉴스장재완
나는 소망한다... '춤추는' 박근혜, '기타 치는' 김근태, '로맨티시스트' 이명박

강연이 끝났을 때 이 전 시장은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인간 이명박'은 분명 나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이다. 세상은 그가 살아온 이력에 '신화'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정말로 그가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그런데 나는 이 전 시장의 강연을 들으며 2% 부족한 허기를 느꼈다. 이 전 시장이 강연회 전반부에 말했던, 불우한 환경과 그것을 뚫어온 드라마틱한 삶. 아무리 인기 있는 드라마도 재방송까지 보면 물리는 법.

그런데 이명박 전 시장은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을 언제까지 재탕 삼탕할 것인가. 사실 7일 내가 들었던 강연은 이미 이 전 시장이 여러 대학 강연과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다. 그리고 지난겨울 서울시가 노숙자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시할 때, 그때도 이 전 시장은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을 이야기했다.

7일 강당에 모였던 700여명의 학생들은 좀 더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전 시장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로맨스'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불도저 이명박'에게서 여린 감성을 발견하고 싶었고, 그의 입을 통해서 경부운하만이 아닌 문화 콘텐츠 다양화 청사진을 엿보고 싶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은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동감한다.

차분한 육영수 여사의 분신 같은 박근혜, 민주화 투사 김근태, 행정의 달인 고건, 그리고 불도저 이명박…. 대권 후보들의 이미지는 언제나 조금은 딱딱하고 근엄하며 점잖게만 보인다.

'춤추는' 박근혜, '기타 치는' 김근태, '노래 잘하는' 고건, '로맨티시스트' 이명박. 대권 후보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서 조금은 독특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은 건, 23살 대학생인 나의 철없는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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