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두 달여에 걸쳐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이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 국가 발전과 행복한 국민의 삶을 이끌어갈 대통령만큼이나 저는 교사라는 직업에 막중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훗날 우리 기성세대를 이끌어갈 주인공은 바로 지금의 아이들이며, 이 아이들을 올바로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2040년대를 살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에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거의 모든 문제가 인공지능으로 해결되고 보다 발전된 기술 및 서비스가 나오게 되겠지요. 그리하여 초등학교에서도 코딩, 인공지능, 메이커 교육 등 ICT와 공학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올해 실시된 수능 이후 원서 접수 현황을 보니 인공지능, 컴퓨터, 통계, 첨단 산업과 관련된 학과로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IT 업계가 이끌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그렇다면 국가의 미래와 우리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IT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몸담고 있을까요. 저희 반 학생들과 '교육통계' 포털에서 IT 관련 학과의 최근 3년 재학생 성비, 전임교수 성비를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성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전임교수의 성비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전국 일반대학 및 방송통신대학(교육대학 제외)의 학과계열별 재적학생수(2020년 통계)를 확인한 결과, 공학계열 제어계측공학의 경우 총 4886명 중 남성이 4209명, 여성이 677명이었습니다. 공학계열 전자공학의 경우에도 총 6만5407명 중 남성이 5만5900명, 여성이 9507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료를 살펴본 결과, 공학계열 학과 중 성비가 균등하거나 엇비슷한 과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학과계열별 전임교원 수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공학계열 제어계측공학 전임교수 총 89명 중 여성은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공학계열 전자공학의 전임교원 또한 총 1666명 중 남성이 1626명, 여성이 40명이었습니다.
이러한 재학생 성비는 IT에서 실제 일하는 직원의 성비 불균형으로 그대로 이어지겠지요. 실제로 저희 반 학생들과 IT에서 개발된 기술 및 서비스에 어떠한 성차별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왜 가상 인플루언서는 대부분 어리고 예쁜 여성일까요?
시리, 알렉사, 빅스비 등 인공지능 비서의 목소리가 전부 젊은 여성인 점, 아이들이 교육용 프로그래밍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는 '엔트리' 캐릭터가 의사는 남성, 간호사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 인공지능 챗봇, 가상 인플루언서가 대부분 어리고 예쁜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 등 차별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아이들과 코딩, 메이커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남자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은 흥미를 보입니다. 과연 이는 선천적으로 남성이 기계, 컴퓨터를 좋아하도록 유전자에 그 특성이 내재되어 있어 그런 걸까요?
이에 대해 저희 반 여학생 한 명이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였습니다. IT 분야 종사자는 남자가 많다보니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여성이 IT 분야에 많았다면 어린 아이들이 갖고 노는 로봇, 컴퓨터, 교육용 프로그램들이 훨씬 아기자기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린 여자아이들도 기계와 컴퓨터를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과학관의 전시 분위기도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기획했다면 보다 여자 아이들의 취향을 고려했을 것이고 더 많은 여자 아이들이 과학, 컴퓨터, 공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은 객관적, 중립적인 기술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개발자가 어떠한 데이터를 학습시키는지에 따라 차별적인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구글 포토, 아시아인을 차별한 여권 로봇 이야기 등 이미 데이터 편향으로 문제가 된 사례가 있습니다.
만약 남성 중심적인 IT 문화에서 인공지능을 만들게 된다면 어떠할까요. 인공지능 비서, 챗봇, 가상 인플루언서 등의 문제를 넘어 남녀 차별이 일반화되고 정당화되는 세상이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기술보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갖는 파급력이 크니까요.
평등한 기술과 서비스...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저희 반 학생들은 보다 공정한 세상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저희 아이들은 여성들도 재미있게 기계, 컴퓨터를 공부하고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관련 기업에 취직해 착한 기술을 만들어 세상을 이롭게 이끌어가길 희망합니다. 저와 학생들은 보다 평등한 IT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그림책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였습니다. 저희들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 펀딩 하루 만에 60% 이상 달성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태주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IT 성차별 때문에 그림책 만든 5학년, 이런 것도 합니다 http://omn.kr/1wooz).
앞선 펀딩 기사가 나간 뒤 감사하게도 한 국회의원실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저희의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 기쁘면서도,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편견과 인식을 바꾸려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대선 후보님들, 앞으로의 시대는 지금의 아이들이 이끌게 될 것입니다. 남녀에 상관없이 아이들 모두가 첨단 기술과 관련된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고 평등한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힘써주세요.
여자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관련 분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용 기기 및 프로그램 등을 성별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만들어주세요. 아이들이 자주 체험하는 과학관 등의 시설 및 전시 프로그램 등도 여자 아이들이 보다 좋아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해주세요. 또한 지금의 IT 회사 또한 여성이 출산과 결혼 후에도 충분히 일하며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복지에 힘써주세요.
아울러 IT회사의 개발 윤리, 인공지능 윤리에 남녀 평등에 관한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저희 반 학생들이 가상으로 만든 IT 기업 개발 윤리 조항만 해도 ' AI에게 데이터를 학습시킬 때 반드시 여자 직원이 함께하게 해주세요'라는 항목이 있답니다. 저희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더욱 궁금하시다면 저희가 만든 책을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https://link.tumblbug.com/NLAY7uHfAmb).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 보다 발전된 나라를 만드는 것. 이는 모든 대선 후보님들이 바라는 점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 아이들도 항상 생각해주시고 아이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