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빨래 건조대에는 항상 남자들 옷이 가득 걸린다.
최지희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잃은 덕분에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됐다. 이왕지사 내려놓지 못할 봇짐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내일보다는 지금, 가끔 철없어도 괜찮은 다정한 삶을 살자는 결심.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정답이 없는 질문과 대면하면서 마침내 오답을 각오할 용기가 생겼다.
그 용기의 시작이 집짓기였다. 그렇게 집 짓다가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마흔 넘은 나이에 꿈을 찾아 나서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집짓기는 일종의 자기계발(?)이었던 셈이다. 비록 '대출'의 영역까지 야무지게 계발하게 되리라 미처 예상하진 못했지만.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집 때문에 빚이 생겼고, 가계 수입은 줄고 얼굴의 주름은 늘었는데 왜 때문인지 마음은 다시 반짝반짝해지고 있었다. 마치 스무 살 때처럼. 그 이유를 한동안 찾지 못하다가 집짓기에 관해서 물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알게 됐다. 다른 삶, 다른 인생을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반짝거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들뜬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함께 꿈꾸며 설렜다.
그래서 또 결심했다. 그래, 이 좋은(?) 집짓기를 나만 할 순 없지. 행복 나눔을 실천하는 박애정신 충만한 집짓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현실적 어려움으로 집짓기를 주저하는 친구들을 '컴 온, 컴 온' 독려했다. 시간과 장소가 허락할 때마다 '집 짓고 사니 겁나 좋음요', '땅 보러 같이 가줄까'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