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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부모 성교육을 받다
 
사내 부모 성교육을 받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내 부모 성교육을 받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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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사내 게시판에 부모 성교육에 관한 교육 공지가 떴었다. 강사는 TV에도 자주 나왔고, 이름만 들어도 다 알 만한 유명한 분이었다. 들으면 좋겠다 싶어 서둘러 신청을 했더니 벌써 마감이 되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관심이 많은 줄 몰랐다. 아쉬운 마음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넣었다. 그리고 며칠 뒤 참여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의장 문을 열었다. 빈자리가 없을 만큼 꽉 들어찼다. 강의는 무척 실제적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성을 접한다는 것. 강의 내용은 간략히 축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야동을 통해서 잘못된 성 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부모의 올바른 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은 은밀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서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성교육도 이른 시기에 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시작해야 한다.'

더불어 강사님은 상담하면서 실제 겪었던 사례도 소개해주었는데, 놀랍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성에 관한 잘못된 관념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될 수 있었다. 2시간의 시간이 금방 흘렀고, 끝나고 교육에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성은 금기였다

문제는 내가 성교육을 할 수 있을까였다. 어릴 때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온 가족이 모여 토요명화를 시청 중이었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이내 곧 불타는 사랑의 불꽃을 태우기 직전이었다. 아름다운 두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아버지는 "음" 하는 소리를 연신내며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했었다. 이제 정말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아버지는 몹시 민망한 얼굴로 안방으로 사라지셨다. 어머니는 이때다 싶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터질 듯한 나의 심장은 그 뒤로도 한참을 잦아둘 줄 몰랐다. 얼마나 아버지가 원망스럽던지 어디 일기장에 남겼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성은 열면 안 되는 판도라 상자 같았다. 부모님의 불편해하는 모습에 나 역시도 차오르는 궁금증을 속으로만 삼켰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속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혹여나 오줌을 싼 게 아닌가 부끄러워 세탁기에 내놓지도 못했다. 그 뒤로도 몇 번 반복이 되었고, 어디 말도 못 하고 냉가슴만 앓았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반 친구에게 비슷한 경험을 들었고, 몽정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그래도 결국 부모님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입학해서 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굵어지는 등 변성기가 시작되었다. 더불어 성에 관한 호기심이 하늘을 찔렀다. 또래 중에 형이 있던 친구 B는 가끔 야한 소설이나 잡지를 학교에 가지고 와 우리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 몰래 동그랗게 모여 앉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몸싸움도 불사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아직도 생생한 빨간 비디오 테이프의 기억. 내가 그렇게 처음 마주한 '성'은 아름답기보다는,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무언가 불쾌한 감정이었다. 다행히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이르면서 '성'은 배려와 존중이 동반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부모 성교육에 도전하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전한 성 의식이 중요하다.
▲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강한 성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전한 성 의식이 중요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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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말에 가족들과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다. 오해로 멀어졌던 연인이 극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그 사랑을 뽀뽀로 확인하려는 때, 나도 모르게 왼손은 첫째 아이 얼굴에, 오른손은 둘째 아이 얼굴로 향하며 막으려 애썼다.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내가 뭐하나 싶었다. 막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예전 부모님이 그랬듯 내가 오히려 어색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아내와 상의 끝에 사춘기의 구간에 진입한 중2 첫째 아이와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바로 날을 잡았다.

"아들, 엄마랑 이야기했는데, 너랑 성에 관해서 터놓고 말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그냥 뭐… 알 건 다 아는데 굳이…"

"그래? 어디서?"
"학교 성교육 시간에도 배웠고, 책에도 자세히 다 나와 있어."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걱정되는 점도 있고, 지금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럼, 내가 궁금한 게 생기면 그때 물어볼게. 지금 말하긴 좀 그래."


첫째는 부담스러운지 바로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의 물꼬를 튼 점에 의미가 있었다. 성교육 강사님이 추천해준 도서를 미리 사서 그 자리에서 첫째에게 주었다. 읽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당부했다.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아이가 원할 때 나누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성'에 관해서 편하게 드러내기 쉽지 않다. 그리고 아이가 때가 되어 말을 꺼낼 때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아직은 막막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함께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나영 상담사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게 맞을까요?"
"부모의 성교육에 대한 의견은 전문가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지만 제 의견을 들려드릴게요. 부모 성교육도 받으셨는데 TV에 나온 키스 신을 보고 당황하여 아이들 눈을 가리신 이유는 무얼까요?(웃음) 아마 어릴적 경험에 기반하여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셨나봐요.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한 건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알려주면 어땠을까요? 나아가 엄마아빠의 첫키스는 언제였는지, 너희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보세요. 

그리고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 '자, 이제 성교육을 해보자'라고 진지하게 접근하면 아이도, 부모도 자연스러워질 수 없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아이와 같이 목욕을 하면서 어른과 아이의 성기가 다른 것이나 2차 성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단계가 미리 다져 있었더라면 지금의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덜 어색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가정 내에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그랬다면 남녀의 차이라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 이런 부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고요.

부모의 성교육이 서로에게 낯설고 민망하다면 사실 사춘기 아이들의 성교육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요즘은 관련 기관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이 많다고 알고 있어요. 성교육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부모자녀 관계가 먼저 쌓여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만약 부모님이 함께 성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원한다 관련 동영상이나 교육 자료, 책같은 것을 같이 보고 의견을 나누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아빠 어렸을 적 경험을 아이와 공유하며 (재미있고 가볍게)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도 좋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태그:#사춘기, #성교육, #금기, #건강한성, #존중과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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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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