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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명칭이지만 줄여서 '조선'이라 부르기로 함)의 인권 문제를 놓고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무릇 인권이라 함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개념이건만 유독 한국에서는 조선의 인권 문제를 소리 높여 제기하면 '보수'로, 인권보다 화해 협력을 강조하면 '진보'로 불린다.

그동안 사회 문제에 침묵 내지 기득권에 동조하던 보수 교회가 최근 조선 인권을 놓고 기도회를 열고 대중 집회를 주도하는 등 각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진보 진영은 조선의 인권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나는 조선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보수·진보 진영의 운동 방식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보수에는 '희생없는 고함'만 가득하고 진보에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보수진영은 감옥 갈 각오로 시위대 급파하라

난 보수 진영의 문제 제기 자체는 옳다고 생각한다. 조선에 심각한 인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슈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틀렸다.

그들의 문제접근 방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도와 여론 공격'이다. 두 방법 모두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인권 문제도 입으로 해결된 경우는 없다. 세상에 횡행하는 불의에 아파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종교인의 의무다. 그러나 그 기도가 기도로만 그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론 공격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의 인권 문제는 조선 인민이 각성해서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할 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아무리 주변국 언론이 조선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떠들어도 당사자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운동의 기본 방향 역시 조선 인민이 스스로 자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서경석 목사가 주장하는 '풍선 띄우기' 역시 무모하고 비효율적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은 접해봤을 '삐라'만 생각해도 내 주장이 이해가 될 것이다. 간혹 삐라를 보면 우리는 어떻게 했던가?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하지 않고 보관하면 큰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했다. 조선의 상황은 두말할 것도 없다.

보수 교회에 제안한다. 조선의 인권을 그토록 소중히 생각한다면, 고통받는 조선 인민의 상황이 그토록 안타깝다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라고. 무엇을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진보 교회의 역사에서 배우라. 그들은 지금 당신이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감옥에 갇히고 목숨까지 던졌다. 당신도 조선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그렇게 하라.

대단위로 팀을 조직해서 중국으로 가라. 그리고는 대사관이나 언론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라.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강제 송환하지 말라고, 중국에 정착한 탈북자에게 거류증을 주라고, 국경 지역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를 철저히 단속하라고. 이런 시위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공안이 잡아갈 것이다. 옥살이를 할지도 모른다. 잡혀가면 다른 사람이 또 시위를 해라. 그렇게 100명이 희생하면 반드시 중국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 희생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권리는 없다.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조선의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를 도우라. 중국에 거대한 교회 세우려 하지 말고, 풍선 날리느라 귀한 돈 허비하지 말고, 대형집회 연다고 행사비 날리지 말고, 조용히 활동가를 도우라. 당신의 지갑을 열어 그들을 도우시라.

그것도 어렵다면, 한국에 와 있는 새터민을 도우라. 돈 주고 교회 오게 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라. 이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라. 교회에 새터민 이름을 올리는 일에 투자하는 관심을 조금만 돌려 이들이 새로운 땅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시라.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미국은 아무 희생 없이 말만하고 있다. 마치 조선의 모든 인권 문제를 해결할 당사자처럼. 미국이 정말 조선 인권에 관심이 많다면, 중국에서 고통당하는 탈북자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라.

북한인권법이 발효된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미국은 한 명의 조선 인민도 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을 난민으로 받으려면 희생이,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 조선을 냉철하게 보시라

진보 진영에 제안한다. 조선의 인권 문제를 냉철하게 보시라. 조선에 심각한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약간의 관심과 애정,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중국의 탈북자와 한국의 새터민을 조사한다면 조선의 인권 문제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진실을 압살하도록 만들지 마라.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했다면,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이라는 대전제에 어긋나지 않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연구하라. 통일이라는 대업을 위해 인권 문제는 뒷전으로 미룬다는 것은 진보답지 않은 변명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대의라도 한 사람의 인권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진보도 뭣도 아니다. 정치성에 함몰된 초라한 사상가의 모습을 벗어나라.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진보 진영의 관심사가 확립되어 있어 조선 인권 문제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면, 보수 진영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라.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돌리도록 조언하라. 그들의 과거에 눈이 가려 문제 제기 자체가 그르다고 말하지 마라.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인권은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문제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둬 마땅한 주제다. 난 희망한다. 진보와 보수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머리 맞대는 모습을.

덧붙이는 글 | 양정지건 기자는 기독교 대안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 기자입니다.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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