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
세월이 참 야속하다. 성인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년이다. 부지불식간 깨닫는 세월의 흐름에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점점 더 잦아진다. 96년도에 공식적으로 스무 살이 되었다. 남들은 성인이 되면 술부터 마신다는데 나는 생맥주 500cc도 못 마시는 어른이었다. 술, 담배보다 먼저 눈을 뜬 신세계는 나이트.
"친구들 앞에서 어떻게 춤을 춰. 난 안 가! 절대로!"
처음 친구들 권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강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고민과 투정도 잠시였다. 매주 나이트를 들락거릴 만큼 음악과 춤에 빠져들었다.
자식들 보기 좀 민망하고 창피한 얘기지만, 친구들과 새벽까지 춤을 추고 나와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씩 먹고 할증 풀린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게 주말의 낙이었다. 틈만 나면 거실에 비디오를 틀어 놓고 나이트에서 뽐낼 춤을 연습할 정도였다. 열정이 모자랄 만큼 신나게 20대의 젊음을 아낌없이 불살랐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젊을 때도 시간은 빨랐다. 남들처럼 제대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일상에 젖어 들었다. 춤이나 나이트 따위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다 나이에 맞는 삶이 있는 법'이라고 여겼다.
가끔 팀 회식 때 나이트에 갔지만, 직장 상사가 추구하는 능글맞은 분위기의 성인 나이트는 과거를 떠올리게 할 만큼 매력적이지도 흥겹지도 않았다. 그저 열심히 회사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평화로운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 잘 어울리는 삶이었다.
불혹이 넘어 심장이 다시 뛰었다
결혼하고 10여년 조금 넘는 세월이 흘렀다. 까맣게 잊었던 과거 소환 사건이 벌어졌다. 회사 게시판 속 난데없는 댄스 동우회 회원 모집 공고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사에 입사해 문화동우회, 볼링동우회, 사진동우회, 와인동우회 등 다양한 동우회 활동을 이어왔다.
동우회원 모집 공고문을 보고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린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불혹을 넘긴 나이,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당연히 불가능!'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달고 멀찌감치 물러섰다. 그저 덜컹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동우회에 가입하는 젊은 후배들을 모니터 너머로 응원할 뿐이었다.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았을까. 20대 시절 열정의 기운이 퍼졌던 걸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동우회 발족 막바지에 친한 30대 후배가 손을 내밀었다.
"선배, 남자가 너무 부족해요. 함께 하시죠."
동우회는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다 본사로 복귀한 50대 젊은 마인드의 임원 작품이었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모 팀장도 이미 회원이었다. 우려와 달리 동우회는 세대공감의 장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40대 이상은 세 명뿐이었지만, '혼자가 아닌 나'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였다. 주눅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설렘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멍석을 깔아주니 마지못해 선심 쓰듯 '그럴까. 한번 해볼까?' 못 이기는 척 후배의 손을 꽈악 잡았다. 가슴이 뛰었다. 춤을 여전히 좋아하는 나를 다시 마주했다. 선후배와 함께 회사 근처 댄스학원에서 아이돌 춤을 배우며 땀을 빼고 또 뺐다. 이전 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상쾌함을 느꼈다. 행복했다. 신나고 즐거웠고 심지어는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도서 <뇌는 춤 추고 싶다>에서는 춤을 출 때 뇌의 변화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춤을 배울 때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고, 학습하고 기억할 때 핵심적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춤을 출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근육을 사용하는데, 이 근육의 움직임은 뇌의 신경회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춤을 추면 뇌를 전체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다양한 감각들이 수용되며, 근육의 움직임과 관련된 작용이 강화된다. 심지어 춤을 출 땐, 심장과 근육만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면역 체계도 강화된다. 정기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은 병에 덜 걸린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나이 들어감에 따라 기억 용량이 줄어들어 늘 의기소침했는데, 과학적 근거를 운운하지 않아도 내게는 고무적인 자극이었다. 생각해보면 인상 쓰면서 기분 나쁘게 춤추는 사람은 없다. 거창한 책 내용을 막연히 찬양하지는 않지만, 춤을 출 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실은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세대 공감의 교집합 안에 머물렀다
신나게 춤추면서 열심히 연습했다. 낡은 몸으로 태반이 이삼십 대인 후배들과 함께했기에 노력과 연습은 당연한 개인 과제였다. 쉽게 외워지지 않는 동작을 집에서 틈틈이 연습했다.
모모랜드의 '뿜뿜'을 배울 때였다. 동작도 어려운 데 회사 일 때문에 연습에 빠졌다. 진도를 따라가야 하기에 집에서 홀로 진땀과 사투를 벌이며 연습했다. 때마침 댄스 학원에 다니던 딸아이와 춤이 겹쳤다는 걸 알았다. 아빠의 눈높이에 맞춘 딸아이 가르침 덕에 '뿜뿜' 댄스를 완수했다.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아이돌 댄스부터 90년대 댄스메들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대를 넘나들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2년 연속 사내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가끔은 사내 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을 했고, 이색 동우회를 소개하는 사내 방송에도 출연한 적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바람에 동우회는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회사에서 세대를 넘나들며 끈끈한 정을 나눈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특히 다른 세대를 살았고 지금도 각자의 세대를 살고 있지만, 20대, 30대, 40대, 50대 모두가 같은 노래에 열광하며 함께 땀을 흘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직장생활이 내려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세대차이'라는 네 음절이 세상을 삭막하게 만드는 시대에서 모두를 하나 되게 만드는 춤과 노래는 세대 갈등의 갈증을 해소하는 상큼한 단비였다. 덕분에 386세대, X세대, MZ세대가 같은 취미라는 공감대로 교집합 안에 잠시나마 함께 머물렀다.
대한민국을 댄스 열풍에 빠트린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멋진 댄서들을 보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춤의 차원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함께하는 이들과 나이 차이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출연자는 2003년생부터 1986년생까지 다양했다. 최대 17살의 나이 차이임에도 전혀 상관 없었다. 왜 이렇게 모두가 춤에 진심이고 춤을 사랑하는지 미약하게나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춤이 가진 효능을 애초부터 만끽하고 즐기는 모습 그 자체였다.
회사 댄스동우회 3기가 결성됐다. 후배들을 위해 더는 참여하지 않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나이를 잊을 만큼 최선을 다해 즐겼으니 충분하다. 댄스동우회에서 충전한 에너지를 밑천 삼아 열심히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40대 댄스동우회 출신이라는 사실이 뿌듯하다. 무료한 중년 직장인의 삶에 다시 없을 특별한 이벤트였음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영화 <쉘 위 댄스>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찾은 행복이 바로 댄스였다.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 춤의 매력, 주인공 존 클라크(리차드 기어)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