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9 05:12최종 업데이트 22.10.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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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에 비용과 에너지를 쏟느라 방 문을 포기하기도 했다. ⓒ 최지희

 

대학 시절, 광역시로 '유학' 간 딸내미를 못 미더워 한 아버지 덕분에 하숙생이 되었다. 낡은 2층 주택 하숙집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작은 방 훈남 오빠에게 가슴 설렜고 이종범 선수 사인 볼 챙겨 주던 옆방 치어리더 언니는 길고 예뻤다. '당구 50을 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를 고민하던 ​윗방 의대생의 진지한 삶의 자세는 과연 배울 만했다.


하지만 하숙 생활을 때려치우게 만든 참을 수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음식이다. 하숙생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먹은 건 '어묵 볶음'이었다. 월요일에 볶은 어묵은 금요일쯤 되면 비쩍 마른 채로 여전히 식탁에 올라왔다. 그것 말고는 달리 젓가락 갈 곳도 없던 탓에 하숙집 식당 메뉴는 늘 '어묵 볶음 백반'이었다. ​

짝사랑하던 오빠에게 대차게 차이고 만신창이 된 날도, 고열을 오르내리는 독감에 쓰러진 날에도, 감당 못 할 술에 속 쓰린 숱한 날조차 어묵 볶음으로 상처를 달랬다. 15년 동안 만두만 먹은 영화 '올드 보이' 심정, 나는 안다. 음식이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어떤 힘이 있다는 걸 스무 살 때 벌써 알았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시대를 형상화 한 1970년대 빈티지 조명을 2층 화장실 입구에 설치했다. ⓒ 최지희

 
'음식의 힘'으로는 치유가 안 되는 나이

'음식의 힘'이 필요한 순간은 나이를 먹을 때마다 끊임없이 찾아왔다. 때론 혼자여서 외롭고, 종종 사랑하는 이와 함께여서 외롭다. 사랑한다고 말해서 외롭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 외로운 법이다. 몇 해째 옷장에 걸려만 있는 실크 블라우스, 선명해진 눈 밑 주름을 마주하니 맥없이 쓸쓸하다. 나이 드는 일이 새삼 서글퍼지는 마흔을 넘기니 '음식의 힘'으로는 치유가 안 되기 시작했다. 삶의 허기를 채울 작지만 값어치 있는 소중한 것들이 필요해졌다. 이를테면 명품이나 보석 같은...?

허나 실상은 흔한 명품 가방도, 다이아는커녕 찰랑거리는 금붙이도 없다. 벌이가 변변찮은 탓이지만 갖고자 했다면 무리해서라도 한두 개쯤 들였을 텐데 그쪽 방면에는 흥미가 없다. 명품과 다이아 앞에서도 시큰둥하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순간은, 빛이 드는 창가에서 원목 마루를 밟고 근사한 조명이 달린 높은 천장 아래 섰을 때였다.

오래전 외갓집 툇마루에서는 햇볕 냄새가 났다. 언제든 반갑게 맞아주는 외할머니의 쨍한 햇살처럼 따뜻한 마음과 고슬고슬한 추억이 깃든 나무 마루를 손바닥으로 쓸고 만질 때면 속절없이 맘을 내려놓게 됐다.

비록 전 재산 탕진하며 짓는 집이지만 세월 따라 멋들어지게 낡아가는 원목 마루에 서서 오래된 조명이 내는 빛을 보고 있을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드리리' 기운 충만한 마음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닐로 매끈하게 코팅해서 늘 새것 같은 강화마루에서는 느낄 수 없을 위로의 시간이었다.
   

빛이 드는 원목마루에서는 햇빛 냄새가 난다. ⓒ 최지희

 
설계가 끝나고 본격적인 집짓기에 들어서면서 예산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예산을 맞추려고 당초 설계했던 집 면적을 가로, 세로 무 자르듯 댕강 잘라내며 건축비를 줄였다. 생각보다 비싼 문짝 가격에 어떤 방은 문을 달지 않기도 했다. 집 외벽에는 인건비 높은 벽돌 조적 대신 벽돌 느낌이 나는 벽돌st 타일을 붙였다.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대체했지만 원목 마루와 근사한 조명이라는 '사치스러운 위로'는 도저히 포기가 안 됐다.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먹고 자고 사는 곳 이상의 어떤 치유의 힘이 있는 곳이니까. 삶의 쓸쓸함을 값비싼 원목 마루와 조명으로 채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아무리 외할머니 추억까지 팔아가며 강화마루보다 몇 배는 비싼 원목 마루를 깔겠다는 철부지라 해도 염치는 있었다. 그나마 저렴한 원목 마루를 찾아 헤맸다. 아파트 같은 대규모 공사 현장에 납품하고 남은 마루를 '떨이'로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원하던 원목 마루를 찾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문제는 그 마루를 당장 일시불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떨이 상품의 재고는 나의 재정 상태를 헤아려주지 않았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최저가라 해도 강화마루 시공보다 대략 일곱 배가량의 예산이 초과됐다. 집 짓겠다는 아내로 인해 빚잔치 길목에서 황망해하는 남편에게 꺼낼 카드는 많지 않았다. 호소, 협박 등은 이미 땅 사자, 집 짓자 하면서 닳도록 써먹은지라 생명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럴수록 솔직하고 담백하게 가기로 했다. '날씨 좋네'로 운을 뗐다. '맛점 했어?' 물어보며 무심한 듯 툭 문자를 보냈다. '너 혹시 지갑에 800만 원 있니?' 좋아, 자연스러웠어.

마루를 사겠노라 당장 수백만 원을 내놓으라는 깡패 같은 아내의 문자를 마주한 남편의 표정을 눈앞에서 못 본 건 참 다행이다. 당시 남편의 처참한 얼굴을 목격했다면 그냥 분수에 맞는 강화마루로 하자, 물러서고 말았을 테니까. 그랬다면 매일 원목 마루를 밟으면서 느끼는 지금의 황홀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할 뻔했다.
 

예산에 맞춰 집을 짓느라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공간을 밝히는 근사한 조명은 포기할 수 없었다. ⓒ 최지희

  
놀라운 조명의 세계

조명의 세계는 여러 가지로 놀라웠다. 디자인이 훌륭하고, 공간을 한순간에 빛나게 해 줄 만큼 멋졌지만 헉 소리 날만큼 비쌌다. 게다가 고급 주택 사진들을 수집하고 다니면서 눈은 롯데타워 123층 꼭대기만큼 높아졌다. 조명이야말로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예술의 영역이었고 인테리어의 핵심이었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조명만큼은 양보 못하겠다는 불길한 결심이 (또) 섰다.

원목 마루 구입으로 남편 지갑을 탈탈 턴 마당에 조명 값까지 청구할 배짱은 없었다. 자력갱생해야 했다. 월급을 일 원짜리 한 장도 빼지 않고 남편에게 계좌 이체하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나의 한 달 용돈은 삼십 대에는 30만 원, 사십 대인 지금은 40만 원이다. 교통비, 식비, 커피값 등등 각종 부가세까지 몽땅 포함이다. 이러한 굴욕적인 시스템을 유지한 덕분에 경제관념 제로인 내가 시골이지만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고고한(?) 안목으로 고른 조명들은 소박한 용돈의 범위를 한참 넘어섰기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아이크림과 에센스 대신 로션 하나로,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는 기능적 역할만 갖추기로 했다. 이른바 대대적인 '아나바다' 운동을 펼치고 간간이 글쓰기 아르바이트로 수령한 잔잔바리들까지 아낌없이 조명을 사는데 쏟아 부었다.

특히 빈티지 조명에 빠져서 독일 이베이 사이트에서 경매 낙찰까지 받아 가며 조명을 사는 데 진심이었다. 왜 자꾸 남의 나라 중고품을 사느냐는 남편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시대를 형상화한 1970년대 크롬 조명, 덴마크 학교에서 사용했다는 교실 조명, 현재는 단종된 유명 디자인 회사 조명까지 비용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합당한 인테리어 효과가 있었느냐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글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전문가들이 인테리어를 진행한 다른 멋진 집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어딘가 어색하고 어설프다. 그렇지만 그래서 의미가 있다.

어설픈 우리 집의 조명과 우여곡절 끝에 깐 원목 마루에는 나만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고, 그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이다. 때론 사람조차도 '가성비'로 평가받는 현실이지만 적어도 가장 사랑하는 공간에서만큼은 효율이 아닌 '존재'로 인정받는 무언가가 채워져 있다는 것이 가끔 괜찮은 위로가 된다.

물론 살아 내는 일의 고단함이야 물건 따위로 채워질 리 없겠지만 가끔씩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 속 허기를 달래주기에는 충분하다. 찬바람 부는 계절, 서늘한 마음은 어쩌지 못해도 시린 속을 위로할 근사한 나무 마루가 있으니까 괜찮다. 조명을 사느라고 화장품도 끊고 애들 로션 얻어 쓰며 버티느라 눈주름은 더 깊어졌지만 괜, 찮다. 눈주름과 맞바꾼 조명 아래 있으면 '조명빨' 덕분에 주름이 잘 안 보이니까 아무렴 진짜 정말 완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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