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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영도구, 연제구, 해운대구청이 내건 순세계잉여금 관련 해명 현수막.
 위에서부터 영도구, 연제구, 해운대구청이 내건 순세계잉여금 관련 해명 현수막.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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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에서도 불용예산인 순세계잉여금을 남기고 있다는 지적에 부산의 기초지자체들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다음 해 본예산 등에 순세계잉여금을 편성하는 등 "묵혀두지 않는다"라는 주장인데, 지방자치법상 균형재정에 어긋난다는 비판과 논란이 계속된다.

"이렇게 사용합니다" 현수막 내건 구청들

최근 부산 해운대구청, 연제구청, 영도구청 등은 청사 앞에 순세계잉여금 관련 현수막을 일제히 내걸었다. 순세계잉여금 사용 현황을 공개하고, 주민참여예산 제도를 통해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진구청은 동별 주민센터에 "순세계잉여금을 묵혀두고 있지 않고, 모두 주민을 위한 사업으로 집행하고 있다"라며 안내문을 부착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산의 16개 구·군이 매년 상당 규모의 순세계잉여금을 남겨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순세계잉여금은 세입 총액에서 지출·이월금, 반납할 국비·시비 등을 제외하고도 남은 잔액으로 이른바 '곳간에서 잠자는 돈'으로 불린다.

'2020회계연도 결산검사 의견서'를 보면 금정구(676억 원), 남구(614억 원), 기장군(513억 원), 동래구(506억 원), 부산진구(494억 원), 서구(468억 원), 해운대구(461억 원), 연제구(420억 원), 영도구(403억 원), 동구(315억 원), 수영구(253억 원), 사하구(236억 원), 사상구(228억 원), 북구(200억 원), 강서구(163억 원), 중구(139억 원) 등 순세계잉여금의 규모는 단순합계로만 6천여억 원에 달한다.

지난 6월 부산의 한 진보정당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묵혔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지자체는 이 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부산 해운대구 예산부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잉여금의 규모도 5%대로 전국 평균보다 낮고, 이 돈을 묵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해의 본예산, 추경 등에 편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순세계잉여금이 3%대를 주장하는 지자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부산진구의 예산부서 관계자도 "마치 잉여금을 현재에도 묵히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라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순세계잉여금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 비율을 낮춰왔다. 그리고 본예산과 추경에 선제적으로 편성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8.62%에 달했던 부산진구의 일반회계 세입액 대비 순세계잉여금 비율은 지난해 3.33%까지 줄었다.

기초지자체는 통상 회계 1% 수준인 예비비만으로 추경이나 긴급 상황, 재난에 대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잉여금이 있어야 추가예산, 재난 상황 등에 대비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제구의 다른 관계자도 "남겨두는 게 아니라 재편성의 개념"이라며 "세입이 필요하면 세금을 거둬들이는 중앙정부와 달리 예산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순세계잉여금을 없애는 건 사실상 어렵다"라고 털어놨다.
 
부산시 16개 구군의 순세계잉여금 관련 그래프. 지난 6월 진보당 부산시당이 2020년 순세계잉여금 문제의 공론화에 나서면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균형재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순세계잉여금에 대한 문제제기는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부산시 16개 구군의 순세계잉여금 관련 그래프. 지난 6월 진보당 부산시당이 2020년 순세계잉여금 문제의 공론화에 나서면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균형재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순세계잉여금에 대한 문제제기는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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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세계잉여금 필요하다는 지자체... 지방자치법 규정은?

이처럼 지자체는 순세계잉여금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균형재정의 측면에서 분명한 논란의 대상이다. 순세계잉여금은 세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거나 소극적으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거둬들인 만큼 사용해야 하는 세금을 남겨 이월하고 또다시 편성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관련 법률 규정에 비추어봐도 어긋난다. 지방자치법 122조는 재정운영의 원칙에서 '수지균형에 따라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세금을 내는 만큼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라는 의미다.

부산서 순세계잉여금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노정현 진보당 부산시당 위원장은 "걷은 세금을 그해 써야 하는 것이 맞고, 구별로 순세계잉여금이 수백억 원씩 남았다는 것은 주민들이 행정서비스를 그만큼 받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덧붙여 노 위원장은 "지자체들이 지방재정의 기본적 운용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진보당과 주민단체는 부산 7개 지역에서 "우리 세금 어디 쓸지 우리가 결정하자"라는 운동에 한창이다.

공공재정의 혁신 방안을 찾는 전문가 집단도 이 부분을 짚는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잉여금이 일부 생길 수도 있고, 이를 내년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문제는 그 (규모의) 정도"라고 언급했다.

2019년 기준 순세계잉여금이 전체 세출액 대비 0.3%, 1.1%에 불과한 광역단체가 있는 반면, 9%대가 넘는 기초단체도 있다. 여기서 비율이 높은 지자체는 여러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 연구위원은 "팩트가 틀렸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세입이 줄어드는 것을 대비해 재정안정화기금이 있고, 재난은 법적 의무기금인 재난관리기금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입과 세출이 같아지도록 한 지방자치법을 지켜야 한다. 그게 행정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서울시 노원구에서는 순세계잉여금 관련 주민투표가 펼쳐졌다. 노원구는 2019년 세입총액 1조1494억 원 중에서 반납액을 제외하고도 1042억 원을 남겼다. 노원구 주민들은 쓰고 남은 세금을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요구했고, 결국 구청은 '세금 페이백' 내용이 담긴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를 통해 이를 일부 수용했다.

이제 이들은 혈세가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는 조례를 준비하고 있다. 강여울 노원주민대회 조직위 정책국장은 "주민이 결산 내용을 확인하고 순세계잉여금이 남을 경우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추가 조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 16개 구군의 순세계잉여금 문제는 부산시를 향해서도 불똥이 번지고 있다. 7월 열린 부산시의회 298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을 상대로 2020년 순세계잉여금 7300여억 원에 대한 시정질문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동호 부산시의원은 "순세계잉여금을 당연히 남겨야 한다는 관행적 태도, 소극적 예산, 비계획적 사업 추진으로 인한 불용, 빈번한 추경예산 편성이 원인"이라며 박 시장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조차 부산시와 구군이 1조 원대 순세계잉여금을 남긴 것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했다.

박 시장은 이렇게 답했다. "세입과 세출이 정확히 예측되고 효율적인 지출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행안부 빅데이터를 비롯해 필요한 예산을 짜는지 검토하겠다." 부산시장 또한 '수지균형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2020년 회계연도 결산검사의견서를 토대로 한 부산 16개 구군의 순세계잉여금 현황.
 2020년 회계연도 결산검사의견서를 토대로 한 부산 16개 구군의 순세계잉여금 현황.
ⓒ 진보당 부산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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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순세계잉여금, #지방자치법, #부산 기초단체,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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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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