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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전반 일을 끝내고 2시 넘어 집에 들어 왔다. 요즈음 중학교 일 학년인 아들녀석이 시험기간이라 일찍 집에 온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마루에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응, 시험 잘
봤냐?" 하니까 픽 웃으며 방에 들어가 하던 게임을 계속 한다.

한 시간쯤 지났다. 컴퓨터에 앞에 앉아 쉬지 않고 자판기를 두드리면서 혼자 떠들며 "아이씨..." 하면서 정신이 없다. 아마 게임이 자기 뜻대로 되질 않는 모양이다.
"무슨 게임이냐."
"디아블로요."
"조금만 해라"했더니 알았다고 대답을 한다.

두 시간쯤 지났다. 성질 같아서는 '컴퓨터 꺼! 요즈음 시험기간이라면서 공부는 안 하냐'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참고 책을 보기로 했다.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아들녀석이 뭔가 느끼겠지 하면서.
컴퓨터가 잘 보이는 부엌 걸상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아들녀석은 여전히 게임에 푹 빠져 있다. "험. 음. 음." 아들녀석 뒤돌아보라고 헛기침을 했다. '야, 임마 아빠 책 보는 거 안 보이냐?' 생각하면서.

책을 보고 싶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아들녀석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보는 것이라 무지하게 힘이 든다. 책을 본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그 동안 나는 지겨워서 화장실은 세 번이나 갔다 왔다. 그런데 이 녀석은 한 번도 안 간다. 이젠 엉덩이도 아프다. 책에 푹 빠지려고 해도 눈은 책을 보면서 귀는 아들녀석에 열려 있다. 그러니 책 속에 빠지질 않는다.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했다. "험! 흠. 흠." 아까 보다는 더 크게 했는데도 보지도 않는다. 다시 한 번 아들녀석이 보기를 바라면서 헛기침을 했다. "험! 음! 음!" 했더니 "아빠. 감기 걸렸어요? 그러면 약 사먹어요" 한다. 우와 돌겠다. 아들녀석이 벌떡 일어난다. 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더니 게임을 계속한다. 더 이상 이 짓거리는 못 하겠다. 내가 책을 보고 있어도 아들녀석이 느끼는 게 없나 보다 싶어 소파에 누워 텔리비전을 켰다.

텔리비전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시끄러운 텔리비전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7시가 되었다. 아이고! 놀이방에서 딸내미 데려올 시간이 넘었다. 부리나케 놀이방으로 가서 딸내미를 데려왔다.
요즈음 딸아이가 다니는 놀이방은 공사를 하느라 그릇 씻을 데가 없다고 도시락과 물, 숫가락과 젓가락을 씻어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 딸아이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어 물에 담그고 저녁 준비를 했다.

달걀을 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쏘시지를 썰어서 넣고 꺼내어 달군 후라이판에 올렸다. 지지직 소리를 내며 노릿노릿 하게 익어 접시에 담고는 아들녀석을 불렀다.
"재섭아, 밥 먹자."
"안 먹어요. 나중에 먹을께요."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밥 먹으로 오면 '이제 그만해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밥도 안 먹고 게임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순간 참았던 화가 났다.

"야, 임마. 넌 양심도 없냐. 너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돈도 없는데 140만 원 이나 되는 컴퓨터를 사줬고, 내일도 시험 보는 놈이 그래, 하루종일 게임만 하냐. 너 일주일 동안 컴퓨터 켜지마" 하면서 막 야단을 쳤다. 아들녀석은 내 고함소리에 컴퓨터를 끄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딸아이와 둘이서 저녁을 먹고 8시30분쯤 아내 퇴근 시켜 주려고 회사 앞으로 갔다. 아내와 차를 타고 오면서 아들녀석 이야기를 했다. 요즈음 아들녀석은 아내가 야단을 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꼭 잠그고는 나오질 않는다고 한다. 밥도 안 먹고 어쩔 때는 하루 종일 잠만 잔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오늘은 아침 6시에 일어나 밥을 했다. 일부러 압력밥솥에 뜸을 많이 들여 누릉지를 만들었다. 늘 아침을 안 먹고 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을 주기 위해서다. 7시30분쯤 아들녀석을 깨웠다. 한참을 뭉기적거리더니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재섭아, 누릉지 끊여 놨으니까 밥 먹고 가거라."
"안 먹어요. 밥 먹고 가면은 늦어요."
"몇 시까지 가야 되는데?" 했더니 대꾸도 안 하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간다.

아내와 아침을 먹고 오늘은 내가 쉬는 날이라 아내 회사 앞까지 태워다 주는데 아내가 "오늘 아들 데리고 목욕탕이나 가보지"한다.

12시가 조금 넘어 아들녀석이 왔다. 아침도 안 먹었으니 점심이라도 빨리 먹으라고 했더니 안 먹는다고 하면서 자기 방에 들어가 저녁 6시까지 계속해서 잠만 잔다. 학원에 갈 시간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일어나 가방을 메고 학원에 간다.

작년부터 아들녀석은 목욕탕에 같이 가자고 해도 친구들하고 간다고 하고, 산에 가자고 해도 가질 않는다. 심지어 식구들끼리 놀러 가는데도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다며 꼭 빠진다. 그래서 혹시 요즘 아이들을 너무 모르나 싶어 아들녀석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아빠나 엄마가 답답하다고 짜증부터 낸다. 그럴 때마다 손이 올라가는 걸 억지로 참는다. 짜증만 내는 아들녀석을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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