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
며칠째 가수 장기하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가 귀에 맴돈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 어?"
사람이 어떻게 아무 부러움이 없을 수 있나? 그런데 무대 위로 공중부양한 장기하 님이 버둥거리며 노래하는 걸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월, 그까짓 거 별 거라고. 약간 붕 떠서 살면 되지. 내 흥에 겨워 허우적거리는 게 재밌으면 된 거지.
몇 달 전 어느 게시판에서 성인ADHD인이 올린 글을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수능 5등급 이상을 받고 대학에 간 사람들, 석박사과정을 마친 사람 등은 모두 ADHD가 아니라고 의학적 근거 없이 규정한 내용이었다.
지능과 ADHD 여부가 무관하다는 점, 관심 분야에 대한 과몰입 효과, 개인의 노력 등을 모두 부정한 주장에 게시판 이용자들이 줄줄이 반박 댓글을 달았다. 댓글 중 'ADHD에도 진골과 성골, 평민이 있는 거냐'는 말에 크게 공감이 갔다.
글쓴이는 왜 그렇게까지 믿게 된 걸까? 글에서 열등감과 소외감이 느껴졌다. 자기 경험에 공감 못할 법한 이들이 똑같은 병명으로 힘들다고 하는 걸 보니, 고통이 무시되는 느낌이 든 것 같았다. 그걸로 현실을 왜곡하는 건 잘못이지만 마음만은 알 듯도 하다.
같은 ADHD인데
자기 속마음 꼬질꼬질한 거 우리 다 알지 않나. "찐ADHD다"라고 확인받으면 지난 시간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불행 배틀은 정말 싫은데. 나도 꾹꾹 담아둔 괴로움이 남아 인정 욕구가 생활 곳곳에 끼어든다. 남의 인정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에 한계가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가끔 다른 ADHD인이 부러웠다. 난 병원과 심리센터에서 '극단적 내향성'을 가졌다는 얘길 듣는 고순도의 내향형 인간이다. 용기 내서 자조모임 단톡방에 참여했다가 다른 분들의 활발함에 지레 기가 눌렸고, '같은 ADHD인데 이렇게 다르구나' 하며 스르륵 나오고 말았다.
조리 있게 인터뷰하는 ADHD 작가님을 보면 '왜 나한텐 저런 능력이 없을까' 싶었다. 아, 이분은 되게 긍정적이시네, 이분은 표현력이 천재급이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하지? '재능'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하는 ADHD인들을 보면 같은 ADHD라서 더 비교가 됐다. 긴 글을 쓸 능력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거지만, 사람이 이렇게 다 자기한테 없는 걸 본다.
ADHD라는 틀을 걷어내고 생각하면, 서로 다른 사람이니 다른 게 당연하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브 잡스... 위대한 업적을 남긴 ADHD인 얘기를 읽으면 약간 기가 살긴 하는데, '그건 그냥 사회적 성공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질은 무작위로 주어진 기능이다. 몇 개의 기능에 능력이 집중된 경우 타인이 보기엔 좋아보여도 본인 삶의 만족도는 낮을 수 있다. 반대로 균형 잡힌 기능들이 생활의 안정감을 이루지만 그게 공기 같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재능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느 하나에 뛰어나지 않다는 게 결핍 같다. 그런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재능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제일 가성비 좋은 재능 같다. 재능은 삶의 도구일 뿐이고, 인생은 각개전투니까.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각자의 굴레가 있다.
기능 수준 파악하기
한계의 벽에 오만 번 박치기를 하다 보니 '하면 된다'에 가린 진실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보다 잘하기 어려운 일은 분명히 있다.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가성비가 떨어지는 분야가 있다는 뜻이다.
매번 기대치에 비해 결과가 낮으면 열등감이 없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건 그 전까지 자신을 잘 몰랐다는 뜻도 된다. 기본적으로 ADHD를 가진 사람은 비ADHD인에 비해 각 기능이 불균형하다. 시청각 인지능력, 언어 표현력과 이해력, 행동과 감정 조절능력 등. 불균형하니까 헷갈린다. 자기 능력을 그대로 파악하고 적당한 기대치를 갖기가 쉽지 않다.
움츠러들 때면 곧바로 내가 나를 실제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나는 대화 센스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대화에 참여할 용기마저 사라지는 걸 자주 느낀다. 내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 잘 늘지 않는 능력도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전보다 나아진 점에 집중하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자료가 쌓이면 선택이 쉬워진다. 장점과 단점, 그 외 다양한 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세히 알수록 좋다. 작년, 지난달, 지난주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현실적으로 다음 한 걸음을 상상하게 되고, 행동을 결정하는 데도 자신이 생긴다.
자기 격려 차원에서 일 년에 두 번 '상반기/하반기에 잘한 일'을 쓰고 있다. 막 살아도 6개월로 치면 잘한 일이 하나쯤은 있다. 별로 나아진 게 없을 때도 시도해본 것들을 쓰면 기운이 난다. 요리에 더 익숙해졌다,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다, 신춘문예 두 군데에 투고했다, 적금통장을 깨지 않았다, 연락을 끊어 찜찜했던 사람들과 연락했다...
시간이 간다는 건 경험이 쌓인다는 뜻이다. 침대에 누운 채 보낸 한 달에도 그 시간만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방전된 나를 스트레스로부터 지키는 기능, 몸이 나을 기회를 주는 기능, 자살 시도와 나를 분리하는 기능 등.
천재도 바보도 아닌
내가 타고난 재능은 '대인능력 부족'이라는 결핍으로 귀결되곤 했다. 비록 우물에서 뛰노는 개구리였지만 충동성과 과잉행동 욕구가 타악과 잘 맞아서, 강의를 그만두면 작은 난타공연팀에 들어갈 생각도 했다. 외국어 단어를 외울 때는 엉뚱한 상상으로 의미 부여하길 즐기는 게 도움이 됐다. 남몰래 턱을 하늘 끝까지 쳐들었다. 아, 나 좀 천재인 듯?
그런데 '이렇게 배우면 뭐 하나, 써 먹질 못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흥미가 식었다. 산만한 관심사에 돌아가며 물 주느라 실제 외국어 실력은 고만고만한데, 통역 일을 한 번 시도했다가 실력과 주의력 부족에 왕복펀치를 맞았다. 타악도 팀에서 갑자기 빠지면서 그만두게 됐다. 심해진 청각과민 증상에 발목 잡히고, 극복 못한 사회생활 트라우마에 머리채를 잡혔다.
언어와 음악에 감각이 좀 더 있다면, 숫자와 공간 감각은 바닥 수준이다. 특히 숫자만 보면 뇌에 방수처리가 되어 안 스며든다. 만 단위 이상은 0이 몇 개 있어도 그게 그거 같다. 왜 회계 업무를 맡으면 주7일 근무가 당연해지고, 작은 모임에서 총무라도 맡으면 내 돈이 확 줄어 있을까?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멍청이'란 나한테 쓰라고 만든 말이라고.
결핍에 집중할수록 결핍이 확장됐다. '나는 숫자 바보'라고 생각할수록 쉬운 계산에도 머리가 얼어버렸고, 모든 일이 '사람'에서 걸리는 것 같아 사람을 더 피했다. 한때는 내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보이스트레이닝까지 다녔는데, 문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나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몇 년 후엔 유튜브로 책 낭독을 하려 들고 있었으니까.
자아도취와 열등감은 성질이 비슷하다. 내 열등감에는 하는 일이 뜻대로 돼야 한다는 고집도 들어있었다. 사실 외국어로 돈벌이를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세일러문 애니메이션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평생 가는 기쁨이다. 약한 근육 대신 많이 쓰게 되는 근육도 있듯, 원하는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더 주체적으로 행복해지는 재능'이 생기는 게 아닐까. 뛰어난 능력을 선망하고 무능함을 자책하느라 중간의 능력을 무시했던 난 '노력형 바보'였을지도.
건축가 김진애는 도시마다의 장점을 키우는 법을 이렇게 정의했다. '분수를 지키며 분수를 키우는 것'. 괜시리 움츠러들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다. 재능을 특권으로 보지 않고, 기대치가 현실적인지 생각하고, '모' 아니면 '도' 사이의 기능들을 본다.
나에겐 글쓰기에 질리지 않는 능력이 있다. 글 한 편을 써내자면 생각이 사방팔방 널뛰어 일주일을 통으로 써도 빠듯하지만, 생각 속을 헤집다 보면 보인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하시라. 나는 한 개도 부럽지가 않다. 진짜 '한 개도' 안 부럽냐고? 음... 우리 한 개만 부럽기로 하자.
덧붙이는 글 | * 브런치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 화는 '사회공포와 느슨한 연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