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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4일 충남 보성초등학교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일부 언론이 전교조에 걸려던 시비가 애초 번짓수가 달랐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난 달 25일 서울 M초등학교에서는 교장, 교감을 비롯한 10여명의 교사와 학부모 20여명이 학교 근처 음식점에서 회식을 가졌다. 이 학교 아람단, 해양 소년단 관계 교사와 학부모들이 모였던 자리가 끝난 후 이 학교 고 아무개 교감이 머리에 10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고 교감은 다음 날 천안 집으로 향하던 중 마비 증세가 심해져 천안 단국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뇌 경색증' 판명을 받고 현재까지 입원중이다.

▲ M초등학교 고 교감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 복도. 고 교감측은 2일 오전까지 3곳의 매체만 인터뷰를 하다가 이후엔 건강이 악화돼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 곽민욱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김 아무개 교사가 술에 취해 고 교감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넘어져 머리를 다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교사가 구타를 했는지 밀었는지 여부는 양쪽의 진술과 목격자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지만, 김 교사가 2일 밤 고 교감을 찾아가 용서를 구해 가족들이 김 교사를 고소하는 단계까지 접어들었던 상황이 누그러들고 있다.

하지만 학교 교사들과 고 교감측이 밝힌 것과 달리, 언론은 이 사건을 보성초 사건 이후 불거진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전교조'라는 단어가 기사마다 따라다녔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거나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어 사건의 요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교조가 현안으로 교육부에 제기하고 있는 'NEIS'가 갈등의 요인으로 제기됐다.

전교조가 NEIS 문제로 사고쳤다?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은 2일자 신문을 통해 일제히 '전교조 교사가 NEIS로 갈등을 빚은 끝에 교감을 폭행했다'는 투로 전교조를 다시 몰아세웠다. 언론이 이 사건을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 관계로 몰아세우자 교단은 다시 긴장에 떨어야 했다.

중앙일보는 '전교조 교사, 교감 폭행 파문'이라는 큰 제목 아래 '교사들 NEIS 말다툼 말리자 때려 중상'이라고 작은 제목을 넣어 사회면 머릿기사로 올렸다. 중앙일보는 기사 첫머리부터 "NEIS 운영을 둘러싸고 전교조 교사와 교감 사이에 폭행사태가 빚어졌다"고 단정지었다.

그리고 나서 '지난 25일 서울 M초등학교 김 아무개 교사가 오 아무개 교사와 화장실에서 NEIS 문제로 화장실에서 설전을 벌이던 것을 이 학교 고 아무개 교감이 말리자 그 자리에서 고 교감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쓰고 있던 안경을 깨뜨리고 얼굴 등을 10바늘이나 꿰매야 할 정도의 중상을 입혔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 매체와는 '상처 부위'나 '사건 발생 장소' '부상 경위'조차 다르다.

동아일보는 아예 기사 첫머리에 보성초 사태를 끌어들여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을 전제로 사건을 서술해나갔다. '전교조 교사, 교감 폭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된 이 기사는 고 교감과 김 교사가 다투던 도중 부상을 당했으며 이 학교 교장의 말을 인용해 '고 교감이 NEIS 문제로 김 교사와 오 교사가 다투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사건 발단 경위를 단정 짓듯이 작성됐다.

이보다 앞서 1일 오후 6시 20분 경 동아일보 인터넷판에 오른 기사에서는 "고 교감이 김 교사에게 턱을 맞아 쓰러졌다"고 했으며 NEIS 시행 싸고 회식 자리에서 설전을 벌였다고 기사 제목을 뽑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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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된 2일 서울 M초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 부장교사인 김 아무개 교사는 "'신문이 이렇게 완전히 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라고 느꼈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 교사와 병원에 있는 고 교감은 97년부터 알고 지내며 '형님, 동생'하는 절친한 사이며 다퉜다는 오 교사도 김 교사와는 동갑인 친구"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M초등학교에서는 전교조 교사뿐 아니라 비전교조 교사도 NEIS 인증을 한 명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마침 오 교사가 교무실에 들어섰다. 오 교사는 "기가 막힐 뿐"이라며 "같은 전교조 조합원이자 친구인데 NEIS 문제로 왜 싸우겠느냐"고 반문했다. 오 교사는 "2월 중순에 고 교감과 전근간 교장을 비롯 모든 교직원이 모여 NEIS 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가졌으며, 토론회 결과 NEIS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돼 상황을 주시하며 일단 기다려보기로 교사들이 합의해 다른 학교에 비해 오히려 NEIS 문제로 갈등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오 교사는 "김 교사가 술에 취해 우리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진 것을 왜 그 동안 얘기 안 했냐고 따지고 있을 때 교감 선생님이 들어왔으며 '친구끼리 왜 싸우느냐'며 타일렀다"며 "이후 술에 많이 취해 있던 김 교사가 뿌리치자 교감 선생님도 술을 드신 상황에서 서로 붙잡고 밀치는 걸 내가 말려 둘을 화장실에서 내보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교사들은 "김 교사가 평소에는 얌전하고 성격도 좋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좀 고약한 버릇이 있다" "전교조 교사들이나 아닌 사람들이나 편을 가르는 분위기는 학교에서 없으며 성격이 원만하고 자상한 교감 선생님에 대한 교사들의 신망이 높았다" "교감과 김 교사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절친한 사이"라고 말을 보탰다.

"NEIS 갈등, 회식자리 다툼 없었다"

한편 회식에 참가했던 학부모들이 교육청의 감사 관계로 학교측의 요청에 따라 학교를 방문했다. 6∼7명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학부모에게 다가가 당시 회식 자리 분위기를 물었다.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회식 분위기는 좋았으며, 회식 내내 선생님들 사이에선 사소한 말다툼도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학교 현관에서 만난 이 학교 행정실장은 "교사끼리 회식 후에 술에 취해 사고가 난 건데 이런 사건이 신문에 대서특필될 사안인가"라며 되물었다. 행정실장은 "보성초 사건하고 아무 관련도 없고, 굳이 '전교조 교사'라고 할 이유도 없는데 왜 언론이 그렇게 몰아가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초기에 교육청에 사건을 보고하고 5월 1일 고 교감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 학교 이 아무개 교장을 만났다. 이 교장은 5월 1일 교무부장, 행정실장과 함께 천안 단국대 병원을 찾아 이야기 들은 내용을 당일 교육청에 가서 보고했으며 기자들에게 설명한 바 있다.

이 교장은 "고 교감하고 김 교사하고 NEIS문제로 다툰 것이 아니라 '김 교사와 오 교사가 NEIS 문제로 화장실에서 얘기하는 걸 말렸다'는 교감의 말을 전했는데 교단에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것으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오 교사와 김 교사가 NEIS를 얘기했는지, 김 교사가 고 교감을 밀쳤는지 구타했는지는 얘기가 달라 진상을 조사해 판단할 문제라고 했는데 기정사실화 돼버렸다"며 "한겨레만 빼고 기자들이 내가 말한 사실과 다르게 자기 입맛에 맞게 다 뜯어고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M초교 교사들 정정보도 요구

한편, 대책회의를 마친 교사들은 교장까지 확인을 거쳐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인터넷 독립신문, YTN을 상대로 △전교조라는 특정 단체와 이 사건을 연관지어 보도한 점 △NEIS 문제, 구타 여부 등 진술이 서로 달라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단정해 보도한 점 △회식자리에서 일체 언쟁이 없었고, 얼굴 폭행이 아닌 넘어져 머리가 다쳤음에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해 보도한 점 등을 지적해 정정보도를 요구하기로 했다.

6시 30분경 이 학교 교감(M초등교는 교감이 2명)과 가해자로 지목된 김 교사를 포함해 5명의 교사가 고 교감이 입원 중인 천안 단국대 병원으로 향했다.

김 교사는 고 교감이 천안 단국대 병원에 입원한 이후 2번 병원을 찾았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고 교감을 만나지 못하다가 이날 처음 고 교감을 만났다. 김 교사는 고 교감에게 용서를 구했으며, 고 교감은 오히려 김 교사의 심적 고통을 위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일 밤 고 교감의 병실을 방문했다가 취재를 거절 당한 후 기자는 이튿날 아침 다시 병실을 찾아 어렵게 인터뷰를 했다.

고 교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눈만 마주쳤으며 고 교감의 옆에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고 군(24세)은 모 대학 휴학생으로서 계속 고 교감 곁에서 간호를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아버지 대신 응답해 왔다고 했다. 고 군은 "뇌경색 증세를 보여 말씀하시기 힘들다"며 고 교감이 옆에 있는 가운데 그 동안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설명했다.

고 군은 "언론이 전교조, 비전교조 문제로 사건을 확대했으며 NEIS문제도 확실치 않은데 서둘러 보도했다"며 "언론 보도 내용은 가족들로서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고 군은 이전부터 기자들을 상대해왔기 때문인지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인터뷰 도중 천안 경찰서 수사관이 가족들의 고소와 관련해 진술 조서를 받으러 병실을 찾았다. 경찰서 수사관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부축을 받아 일어서는 고 교감에게 "학교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로 문제가 발생했었나요?"라고 묻자 고 교감은 "아니"라고 짧고 분명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아니면 말고'

이야기가 끝난 후 고 군은 "병원을 찾아온 기자들 중 가장 자세하고 길게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고 군에 따르면 2일에는 오전에 SBS와 조선일보만 병실로 들어와 직접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인터넷 독립신문은 5월 1일 교장단 협의회 대표들과 함께 병실을 방문해 취재했다고 이후 전화 통화에서 밝혔다.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중앙일보와 인터넷 독립신문 해당기자는 학교를 방문해 교사들로부터 의견을 듣지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3일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몇몇 언론들은 이 사건을 거의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극명하게 대조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결국 이 사건은 한 차례 '소동'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끝날지 모를 일이다. 교사들이 정식으로 정정보도를 요구한 가운데, 일부 언론의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식 보도 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볼 일이다.

"전교조·비전교조가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냐?"
천안 병원 방문 고 교감 측 '직접인터뷰'

- 어제 김 교사가 병실을 방문해 고 교감을 만났던 것으로 전해들었다.
= 많이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버님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가족 입장으로선 사과했더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연배가 한참 높으신 분을 술을 먹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파장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 언론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어제도 기자가 몇 십명 왔다 갔는데 똑같이 말씀 드렸다. 학교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가족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은 안경이 손상되고 쓰러져서 다치게 됐다는 점이다. 아버지께선 맞아서 쓰러졌는지 밀쳐서 쓰러졌는지 기억을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이 크다.

-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좀더 말해달라.
= 많이 불리는 부분이 있다. 자꾸 비전교조, 전교조로 확대를 시키는데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전교조 비전교조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말다툼하던 걸 중재하려다 발생한 사건이다.

- 언론에서 김 교사와 오 교사와 NEIS 문제로 다퉜다는데.
= 학교문제, 인사문제로 두 교사가 이야기했던 것 같다고 하신다. NEIS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도 NEIS 문제라고 정확히 이야기하고 계시진 않다. 언론에서 불린 부분이다. 다시 말씀 드리면 그것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 김 교사를 고소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 아버님은 평소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에 열심하셨을 뿐이다. 평소 집에 오셔서 전교조 얘기하는 적도 별로 없었고 전교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고소하게 된 건 처음에 머리를 다쳐 이대 목동병원으로 옮겼는데 좀더 적극적으로 조치를 하지 않았고 넘어뜨렸다고 하지 않았던 점이다. 또 아무리 술자리라도 예의가 어긋난 행동 자체는 용납이 안 된다. 일단 아버지 건강에 신경쓰겠다. 얼마든지 고소를 취하할 가능성도 있다. 가족들은 보상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우리 가족도 전교조 비전교조 신경 안쓴다.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 드린 적 없다. / 곽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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