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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앞에서 한국 사람들은 자주 자기 나라에 대한 자랑을 한다. 아주 다양한 것에 대해서 자랑한다. 예를 들어 김치 종류가 많다, 한복이 아름답다 등등. 또 숫자가 들어가는 자랑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 역사는 5천년이다, 한국 반도체 생산은 세계 1위다, 한국 축구팀은 4강까지 갔다 등등….

하지만 한국을 자랑하면서 왜 귀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가? 이젠 한국 귀신에게도 박수를 보내자. 아마 세계에서 제일 무섭고 제일 끔찍한 귀신 중에서 한국 귀신이 1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미국 귀신 중에는 전혀 무섭지 않은 귀신부터 엄청나게 끔찍한 귀신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미국 고유의 귀신인 캐스퍼(Casper)의 경우 전혀 무섭지 않은 귀신이다. 캐스퍼는 '친절한 귀신'이라고 한다. 캐스퍼는 약하고 전혀 무섭지 않다. 늘 착한 행동만 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을 피한다. 캐스퍼는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다 도망갈 것 같아서 늘 고민에 빠져 있다.

캐스퍼는 초등학교 '바른 생활' 교과서를 읽어서 늘 모범생처럼 얌전하게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귀신이라면 이것은 바른 생활이 아니다. 만약 캐스퍼가 귀신 학교를 다닌다면 1등 모범생이 아니고 꼴찌일 것이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한국 귀신들한테 왕따 당할 것이다. 정말 귀신다운 귀신이 아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뺀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끔찍한 귀신에 관심을 가진다. 끔찍한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는 대개 두 종류다. 하나는 흉가(haunted house) 장르다.

이 장르는 내게 매우 실감나게 다가왔다. 특히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래된 집이 많았고 폐가도 몇 곳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피해자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더욱 더 무서웠다. 나는 형과 함께 호기심으로 자주 폐가에 출입했고 용기 있는 아이들은 담력 도전으로 밤에도 갔다. 공포 영화 출연자와 달리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대목이 많았다.

특히 어렸을 때 봤던 공포 영화 중에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의 주인공 제이슨이 떠오른다. <13일의 금요일>의 배경은 내가 살던 시골과 흡사했다. 극 중 제이슨은 우리 같은 죄없는 아이들을 쫓았다. 밤길에 혼자 다니다 제이슨이 나올까봐 집까지 달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지금 제이슨을 생각하면 (거의) 안 무섭지만….

또 하나의 장르는 젊은 연인들이 외딴 곳에 가서 귀신을 만나는 영화다. 이것도 시골 사람에게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배경이 주로 시골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미국 공포 영화에서 주는 교훈이라면 바로 모범생이 되라는 것이다. 무단 출입 안 하고 애인이랑 외딴 곳에 안 다니면 귀신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것은 정당한 처벌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비행 청소년이라도 이건 너무한다.

또 하나 미국에서는 30~40대가 되면 안전해진다. 귀신들이 제일 좋아하는 먹잇감이 주로 10~20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나이가 들수록 용기가 생겼다기보다는 그냥 귀신에게 당할 확률이 떨어졌기에 공포 영화를 좀 덜 무서워하는 것 같다.

미국 귀신이든 한국 귀신이든 귀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복수다. 하지만 복수를 추구하는 방법은 양국 귀신이 다르다.

미국 귀신들에게는 대부분 특별한 복수 대상자가 없다. 복수 대상자도 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다. 미국 귀신은 죽기 전에 안 좋은 일을 당해 (또는 살인을 당해서)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라 자기를 박해한 사람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그냥 즐겁게 사는 인간들만 보면 열 받아서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이에 비해 한국 귀신들은 미국 귀신처럼 여러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런 놀이를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한국 귀신들은 보통 소수의 몇 명만 원망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한 복수 외에는 아무런 소망도 없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

한국 귀신은 미국 귀신과 달리 복수가 재미있어서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고 진짜 누구를 원망하기에 복수를 위해 끝없이 모든 생각과 정력을 집중한다. 이렇게 대단한 집중력은 아마 입시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 같다. 미국 귀신들도 한을 풀고 싶어 하긴 하지만 한국 귀신처럼 명확한 목표는 없다.

▲ 영화 <가위> 포스터
미국 귀신과 한국 귀신이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미국 귀신들은 누구를 죽이거나 놀라게 하면 즐거워한다. 하지만 한국 귀신들은 복수를 끝냈는데도 별로 만족해 보이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미국 귀신보다 한국 귀신이 더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본 한국 공포 영화는 2000년도에 나온 <가위>였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내가 처음 본 한국 공포 영화라서 인상 깊었다. 한국 귀신을 처음 봤을 때는 미국 귀신보다 좀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소극적인 태도가 은근히 무서웠다. 어린 시절 잘못해서 아버지에게 야단맞을 때면 아버지가 큰 소리 치는 것보다 아무 말없이 날 가만히 쳐다보았을 때가 더 무서웠는데 이 경우가 그렇다.

내가 TV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전통 소복을 입은 귀신을 본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이 소복을 입은 귀신의 모습은 미국 귀신과 아주 다르다. 긴 생머리 밑에 그 핏기 없는 안색과 짙는 입술이 아주 무섭다. 인간 모습을 아직 덜 벗어났기 때문에 더욱 더 끔찍하다.

또 한국 귀신의 차가운 목소리와 느릿한 몸짓도 무지 무섭다. 한국 귀신의 이런 행동에 비하면 미국 귀신들은 진짜 귀신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정신이상자같다. 미국 귀신에 비해서 한국 귀신은 조용하고 표현력이 부족하지만 폭력적인 귀신보다 이런 귀신이 더 소름끼친다.

행여 내가 미국 귀신을 만나도 무섭겠지만 한국 귀신을 만나면 더 무서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보는 순간만 아니고 나중에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면 그것이 좋은 공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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